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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주는 각종 상을 휩쓴 한 업체의 핵심 기술에 대한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업체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가 양심선언을 통해 "사기행각"이라고 폭로한 데 이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과학기술계와 시민들을 상대로 수백억 대의 사기행각을 벌여온 혐의로 업체 관계자들을 수사하고 있다. 국무총리실도 최근 이 업체의 기술 신뢰성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에 나섰다.  

이 업체는 이미 환경부 장관상과 지식경제부 장관상 등 정부로부터 각종 상까지 받은 상태다. 따라서 이 업체의 핵심 기술이 허위로 드러날 경우 파문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업체의 대표는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이러한 의혹을 일축했다.

지난 2006년 코엑스(COEX)에서 열린 '에너지 전시회'에 출품한 해당업체의 '세계최초 물로만 보일러' 하지만 이 제품은 아직까지 상용화되지 않고 있다. 이 행사는 산업자원부가 주최하고 에너지관리공단이 주관했다.
 지난 2006년 코엑스(COEX)에서 열린 '에너지 전시회'에 출품한 해당업체의 '세계최초 물로만 보일러' 하지만 이 제품은 아직까지 상용화되지 않고 있다. 이 행사는 산업자원부가 주최하고 에너지관리공단이 주관했다.
ⓒ ㈜에너지마스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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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문제가 된 곳은 ㈜에너지마스타(대표 조길제). 이 회사는 지난해 6월 한국전기연구원이 발급한 시험성적서를 근거로 물을 연료로 쓰는 혼합수소가스 발생장치 상용화 기술을 적용한 수소 보일러, 수소 가스레인지, 수소 건강돔, 수소 의료건조기, 차량용 연료절감장치 등 모두 12개의 제품을 개발, 상용화의 길을 열었다고 홍보했다. 이 제품들은 모두 물을 넣어 그 자리에서 수소에너지로 만들어 마음대로 쓸 수 있고 특히 에너지 효율이 4.5배에 이른다는 설명이 추가돼 있다.

지금 노벨상 수상후보자와 발표회를 하고 있다?

해당업체의 기술학술발표회 자리에는 300여 명의 학계 관계자 및 발명가 등이 참석했고, 참석자들은 "획기적인 일"(신석균 한국발명학회장),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지금 노벨상 수상후보자와 발표회를 하고 있는 것"(박찬종 아시아경제연구소 대표, 전 국회의원), "인류생활이 한층 높아지도록 한 조 대표에게 감사"(대한언론학회 제재영 회장) 등의 찬사를 쏟아냈다.

실제 한국전기연구원이 발급한 시험성적서에는 30분간 3.84KW의 전기를 사용해 수돗물 온도를 20.8도 상승시킨 것으로 돼 있다. 이 업체는 이를 두고 전기에너지 1650kcal를 들여 7396kcal의 출력에너지를 얻은 것으로 열효율 448%에 이른다고 홍보했다. 이 결과대로라면 에너지 혁명이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이 업체는 이 같은 시험 성적서를 토대로 정부출연기관을 움직였고 대리점 및 투자자 모집에 나섰다. 이 업체가 지난 7월말까지 전국 200여 곳에서 대리점 보증금 등으로 미리 받은 추정액은 약 170억 원. 여기에 수소보일러 등 제품을 제작하고 있다며 물품비용으로 미리 받은 돈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업체는 지난달에는 중소기업청이 주최하고 한국과학기술원이 주관한 '친환경경진대회'에서 본선에 진출했고 코엑스 전시회에도 참여했다. 한국과학기술원에서는 이 업체에 전시품목제작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전라북도와 나주시는 해당업체에 파격적인 분양조건으로 공장부지 공급을 약속했다.

정부와 각종 단체는 해당업체에 장영실상을 비롯해 환경부장관상, 지식경제부장관상 등 상을 수여했다. 특히 방송을 비롯한 각종 언론매체는 이를 토대로 '물을 연료로 쓰는 혼합수소가스 발생장치 상용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이라며 특집기사와 기획기사를 쏟아냈다. 

해당업체 전 기술부장 양심선언 "상용화 기술도, 계획도 없다"

한국전기연구원의 시험성적서. 시험성적서는 24.4도의 수돗물을 일정량의 전기에너지를 소비해 45.2도로 상승시켰다는 내용이지만 해당업체는 에너지효율 448%로 에너지혁명에 버금가는 시험성적서를 발부받았다고 홍보했다.
 한국전기연구원의 시험성적서. 시험성적서는 24.4도의 수돗물을 일정량의 전기에너지를 소비해 45.2도로 상승시켰다는 내용이지만 해당업체는 에너지효율 448%로 에너지혁명에 버금가는 시험성적서를 발부받았다고 홍보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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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효율 448%를 홍보하는 해당업체의 자체 홍보문.
 열 효율 448%를 홍보하는 해당업체의 자체 홍보문.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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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회사의 기술부장으로 재직하던 A씨(지난 10월 퇴사)는 최근 검찰 조사 때 및 일부 투자자와 만나 "회사 측이 제작한 수소 가스레인지 등 12개의 전시용 제품은 모두 제작에 실패해 조작한 것"이라며 "가짜 물품에 회사 상표를 부착한 것으로 상용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구체적으로 "수소 가스레인지는 대만산 일반 가스레인지 제품에 회사 상표만 바꿔 부착했고, 수소보일러는 타사 보일러에 간단한 노즐과 콘트롤러만 부착했으며, 수소의료건조기는 냉장고 사진을 포토샵으로 조작했고, 자가 수소발생기는 케이스만 존재한다"며 "12개 제품 모두 조작된 것으로 상용화 기술 또는 계획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양심선언 배경에 대해 "피해자가 기하급수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기 행각의 전모를 밝히기로 결심했다"며 "대리점 계약자 대다수는 농민이나 영세 자영업자들로 각각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수억 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A씨의 증언은 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무엇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전기연구원의 해당업체 기술에 대한 시험에서 에너지 혁명에 버금가는 결과가 나온 것이 그 배경이다.

"단순 시험성적 자료를 '에너지 효율 공인시험' 자료로 둔갑"

해당업체가 상용화했다고 밝힌 물을 연료로 한 수소에너지 제품들. 해당업체는 이를 근거로 전국 200여곳에 대리점 계약을 체결했으나 실제 개발된 제품은 단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업체가 상용화했다고 밝힌 물을 연료로 한 수소에너지 제품들. 해당업체는 이를 근거로 전국 200여곳에 대리점 계약을 체결했으나 실제 개발된 제품은 단 하나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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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해 해당업체의 기술신뢰성 검증을 벌이고 있는 국무총리실 관계자는 "한국전기연구원의 시험성적서는 단순히 소비된 전력량 대비 상승된 온도만을 표기한 것"이라며 "이것만으로는 중간에 설치된 부가장치를 확인할 수 없어 에너지 효율을 따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업체가 소비전력 대비 상승온도에 대한 시험성적서를 열효율 448%로 바꿔 설명한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업체 측에서 한국전기연구원이 발부한 단순 시험결과를 자의적으로 왜곡해 활용해 왔다는 주장이다. 국무총리실은 지난달 해당업체가 해당 기술에 대한 정부연구비 등 지원을 요청하자 기술신뢰성 검토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해당업체가 부분적인 전기연구원의 시험성적을 마치 에너지 효율성에 대한 공인을 받은 것처럼 둔갑시켜 돈벌이에 활용해 온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관련 전문가는 "개인적으로 해당업체의 혼합수소가스 발생장치를 서류를 통해 검증했는데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기술연구원의 시험성적서와는 달리 전기를 너무 많이 소비해 에너지 효율성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국무총리실 관계자도 "현재까지 기술신뢰성을 검토한 결과 이론적으로는 실현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해당 전문가 "기술적으로 불가능"... 국무총리실 "이론적으로 실현 불가능"

해당업체의 각종시상 내역
 해당업체의 각종시상 내역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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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한국 과학기술의 메카로 꼽히는 한국과학기술원 등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인 기관에서 엉터리 제품을 지난달 친환경에너지경진대회 본선에 진출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친환경에너지경진대회의 경우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출연연구원 관련 박사, 변리사, 정보통신연구진흥원 등 정부 산하 평가센터 관계자들로 심사진이 구성돼 있다.

서류심사를 통과한 업체라 하더라도 면접심사와 현장방문, 종합토론 등의 과정을 거쳐야만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논란이 일자 한국과학기술원 측은 뒤늦게 진상조사단을 구성해 과학기술적 검증을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국무총리실 관계자도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하나 실제 가능한지 여부를 밝히기 위해 전문가 등과 함께 공개 실험 등 절차를 밟고 있다"며 "다만 검찰이 수사를 벌이고 있어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언론의 과학맹신주의, 황우석 사건에서 뭘 배웠나"

전북도가 해당업체로 보낸 지방산업단지 입주계약 체결 안내문
 전북도가 해당업체로 보낸 지방산업단지 입주계약 체결 안내문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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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해당 업체에 미리부터 각종 상을 준 정부와 과학기술계의 기술평가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진보신당이 목소리를 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진보신당은 지난달 해당 회사를 검찰에 고발한 데 이어 17일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과학기술원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과학기술원이 올해 '친환경전기에너지경진대회'에서 이 업체를 기술평가 부문에서 100개의 기업 및 대학 중 10개 본선기업으로 선정한 이유를 비롯해 장영실과학대상 및 각종 대상 수상 배경 등에 대한 수사"를 촉구했다. 이어 한국전기연구원이 해당업체에 발부한 시험성적서 발부 과정에 대해서도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진보신당  관계자는 "과학기술계 전반의 기술평가시스템에 대한 제도 개선과 정부의 수상 절차에 대한 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와 언론의 과학맹신주의와 피상적인 취재 및 확인 시스템이 다시 한 번 확인됐다"며 "황우석 사태를 겪으며 자성과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검찰은 피해자 규모가 광범위하고 피해액이 예상보다 클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별도의 수사팀을 구성하고 해당업체의 기술신뢰도 검증에 나선 상태다. 검찰은 해당업체의 기술이 엉터리로 밝혀질 경우 시험성적서를 왜곡 홍보한 배경 및 친환경경진대회 본선 진출 과정 등에 부당한 로비나 정치권 개입이 있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인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해당업체의 조길제 대표이사는 <오마이뉴스>와 통화를 통해 "그동안 받은 각종 특허와 각종 시상 내역이 객관적인 기술신뢰성을 뒷받침하고 있다"며 "수많은 특허나 상을 누가 그냥 주는 것 보았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현재 전북에서 1만평 규모의 공장을 짓고 있는 등 사업이 잘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 회사직원이 '상용화 기술도, 계획도 없다'고 증언한 데 대해서는 "해당 직원이 돈을 달라고 해 거부했더니 자기 마음대로 없는 얘기를 하고 다니는 것"이라며 "한마디로 정신병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보신당의 기자회견을 통한 지적에 대해서도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해당업체의 기술을 다룬 각종 언론보도.
 해당업체의 기술을 다룬 각종 언론보도.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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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수소에너지, #한국전기연구원, #한국과학기술원, #황우석, #과학맹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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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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