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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의 '노동 지옥'

 

공기 중에 먼지와 가루가 풀풀 날리는 모습이 보인다. 침침하게 어두운 직육각형 공장 안에서 백 명 남짓한 노동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탁하다는 말로 다 설명 못할 공기지만 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다.

 

이따금씩 같이 일하던 일꾼이 픽 쓰러지고 병원에서 진폐증이라는 진단을 받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지 모른다. 폐에 암덩이가 생겨도 이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누구도 이들에게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가르쳐준 적이 없다.

 

그냥 이들은 일하기를 원한다. 머나먼 땅에서부터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하여 여기까지 왔다. 노동자들 스스로 잔업을 원한다. 하루에 12시간씩 쉬지 않고 일하면 한 달에 150달러 남짓의 돈이 들어온다.

 

그러다 결국은 독한 피로감 때문에 몸의 일부가 절단되는 사고가 났다. 사장이 병원으로 몸소 찾아와 보상금 봉투를 주고 갔다. 성한 팔과 입을 총동원해 봉투를 열어보니 900달러가 들었다. 팔 하나에 대한 적정 가격이다. 이 근방에서 불구가 되는 노동자들은 부지기수고 보상금 또한 시장논리를 따라 값이 매겨진다.

 

"그동안 수고했어. 다시는 나오지 마. 너 아니라도 일할 사람은 많아."

 

애덤 스미스며, 보이지 않는 손이며, 수요와 공급 곡선 따위 알아도 무슨 소용인가. 노동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그저 죽어라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 짐승처럼 꾹 참아가며 일하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위의 살벌한 풍경은 언제 어디 풍경일까? 산업혁명이 한창인 18세기 끝자락의 영국일까, 노동권에 대한 탄압이 극심한 제 5공화국 시절의 한국일까, 아니면 세계화가 덮치며 지옥이 된 20세기의 케냐일까.

 

답은 금방 보인다. 황해로 눈을 돌리면 거대한 대륙의 땅덩어리가 보인다. 전해 듣기만 해도 우울해지는 21세기 중국의 풍경이다. 사실 무척 놀랍거나 새삼스러운 모습은 아니다. 삼십 년 전 대한민국으로 시간을 돌리면 별로 다를 것도 없고 지금도 아예 사라진 풍경은 아니다. 다른 것은 중국 땅의 엄청난 덩치다. 한국과는 시장 크기 자체가 비교 대상이 아니다. 덩샤오핑이 검든 희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좋다고 했다. 중국은 고양이가 아니라 호랑이다. 무서운 대호(大虎)다.

 

여기저기 '중국 가격'이 숨어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주사를 맞은 중국은 어떤 자본주의 국가보다도 크고, 빠르고, 천박한 시장으로 변화해 왔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바이어'들을 홀리게 하는 매력은 단연 싼 가격이다. 노동자들이 괴로워할수록 자본가들은 기뻐했다. 인권이 바닥을 칠 때 가격 또한 바닥을 쳤다. 역사상 중국처럼 싸게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없었다. 중국 상품들은 '진짜 싼 가격'의 대명사가 되었다. '중국 가격(China Price)'이란 유령의 탄생이다.

 

한국의 평범한 소비자들에게 중국산이란 떨떠름한 것이다. 중국산이라 하면 어쩐지 불량 제품일 것 같다. 싸게 만들려고 기를 쓰는데 제대로 된 물건이 나오기 힘든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중국 가격'과 함께 어쩔 수 없이 따라온 이미지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중국 상품은 '싸지만 나쁜 것'이란 이미지가 생겼다. 어지간히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고서야 되도록 중국산은 피하려고 한다. 사실 그냥 단순한 편견만은 아니다. 정말로 중국산은 고장이나 불량이 잦다. 또한 책과 영화는 물론 윈도우 운영체제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복제하는 '짝퉁 천국'의 모습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그러다 최근 벌어진 '멜라민 사태'는 결정타였다. 중국의 불량 초저가 원료는 전세계 아이들이 즐겨 먹는 과자, 초콜릿, 아이스크림, 인스턴트 식품 속에 들어갔다. 세상은 경악했다.

 

새삼 중국 가격의 악마성이 눈총을 받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어느새 '메이드 인 차이나'의 유령이 세계 시장을 냉큼 먹어버렸다는 것이다. 우리는 중국산을 사지 않는다고 애를 썼지만 일상 구석구석에 숨어 있었다. 중국산은 우리의 먹을거리에, 컴퓨터에, 옷가지에, 필기구에, 핸드폰에 있다.

 

더 이상 중국은 속옷이나 목욕타월만을 수출하는 나라가 아니다. 중국 가격은 고차원적 기술이 필요한 제품까지 시장을 탐욕스레 먹어치우고 있다. 중국산 유령은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우리 모두가 만든 '메이드 인 차이나'의 유령

 

내친김에 주위 중국산을 찾아보았다. 당장 신고 있는 아디다스 운동화가 중국산이었다. 면바지가 중국산이었다. 입고 일하는 유니폼도 중국산이었고, 친구가 열심히 뿅뿅거리던 닌텐도 게임기를 빼앗아 보니까 역시 중국산이다. 할인마트에 장 보러 갔다가 유기농 두부라고 해서 살펴보니까 중국산 콩이다.

 

어이구, 차라리 중국산이 아닌 걸 찾는 게 빠르지 않을까 싶다. 우물쭈물 살다가 나도 '메이드 인 차이나' 유령에 씌어버린 것이다. 퇴마사를 부를 수도 없고 이걸 어쩌나 발 동동 구를 수밖에.

 

모두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라워했던 중국의 고도성장은 숫자로 표현이 힘들 만큼 많은 노동자들이 거름이 되었기에 가능했다. 반짝반짝한 경제성장률 뒤편 보이지 않는 '노동 지옥'은 개인이 어쩌지 못할 거대한 시스템의 문제다. 중국 자본가들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와 미국 대기업과 한국 소비자까지 '모두 함께' 지옥을 만들어냈다.

 

오늘도 중국 으슥한 곳에 지어진 '그림자 공장'에서는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일꾼들이 있다. '그림자 공장'이란 중국 자본가가 NGO와 정부, 해외기업의 감사를 피하고 더 많은 물건을 생산하려 짓는 공장을 말한다.

 

이곳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일하는 노동자들 역시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일하는 이들이 어떤 대접을 받을지 상상이 되지 않나. 그러나 여전히 '중국 가격'을 원하기 때문에 중국과 거래하는 해외기업은 그림자 공장의 존재를 알고서도 모른 체 한다. 많은 대형할인매장에서는 최저가 정책을 거듭 강조한다.

 

"우리 물건이 최고 쌉니다. 아니라면 오천원 상품권으로 보상해드리죠."

 

소비자 역시 더 싼 물건을 찾아 헤맨다. 소비자에게 바다 건너 땅 노동자의 인권이야 알 바 아니니까.

 

지은이는 <파이낸셜 타임스>의 중국 특파원으로서 3년이 넘도록 해안 경제특구의 공장부터 산골 벽촌의 불법 광산까지 집요하게 '중국 가격'을 추격했다. 정확한 통계나 수치를 따르기보다는 몸소 발로 뛰면서 만난 사람들의 인터뷰가 많다.

 

익히지 않은 날것의 에너지가 생생하다. 그래서 <차이나 프라이스(중국 가격)>는 무척 슬프고 화나는 현장 보고서다. 보고서에서 애써 감정을 걷어내지 않았다. 소년이 노인이 되기까지 고된 노동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이들의 울음소리가 가득하다.

 

거기서 지은이는 멈추지 않는다. 부당한 노동에 싸우는 노력들 또한 귀하게 옮겨 썼다. 요즘 중국에서는 노동자들의 법률 투쟁이 한창이다. 숱한 노동쟁의부터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논의까지 '중국 가격'을 두고 벌어지는 일들을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싶다.

 

중국 가격은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다. 한국 소비자가 매일 입는 옷, 매일 먹는 음식, 매일 쓰는 제품에 중국산 유령이 숨어 있다. 당장 당신의 나이키 운동화부터 살펴보는 것이 어떨까. 요즘 대한민국처럼 '메이드 인 차이나'의 유령이 바로 일상 주변에 있는 나라에서는 과연 어떤 부적을 쓸 것인지 골치 아파할 필요가 있다. 슬그머니 다가온 유령이 목을 조를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차이나 프라이스

알렉산드라 하니 지음, 이경식 옮김, 황소자리(2008)


태그:#차이나 프라이스, #중국 가격, #중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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