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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쌀직불금 불법수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10월 초에 이 문제가 처음 불거진 뒤 꽤 많은 내용이 공개됐지만 국회가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내야 할 의혹과  처리해야 할 과제는 아직도 산더미다.

 

1. 명단, 공개될 수 있을까

 

한나라당과 민주당, 선진창조모임은 지난 20일 국정조사 합의문에서 쌀직불금 수령자 명단 공개가 국정조사의 전제조건이라고 했다. 정치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모호하게 쓰고 나름대로 해석하기'의 전형이다.

 

민주당이 말하는 '명단'은 부당 수령 추정자 28만여 명(직업이 밝혀진 17만 명과 그렇지 않은 11만 명) 전체를 말한다. 한나라당은 사전 조사를 해서 선의의 피해자를 가려내고 진짜 부당 수령자만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28만 명의 명단 전부를 인터넷에 올리라는 게 아니라 국정조사 특위가 넘겨받아서 고위 공무원들부터 우선 밝혀내자"고 하고, 한나라당은 "행정안전부 조사 등을 통해 걸러내자"고 하지만, 어느 방식이든 '옥석'을 가려내 정확한 명단을 확보하기는 대단히 어렵다.

 

쌀직불금 감사 책임자였던 박종구 감사위원은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하는 의원들에게 "명단을 확정하려면 본인 확인을 다 받아야 하는데 (우리가) 28만 명을 어떻게 확인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사자들이 바로 시인하면 다행이지만, 땅투기 은폐와 양도소득세 탈루 등을 목적으로 자경확인서까지 위조했을 경우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실경작자를 확인하는데 필수적인 농지 원부도, 2007년 당시 박홍수 농림부 장관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행정자치부 도움을 얻어 정리하는데 3년이 걸린다"고 보고했을 정도로 부실한 상태다.

 

게다가 농림부는 쌀직불금 수령대상자를 "실제경작 또는 경영하는 것으로 일부 위탁영농도 포함되며, 소유농지에서 1/2 이상을 자기 노동력으로 경작해야 하는 농지법상 '자경'과는 다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실경작자가 아닌 사람도 쌀직불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터놓은 것이다. 이봉화 전 차관도 이를 근거로 법적으로는 문제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난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도 명단을 발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결국 국정조사를 해도  3급이상 고위공직자 등 극히 일부만 밝혀진 채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 많다.

 

노 전 대통령쪽과 현 정부, 특히 감사원이 명단공개에 대해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2. 감사원은 왜 비공개했나

 

이번 국정조사의 최대쟁점이다. 노 전 대통령쪽과 감사원, 정부여당을 3자로 놓고 볼 때, 노 전 대통령쪽과 감사원의 해명은 일치한다.

 

2006년 말과 2007년 초에 "쌀직불금이 새고 있다"는 언론보도와 농민단체의 진정 등이 제기되면서 이호철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2007년 초 감사원에 감사를 요청했고 감사원도 이에 대한 감사를 준비하고 있던 차에, 애초 예정됐던 9월에서 3월로 감사시점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사에 착수해 감사결과를 확정짓기 전인 6월 15일 감사원 해당국장 등이 이호철 전 실장에게 사전에 보고했고, 5일 뒤인 6월 20일 한미FTA 후속농업대책 마련을 위한 농림부 업무보고자리에 김조원 감사원 사무총장도 배석해 감사내용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감사원이 이례적으로 감사결과를 확정짓기 전에 대통령에게 사전 보고했느냐는 점이 지적된다. 이 전 실장은 "한미FTA에 대한 후속대책의 핵심이 쌀직불금 문제였기 때문에 감사원 감사내용을 참고해야 했다"고 말한다.

 

2007년 6월 20일 감사원의 대통령 보고상황에 대해서는 뜻밖의 인물로부터 상세한 증언이 나왔다. 대통령에 대한 보고서 작성자로서, 김 사무총장을 수행한 이상욱 감사관이 현장에서 "보고를 받은 노 대통령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박홍수 농림부 장관을 질책하면서 제도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이로써 문제의 감사원 감사가 애초 쌀직불금제도에 대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던 노 전 대통령쪽이 지시한 것이며, 그 결과에 대해서도 나름의 조치를 취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런 정황에 대해 "생각보다도 더 심각한 실태에 깜짝 놀란 노 대통령이 불과 5개월 앞둔 대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은폐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라는 의혹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감사원은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약 한달 후인 7월 26일 감사결과에 대해 비공개결정을 했고 다음달 1일에는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활용해 만든 감사자료가 저장돼 있는 한국농촌공사 서버에서 이 자료를 삭제했다.

 

당시 회의록에는 처음에는 공개를 주장했던 전윤철 감사원장이 박종구 감사위원과 김조원 사무총장의 의견을 받아들여 비공개로 결정된 것으로 돼 있다. 한나라당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출신인 김 사무총장이 청와대의 뜻을 받들어 '은폐'를 주도했다고 보고 있다. 그해 감사원이 비공개 결정을 내린 11건 중 10건은 국방 또는 개인신상과 관련된 것이고, 이 한 건만 예외였다는 점도 강조된다.

 

반면 감사원은 "제도개선을 목적으로 한 감사였고, 추정치를 공개할 수는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고, 노 전 대통령쪽도 "명단은 몰랐으며, 명단이 공개됐다면 오히려 한나라당이 곤란하지 않겠느냐"고 반박했다.

 

3. 농림부는 왜 '반쪽 이행'했나

 

노 전 대통령쪽의 한 관계자는 "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20일 감사원 보고를 받은 뒤 박홍수 농림부 장관에게 '제도개선에 대책과 함께 감사내용을 발표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부재지주들이 계약을 해지해 소작농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노 전 대통령은 '개선안 마련'과 '발표'라는 두가지 지침을 준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현재까지 상황을 볼 때 농림부는 개선안 마련 작업만을 했다.

 

그해 6월 26일 농림부는 '쌀소득보전 직불제 제도개선 TF'를 구성한 뒤, 8월 8일에 1차 개선안을 만들어 9월에 공청회를 열었다. 이어 11월에 '쌀소득등의 보전에관한 법률' 개정안을 만들어 12월에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농림부 자체 프로세스를 진행한 것이다.

 

정권이 교체된 올해 2월 이후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가 지난 7일 정부가 개정안을 국회에 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현 정부 인수위에서도 논의가 있었고, 3월 국무회의에서도 말이 나왔는데 그 뒤 7개월동안은 무엇을 한 것이냐"고 비판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노 전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받았다는 박홍수 전 장관은 올해 6월 민주당 사무총장으로 일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발표를 하려면 본인확인 등을 통해 '추정'이 아닌 '확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매일경제> 신문 21일자에는 농림부가 그같은 작업을 한 흔적이 보도되었다.

 

 농림부 내부문건을 입수했다는 매경은 "'쌀 직불제 제도개선TF'가 실경작이 의심되는 부당 수령자에 대한 '별도 리스트'를 작성해 특별관리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며,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와 협의를 통해 주민 정보, 지적 정보, 농지원부, 건강보험 등 다른 관련 부처가 소유한 정보들을 파악할 수 있는 연계망 구축 방안도 검토했다"고 전했다. 농림부는 문건의 존재자체를 부인하고 있지만, 그 개연성은 적지 않다.

 

4. 부재지주 땅투기 문제로 확대할 수 있을까

 

쌀직불금문제의 본질은 부재지주들의 땅투기 문제다. 농사를 겸하고 있는 '투잡족'을 제외한 부당수령자들의 목표는 ha당 70만원(고정직불금)에 불과한 직불금이 아니다.

 

현행 농지법은 1년 이상 농사를 짓지 않으면 지자체장이 토지를 처분하도록 이행 명령을 내리고, 1년 이내에 해당 농지를 처분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농지를 팔때까지 매년 농지가격의 20%에 해당하는 '농지처분 이행강제금'을 내야 한다.

 

따라서 '자경'을 입증함으로써 땅투기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보증서로서 쌀직불금을 신청한 것이다. 이 때문에 쌀직불금을 받을 수 있는 소작자의 24% 정도가 지주의 눈치가 보여서 직불금을 신청하지 못한 것이다.

 

이같은 부재지주의 땅투기 문제가 '쌀직불금 제도'의 허점을 뚫고 드러난 것이다.

 

이미 '경자유전의 원칙'은 헌법에만 남아있을 정도로 무너져 있다. 2006년 기준으로 전체 농지 중 임대차 면적이 43%이고, 임차농 비율은 62.5%에 달한다.

 

실경작자 여부를 가릴수 있는 기준인 농지 원부도 지극히 부실하다. 감사원의 쌀직불금실태 감사보고서는 실태를 이렇게 전한다.

 

"농지 원부 작성이 의무가 아닌 임의사항으로 운용돼 다수 필지가 미등재(농지조서 관리라는 농지 1582만 필지 중 농지원부에 등재된 748만필지(40.4%)에 불과)돼 있고, 마을이장 확인서와 영농계획서만 제출하면 농지취득자격증명 및 농지 원부의 작성이 가능…감사원에서 실제 농지 원부와 행정자치부 토지대장을 전산대사(대조)한 결과, 농지 원부 중 29%는 아예 농지소유자를 기재하지 않은 것이고, 14%는 토지대장상 소유주와 상이하며, 2%는 토지대장에 존재하지 않는 지번으로 파악됐다."

 

국회가 실무까지 맡을 일은 아니지만, 국회의 문제의식은 여기까지 나가야 한다. 국민의 공분이 확산된 상황을 놓치면 다시 꺼내기 어렵다. 우리 국회가 과연 이런 의혹을 밝혀내고, 그 후속 과제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태그:#쌀직불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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