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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를 기록한 고야〉
▲ 책 겉그림 〈혼돈의 시대를 기록한 고야〉
ⓒ 아이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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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화가 ‘고야’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왕실과 귀족들의 아첨꾼 화가, 어두움과 고요의 편집증적 귀머거리 화가, 민중혁명과 사회 참여적 리얼리즘 화가,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 이상주의 화가 등 여러 평가가 엇가릴 듯하다.

그만큼 고야는 혼란스런 시대의 산 증인이다. 그의 삶이 가난에서 부자로 갑작스레 급부상하는가 하면, 나라의 왕도 여섯 번이나 바뀌고, 중세에서 근대의 계몽주의로 넘어가던 시대적 혼돈을 겪었다. 궁정화가로 바뀐 신분은 호화로웠지만 왕실의 명암이 엇갈릴 때마다 겪은 불안은 초조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 가운데 외국편 제 10번째로 나온 〈혼돈의 시대를 기록한 고야〉는 그의 그림과 함께 그가 겪은 인생 역경을 자세히 들여다 보게 해 준다. 그의 그림이 왜 빨갛고 찐하고 어둡고 침울한지, 왜 현실과 이상을 넘나드는지, 왕실이나 귀족의 초상화에만 머물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흐르는지를 자세히 알게 해 준다.        

사실 고야는 28세가 되기 전까지는 그렇다할 화가로서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고향을 떠나 로마를 여행하면서부터 많은 그림을 익히고 배웠으며, 호세파 바예우와 혼인한 이후 마드리드로 상경하면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그린 덕에 왕립 아카데미 회원에 선출될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유난히 빨갛고 찐한 색을 즐겨 사용했다. 왕실과 귀족들의 초상화를 담기 위함이었다. 드디어 1789년 카를로스 4세 때에 궁정화가로 임명되었으니 그토록 바라던 명성과 부를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초상화처럼 예쁘고 부드럽게 그리는 것보다 있는 생김새 그대로를 담아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한편 그의 그림 속에는 투우사들의 그림이 많다. 특히 족쇄에 묶인 투우사는 그가 사랑하던 그림이기도 했다. 그것은 소와 대등한 인간의 모습, 인간이 겪는 갖가지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인간 의지의 반영이요, 궁정에 묶여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자신의 처지를 극복하려는 자유의 날갯짓이기도 했다. 

“쉴새없이 변화하는 정치적 상황은 자신의 생존 자체를 위협합니다. 전쟁과 기근, 정치적 모함과 종교적 타락, 도처에 깔린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몽매, 사랑의 덧없음과 새털처럼 가벼운 인간의 마음, 배신과 비겁함이 판치는 인간 세상이 어쩌면 매순간 죽음과 대면하는 투우사의 심정에 자신을 투영시키도록 만들었을지도 모릅니다.”(158쪽)

그런가 하면 1810년부터는 〈전쟁의 참화〉를 그려내기 시작했고, 1814년에는 〈옷 입은 마하〉와 대비되는 〈옷 벗은 마하〉를 그려내어 외설스럽다는 이유로 당대의 종교재판소에 고발되어 출두하기까지 한다. 그것은 1793년 여행 중에 병을 얻어 귀머거리가 된 이후의 그림들이었으니, 그가 얻은 자유와 창의력의 결과였다.

그처럼 고야를 보는 눈은 시대마다 다르다. 어떤 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를 그려내는 리얼리즘의 대가로, 어떤 때는 민중혁명이나 사회참여적인 혁명화가로, 어느 한편에서는 모든 사회 규칙에 굴복한 아첨꾼이나 기회주의자로, 그리고 인간과 현실을 뛰어넘어 악마의 세계를 그려내는 초현실주의자로.

그것은 분명 그의 굴곡진 삶의 반증이다. 그의 시대적 삶이 없었던들 어떻게 나라를 지배하는 왕과 귀족을, 노동하는 민중과 수작 거는 남자와 여자를. 성직자들의 부패와 종교 재판의 공포를, 추위와 굶주림과 질병과 전쟁의 공포 속에 떠는 수많은 참상들을 그에게서 엿볼 수 있겠는가?

‘그림으로 만난 세계의 미술가들’을 시리즈로 엮어낸 이 기획에는 고흐와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피카소, 렘브란트와 로댕, 브뢰겔과 모네, 그리고 밀레에 관하여 펴낸 바 있고, 한국의 김홍도와 이중섭, 장승업과 정선과 김정희를 펴낸 바 있다. 이들의 그림과 함께 설명해 주는 내용들이 어찌나 알뜰하고 꼼꼼한지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알찬 큐레이터 역할을 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혼돈의 시대를 기록한 고야

조이한 지음, 아이세움(2008)


태그:#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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