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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니다스왕(Leonidas)은 에피알테스(Ephialtes)를 허락하지 않았다. 스파르타는 개개인으로 싸우는 게 아닌 하나의 거대한 부대로서 싸운다는 말을 남긴 채…. 에피알테스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그리고 레오니다스왕에게 목이 찢어지듯이 외친다. 당신들은 틀렸다! 에피알테스의 오열은 진격해오는 100만의 페르시아군의 진격소리에 서서히 묻힌다.

 

이윽고 페르시아와 스파르타는 한 바탕의 피바람으로 전투를 장식한다. 전투로 인해 일어난 누렇고 뽀얀 연기구름이 꺼질 무렵, 누렇던 테르모필레(Thermopylae)의 땅은 지독하고 칙칙한 붉은 색으로 짙게 물든다. 지나간 전투 뒤로, 에피알테스의 발걸음은 페르시아의 진영으로 향한다.

 

페르시아를 다스리는 크세르크세스대왕(Xerxes I)의 막사 속으로 발걸음을 디딘 에피알테스는 자신의 눈을 순간 믿을 수 없다. 매혹적으로 생긴 금발의 미녀들은 천이 아닌 금과 은으로 몸을 가리고 있으며, 수많은 화려한 장신구들로 몸에다가 수를 놓았다. 관능적이고 유혹적인 눈빛과 몸짓으로 춤을 추면서 탐닉하며 당당하게 쾌락을 즐기며 마약의 향기를 짙게 뿌린다. 한밤중이지만 천장부터 바닥까지 깔아놓은 온갖 금과 보화들로, 그리고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은 대낮보다 훨씬 밝게 비추인다.

 

수많은 미녀들과, 그녀들의 거절하기 힘든 손짓의 마지막에는 스킨헤드에 짙은 화장의, 그리고 금붙이로 몸을 감싸되, 당당하게 근육을 드러낸 무거운 카리스마의 크세르크세스가 서있다. 크세르크세스의 두꺼운 입술은 에피알테스의 흉측한 몸을 창조한 그리스의 신들을 저주하고 스스로 신이라 말하며 그에게 다가간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사치와 향락은 계속되며 황금의 불빛은 끝없이 타오른다.

 

당신의 기억 속 페르시아는 어떤 모습입니까?

 

영화 <300>에서는 페르시아를 이렇게 묘사한다. 사치와 향락이라는 짙은 향수로, 그리고 금은보화와 미녀들로서 화려함의 극치를 표현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며 그러한 페르시아의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깊은 인상이 마음 속 한편에 새겨진다.

 

영화 <300>을 본 이들은 그렇게 페르시아를 기억한다. 혹자는 페르시아왕자 게임, 페르시아고양이로 또 다른 이미지를 기억한다. 하지만 누구도 진정 페르시아의 모습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막연히 떠오르는 잔상은 세계사교과서의 한 페이지에 나오는 고대의 왕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의 인식에서 페르시아는 위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진정한 모습이 아니다. 진짜 페르시아의 모습은 어떠하였는지에 대해 한번 의문을 갖고 감상해보고 싶지 않는가? 그런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지금 마침 좋은 기회가 하나 있다.

 

그 기회는 바로 '황금의 제국 페르시아 특별전'. 지난 4월부터 8월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페르시아 특별전이 이달 7일부터 내년 1월 11일까지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열린다. 나는 지난 11일 특별전을 관람하고 왔다.

 

이번 전시회는 이란의 대표적인 다섯 개의 국립박물관에서 가져온 진귀한 유물들로 특별전시관을 가득 채우는 이 페르시아 특별전은, 그동안 페르시아에 대한 편견에 신선한 충격으로, 또 그 화려한 문명의 진상(眞想)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다가온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여러 특별전들은, 사실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아닌 외부의 사람들은 쉽게 접하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는 것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여러 특별전들이 장소를 옮겨 다른 국립박물관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이전 전시되는 경우가 많다.

 

페르시아는 어떤 나라일까?

 

페르시아(Persia). 페르시아는 아리아인들로 인해 세워졌으며 이란 서남부에 위치하였다. 이 페르시아가 있던 땅을 고대 페르시아어로는 퍼르스(Fars), 그리스어로는 페르시스(Persis)라고 불렀다. 페르시아라는 명칭은 주로 서양인들이 그 지역, 즉 지금의 이란에 있었던 여러 국가들을 일컫는 말로서, 1935년 이란 정부의 요청으로 페르시아가 아닌 이란으로 불리고 있다.

 

페르시아는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옆에 위치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비옥한 농경지역임에 반해, 페르시아는 이란고원에 위치하여 가뭄과 기근에 시달렸다. 비옥한 농경지대로 인하여 농산물이 풍부한 메소포타미아는 석재나 목재, 금속, 보석, 귀금속 등은 전무에 가까워 멀리서 들여올 수밖에 없었고,

 

반면 페르시아는 이러한 자원들이 풍부하게 있었기에, 두 지역 간에는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게 되었다. 상호간에 활발한 교류는 두 문명을 발달시키는 주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그럼 이번 페르시아 특별전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과연 어떠한 시대의 어떠한 유물들일까?

 

교통이 편리하고 자원이 풍부했던 이란 고원에는 일찍부터 문명의 씨앗이 점차 싹트고 있었다. 기원전 9000년 전부터 신석기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신석기시대의 유물부터 전시를 하고 있는데, 페르시아 특별전에 전시된 신석기시대 유물들은 다수가 토기로서 기원전 4000~3000년경의 유물들을 선보였다. 화려한 채색토기들과 정교한 회색토기, 그리고 역동적인 모습의 상형토기들이 돋보인다.

 

상형토기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황소의 모습을 한 토기들, 그러나 이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 부분이 특이하게 되어있다. 이는 주자(注子)라고 하여 물이나 술을 따르는 그릇의 용도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사슴이나 염소, 사람 등의 모습이 정교하게 만들어져있고, 그 보존상태도 깨끗하여 보는 이들의 찬사를 자아낸다.

 

이란의 청동기시대는 기원전 3000년 전부터 시작한다. 이들을 대표하는 청동기를 루리스탄청동기(Luristan Bronze)라고 부르는데, 이는 특정한 민족이나 시기를 말하는 게 아닌, 기원전 2000년기부터 아케메네스 왕조의 등장 이전까지에 쓰인 모든 청동기문화를 말한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에 온 청동유물들 중 무기류들을 제외한 웬만한 기원전 1000년기 이후, 즉 이란의 철기시대 때 만들어 진 유물들이다. 그렇기에 장식성이 뛰어난 것들이 많으며, 정교하게 만들어져 역동적으로 발전하던 당대의 실살을 잘 알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면모 뒤에는 다수의 유물들이 도굴로 인하여 발견된 것이라는 씁쓸한 과거가 있다.

 

빼어난 예술성과 정교함을 자랑하는 루리스탄 청동기를 기반으로 철기시대가 시작되고, 이때부터 이란은 본격적으로 역사시대로 돌입한다. 우리가 흔히 페르시아 제국으로 더 알려진 아케메네스 왕조 이전의 역사시대는 엘람과 메디아로 대표된다. 엘람(Elam)은 수사(Susa)를 중심으로 하는 이란 서부의 민족과 왕국, 언어를 의미한다. 메소포타미아와의 활발한 교역으로 일찍부터 국가와 도시가 발달하였다. 그리고 메디아(Media)는 기마 유목민들이 세운 바빌로니아와 동맹을 맺어 아시리아를 정벌하는 등 대제국으로 성장하였으나 아케메네스 왕조에 의해 정복된다. 이 시대의 유물들은 그전에 비해 더욱더 화려하고 정교하며, 국제적인 면모도 보여준다.

 

아프리카에서 인도까지 영광을 높인 페르시아 제국

 

 

유럽인들에게 주로 페르시아 제국으로 알려진 아케메네스 왕조(The Achaemenid Dynasty)는 세계적인 대제국이었다. 기원전 550년~520년 사이에 건국된 이 나라는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하며 아프리카 북부부터 인더스강까지 그 영토를 넓힌 거대한 제국이었다. 아케메네스 왕조는 그들의 영광을 표현하고자 다리우스대왕(Darius I) 때 페르세폴리스(Persepolis)라는 거대한 궁궐을 만들었다. 이 궁궐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대왕에 의하여 폐허가 되지만 놀랄만한 예술성을 지닌 정교한 건축물로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번 국립대구박물관에도 이 페르세폴리스의 위용을 알 수 있게 하는 수많은 유물들이 왔다. 마케도니아군의 파괴와 시간이 흐르면서 일어난 훼손 등으로 인하여 조각조각난 건축부재들이 다수였지만, 이들의 예술성은 그야말로 놀아울 뿐이다. 특히 페르시아를 대표하는 종교였던 조로아스터교의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의 부조랄지, 외국 사신들의 부조(심지어 흑인까지 보이는) 등은 그들의 영광이 얼마나 대단하였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이 외에도 이번 특별전에서 자랑하는 수많은 황금유물들 중에서 다수가 아케메네스 왕조 때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아케메네스왕조를 멸망시키고 그들의 황금을 마케도니아로 실어 보냈다고 하는데, 그때 약탈한 보물들을 운반하는 데 2만 마리의 가축이 동원됬다고하니 그 부가 어느 정도인지 쉽게 상상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이들의 정교함은 지금 봐도 믿기기 힘들 정도로 놀라움의 감탄을 그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도 200년 후, 다리우스 3세(Darius III)에 이르러서 마케도니아의 젊고 야심찬 왕,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원정으로 인하여 종언을 고하게 된다. 이 후 잠시 마케도니아제국(Macedonia)의 지배를 받다가, 알렉산드로스대왕이 요절하고 마케도니아제국이 4왕국으로 갈라지자 셀레우코스 제국(Seleucus)의 지배를 받게 된다. 마케도니아제국과 셀레우코스제국이 다스린 기간은 사실 얼마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때 헬레니즘(Hellenism)문화가 들어오면서 동서문명의 융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꽃을 피우게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아 이들에게 반기를 든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파르티아제국(Parthia)이다. 이들은 스스로 아케메네스왕조의 후예라 주장하였고, 헬레니즘문화와 함께 아케메네스문화의 복원 및 계승에 전력을 다하였다. 페르시아 특별전에서는 이 과정을 중요시여겨 관련 유물들을 전시해 놨는데 다수가 헬레니즘문화를 받아들인 당시 파르티아의 유물들로서 서로간의 문화융합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흔히 페르시아로 알려진 아케메네스왕조와 사산왕조를 강조하다보니 파르티아의 400년이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유물의 상대적인 빈약한 전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 파르티아를 멸망시키고 세워진 국가가 바로 사산왕조. 사산왕조(The Sassanian Dynasty)는 아케메네스왕조의 부활을 주장하였고 로마와 함께 당시 세계를 주름잡는 거대한 제국이었다. 이들은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았으며 수많은 예술품들을 남겼다. 신라에서 출토된 유리제품도 바로 이 시대의 유물로서 뛰어난 공예품들을 양산해내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그러한 점을 부각하여 석조조각, 금속공예품, 그리고 유리공예품들을 선보였다.

 

이렇게 페르시아 특별전은 그 전에 위에서 말한 간단한 기본지식을 보고 감상한다면 더욱더 깊은 감상을 가능하게 해준다. 다만 아쉬운 점은 신라와의 교역에 관련된 유물들이 또 다른 특별전 등으로 인하여 분산됨으로 인하여 이곳의 전시에서 빈약한 면이 없잖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본디 목적이 페르시아였고, 또 그러한 페르시아의 화려한 문물을 유감없이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한번쯤 가족들과 함께 대구로 페르시아 여행을 떠나보는 게 어떨까?

덧붙이는 글 | 2008년 10월 11일 페르시아 특별전을 갔다와서 쓴 글입니다.

페르시아 특별전은 국립중앙박물관을 이어 국립대구박물관에서 2008년 10월 7일부터 시작하여, 2009년 1월 11일까지 전시됩니다.


태그:#페르시아, #페르시아특별전, #국립대구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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