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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1일과 11월 1일 양일간에 걸쳐 서울 계동의 북촌문화센터 뒷마당에서 '우리술 문화 연구원의 '술빚는 사람들'이 마련한 전통주 전시회인 '향기로운 술 이야기'전이 있었습니다.

 

'술빚는 사람들'은 남선희 선생님을 비롯한 16명의 연구원들이 전통주의 제조법이 언급된 옛 문헌들을 발굴하고 그 문헌에 따라 오늘에 되살리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향기로운 술 이야기'전은 바로 그 연구 성과를 일반인들에게 내보이는 전시회입니다.

 

여섯 번째를 맞은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술은 정향극렬주를 비롯한 23가지였습니다.

 

 

우리의 빛나는 문화유산인 전통주는 각 고을마다, 혹은 각 명문가문마다 각기 다른 다양한 양주비법이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 때에는 주세를 징수하기 위해, 5·16이후에는 쌀의 소비를 줄이는 양곡정책에 의해 전통적인 증류식 소주의 제조가 금지되고 희석식 소주로 바뀌었습니다. 쌀의 소비를 촉진해야할 시점인 1991년 7월에 와서야 쌀로 술을 만들 수 있게 되었지요.

 

1995년도에 다시 자가 양조가 허락되기까지 오랫동안 허가된 도가 외에는 술 빚는 것이 금지되어 그 방법이 전승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우리술 문화 연구원의 '술빚는 사람들'은 뜻이 있는 분들과 연구모임을 만들어 함께 술빚기를 실험하고 매년 가을에 그것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전시를 합니다. 이번 전시회는 여섯 번째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였습니다. 

 

 

전시 외에도 송명섭 선생님의 '죽력고'이야기, 술자리에서의 바른 도와 예법을 담은 '향음주례'소개, 전신영 선생님의 막걸리 거르기 시연 등 술에 관한 풍부한 상식을 넓혀주는 부대행사도 곁들여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당들에게 이 술 전시회의 가장 큰 미덕은 시음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3가지의 국화꽃보다 향기로운 전통 가양주를 한 잔씩만 맛보아도 23세잔입니다.

 

제가 술항아리들을 한 바퀴 돌았을 때 북촌 한옥의 기왓골은 더욱 아름답고 사람들은 모두 다정다감해 보이며 현 세태에 대한 시름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저는 전통가양주의 술 한 방울에 얼마나 많은 수고가 담겨있는지를 저의 처가 몇 번 술 빚는 것을 보고 감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쌀을 여러 번 씻어 고두밥을 만들고, 잘 만든 누룩과 깨끗한 물을 섞어 진득하게 버무려 주어야합니다. 또한 잡균의 침투를 막기 위해 술독을 소독하고 담근 술은 온도를 잘 유지시켜 주어야 합니다. 술의 종류에 따라 빚은 술을 다시 빚는 이양주와 삼양주, 사양주 등 품이 계속 드는 작업의 연속입니다. 이렇게 공들인 술을 허투루 대하는 것은 제게 용서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이미 술이 취한 상태에서 계속 술을 먹는 일, 귀한 술을 먹고 남에게 해되는 말을 하는 일, 더구나 술로서 남과 시비(是非)하는 일은 귀한 술에 대한 예법에 어긋나는 일일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모독하는 일일 것입니다.

 

이 전시회에는 술이 있는 자리니 애주가들이 모여들게 마련이고 그분들은 대부분 도회지 빌딩의 그림자 아래에서도 화조풍월(花鳥風月)을 즐길 줄 아는 풍류객이 대부분입니다.

 

인사동 좁은 골목 안 '풍류사랑'의 주인인 최동락 선생님은 한학에 조예가 깊습니다. 인사동에서 천연염색교실을 운영하시는 이명선 원장님께서 이 분께 한학을 배우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명선 원장님도 한때 수십 명의 식구를 두고 출판사를 운영하시기도 했고 갤러리도 운영했던 아주 박식한 분입니다. 저는 최동락 선생님께 이 원장님을 가르치는 분이라면 궁구하신 학식의 깊이가 심해 같겠다고 농을 했습니다.

 

"스승은 밑을 높이는 사람입니다."

 

돌아오는 답에서 최 선생님의 인품을 능히 짐작하겠습니다.

 

 

현대건축은 그 다양한 조형성과 편리함과는 별개로 가장 기초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것도 힘겨워하는 것을 제 주위에서 많이 봅니다. 높은 강도의 콘크리트에도 불구하고 벽에 균열이 생기고 갖은 방수기법에도 불구하고 누수를 막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그것입니다.

 

계룡산에서 술을 빚고 그것을 가르치는 일이 업인 이진태 선생님께서 그에 대한 해법을 제시했습니다.

 

“거미집은 강한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거미는 성글게 집을 짓기 때문에 어떤 바람에도 허물어 지지 않는 집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초가집과 너와집도 빗물이 새는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지붕에 물매를 주지 않는 현대건축은 방수를 거듭 되풀이 하느라 품과 비용을 들이고도 늘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 없는 것입니다.

 

 

좋은 술과 좋은 술벗은 늘 대화의 주제와 서로의 가슴 사이를 막힘없이 가로지르게 합니다.

 

한나절 술을 맛보기 위한 서울나들이에서 술의 향기뿐만 아니라 사람의 향기를 담아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 관련정보우리 전통주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북촌문화센터에서 1년에 세 차례 3개월간 진행되는 ‘전통주 빚기 수업’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술 문화 연구원’의 남선희선생님께서 강의를 맡아 진행합니다. 소수의 관심 있는 분이 일주일에 한 차례 북촌문화센터에서 만나 ‘누룩만들기’, ‘향기 나는 재료를 활용한 술빚기’, ‘약재를 활용한 술빚기’, 고드밥과 백설기 등 재료의 활용법’, ‘소주내리기’ 등 가양주 빚기의 전반적인 방법을 전수하게 됩니다. 

매년 3월에 첫 강좌가 시작됩니다. 첫 번째는 3-5월, 두 번째는 6-8월, 세 번째는 9-11월까지 진행됩니다. 

저의 개인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되었습니다.


태그:#술, #가양주, #전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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