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ESPN 김민아 아나운서

MBC ESPN 김민아 아나운서 ⓒ 곽진성


피겨 선수였던 한 소녀가 있다. 최고의 선수를 꿈꿨던 소녀는 안타깝게도 조기 은퇴라는 좌절을 겪는다. 하지만 그 뒤, 땀어린 노력 끝에 선망의 대상인 스포츠 아나운서가 되었다. 그리고 입사 1년 만에, 국내 축구방송 최초로 아나운서 이름을 걸고 진행되는 <김민아의 유럽 축구 GOALS(MBC-ESPN, 금요일 밤 11시 30분)>의 주인공이 된다. 

이는 여느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MBC ESPN 김민아 아나운서의 실제 삶이다. 26살이 되어버린 피겨 소녀, 이제는 '아나운서'란 이름이 익숙한 김민아는 자신의 주요 담당 업무인 축구와 오랜 꿈인 피겨 스케이팅을 진정 즐기며 꿈을 향해 전진해 나가고 있다. '열정'과 '오기'가 빚어낸 그의 인생은 유난히 빛이 난다... 기자의 말

[장면 #1] '열정'의 피겨선수 김민아

지금부터 16년 전. 대구 파동 아이스링크장. 그 곳엔 피겨 특강을 배우던 한 소녀가 있었다. 그의 피겨스케이팅 실력은 눈에 띄었다. 체력이 좋고 동작에 힘이 넘쳤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본 한 코치는 그 소녀에게 다가와 넌지시 말했다.

"너 피겨선수 해보지 않을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 아나운서 MBC ESPN 김민아 아나운서(26)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 아나운서 MBC ESPN 김민아 아나운서(26) ⓒ 곽진성

피겨가 마냥 좋았던 어린 소녀, 그래서 그는 망설임 없이 피겨 선수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 소녀의 이름은 김민아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한 그는 은반 위에 최고로 빛나는 선수를 꿈꿨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혹독한 훈련도 꿈을 위해 견뎌냈다.

그런 노력의 결과로 중학교 때는 전국체전에 참가해 메달을 따낼 수 있었다. 전국체전 메달리스트. 김민아에게는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는 듯했다. 국가대표 상비군클래스인 6급 시험도 통과했다.

"미셜 콴 같은 선수가 되고 싶었어요. 점프에서도 완벽하고 표정도 우아한 그런 선수요."

하지만 그런 장밋빛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17살. 고등학생이 된 피겨 선수 김민아를 기다린 건 슬럼프였다. 연이은 점프 실수 때문에 대회 성적은 밑으로 떨어졌다. 목표로 했던 최고의 피겨 선수란 꿈에는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었다.

"피겨는 17살 때 최고 실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참 힘든 것 같아요. 고난이도 점프를 어릴 때 성공시키지 못하면 나이가 들수록 성공시킬 확률이 더 낮아지거든요. 선택을 해야했죠. 그게 최선의 방법이었구요. 그게 17살이었어요."

결국 김민아는 고민 끝에 선수생활을 포기해야 겠다고 결론을 내린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만두기엔 뭔가 깔끔하지 못했다. 그래서 마지막 대회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연기를 선보이고 선수생활을 끝내야겠다고 다짐한다.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1999년 3월. 피겨스케이팅 종별 선수권 대회(6급조출전)는 김민아에겐 피겨 선수로 마지막 기억이 될 은퇴 경기였다.

그는 마지막 대회에서 종합성적 3위를 기록한다. 나쁜 성적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될 만큼 최고의 성적도 아니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이성적인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김민아는 스스로 위안했다. 이제 다른 꿈을 향해 앞만 보고 내달려야만 한다고 그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렇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먼 미래에 다시 피겨스케이팅을 만나게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한 채 말이다.

[장면 #2] '오기'의 아나운서 지망생

 MBC ESPN 김민아 아나운서

MBC ESPN 김민아 아나운서 ⓒ 곽진성



피겨스케이팅을 그만둔 김민아가 다른 꿈을 찾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동경해온 스포츠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 김민아는 그 꿈을 위해 2년간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연세대 불어불문학과에 합격한다.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그만 둔 후 노력 끝에 대학에 합격했기에, 그에게 있어 스포츠 아나운서란 꿈은 더욱 영글어가는 열매와 같았다.

"선수도 해봤고, 관중도 되어봤고, 그리고 방송에 대해 준비도 했고! 그래서 조금 쉬울 줄 알았어요. 당시엔 선수의 경험, 관중이 원하는 방송이 뭔지 제가 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아나운서란 꿈을 이루기는 쉽지 않은 길이었다. 수백 대 일의 높은 벽에 번번이 좌절했다. 게다가 스포츠 아나운서는 상시 채용도 아니었기에 고민은 깊어만 갔다.

그런데 그즈음 꿈에 그리던 스포츠채널 MBC ESPN의 채용 공고가 나왔다. 실망하던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번에는 면접에 임하는 각오부터 남달랐다. 후회가 없어야 된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런 다짐 덕분일까? 그는 면접장에서 남들이 흔히 할 수 없는 파격을 선보인다. 일종의 오기였다.

"독특하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카메라 테스트 볼 때 단발머리 대신에 레게머리를 하고 갔죠. 그렇게라도 해서 떨어져보고 싶었어요. 너무 평범하게 해서 떨어지면 후회될 것 같더라구요. 당시엔 이미 너무 많이 떨어져본 상태였거든요. 파격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낸거죠. 우선 선배님들한테 감사드려요. 좋게 봐주셨으니까."

결과는 합격이었다.

[장면 #3] 꿈은 이루어진다! <김민아의 유럽 축구 GOALS>!

 MBC ESPN 김민아(26) 아나운서

MBC ESPN 김민아(26) 아나운서 ⓒ 곽진성


MBC ESPN의 스포츠 아나운서라는 직함에 설레던 것도 잠시. 김민아는 축구 캐스터라는 새로운 길로 들어서야만 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때도 축구에 별 관심이 없던 그에게 축구는 결코 만만한 분야가 아니었다. 특히 영국 프리미어리그가 그랬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처럼 일일이 외국 선수들의 명단과 특성 등을 파악해야 했다.

하지만 프리미어리그를 밤 늦도록 시청하면서 김민아는 점점 축구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골을 넣는 대스타들보다 파브레가스(아스날), 램퍼드(첼시), 긱스(맨체스터 U) 등 골을 만들어주는 도움자들의 매력에 반했다.

"골을 직접 넣는 선수도 좋지만 멋진 패스를 통해 골 넣는 것을 도와주는 축구 선수들을 좋아해요. 파브레가스·램퍼드·긱스 같은 선수가 그런 선수겠죠! 우리나라에도 맨유의 라이언 긱스 같은 전설적 선수가 있었으면 해요."

그라운드의 도움 주는 선수를 특히 좋아하게 된 김민아, 그가 자신의 축구 캐스터 인생에 있어 어시스트를 해준 도움자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EPL(프리미어리그)을 담당하는 신승대, 이명진. 그리고 늘 등불같은 한명재 선배와 동기인 정병문. 그리고 K리그를 맛깔나게 해주는 이상윤 해설위원에게 배우는 것은 마치 '긱스'와 '램퍼드'와 함께 축구시합을 뛰는 것처럼 가슴 든든한 일이다. 유능하고 열정적인 선배들의 조련 속에 그는 신입 아나운서라는 꼬리표를 떼고 더욱 더 단단해질 수 있었다.

 MBC ESPN 신승대 축구 캐스터, 이상윤 해설위원과 함께-

MBC ESPN 신승대 축구 캐스터, 이상윤 해설위원과 함께- ⓒ 곽진성


그러던 어느날 김민아는 <유럽축구 GOALS>라는 축구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를 담당하게 된다. 신입이라면 으레 거치는 통과의례였다. 그런데 <유럽축구 GOALS>를 만들던 담당 PD와 선배들은 프로그램의 구성을 좀 더 독특하게 하길 원했다. 좀 더 깊이있는 축구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한 사람의 이름을 단 축구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특별한 축구 프로그램 캐스터 자리를 놓고 많은 이들이 물망에 올랐다. 그런데 결과는 뜻밖이었다. 경력 있는 선배들이 아닌 신입 1년 차였던 김민아가 그 주인공으로 낙점된 것이다.

그 이유는 전문적인 축구 캐스터를 육성한다는 의미가 컸다. 담당 PD와 선배들은 김민아의 가능성을 높이 샀고, 또 축구에 대한 그의 열정을 신뢰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신뢰속에 <김민아의 유럽축구 GOALS>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축구 프로그램이 스포츠 방송계에 가지는 의미는 컸다. 이것은 국내 축구 방송 최초로 아나운서의 이름을 걸고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MC만 하는 게 아니라 하이라이트 더빙까지 다 맡아서 하기 때문에 사실 얼굴이 나올 때보다 얼굴이 나오지 않는 하이라이트 부분을 더욱 신경써서 하고 있죠. 아직은 맛깔 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축구보는 눈이 없어서 고민도 많아요! 그래도 이메일을 통해서 격려도 주시고 시청소감을 보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어떤 반응이든 참 고마워요."

매주 금요일밤 11시 30분. MBC ESPN에서 방영되는 <김민아의 유럽 축구 GOALS>. 그 중심엔 김민아가 있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멋진 골을 아나운서의 생생한 목소리와 함께 볼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국내 축구 팬들에게 소문이 났고, 금세 인기 축구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이런 높은 인기에 대해 김민아는 선배들의 도움 덕분이라면서 겸손해 한다.

"선배들이 길을 잘 터주신 거죠. 선배들의 뜨거운 축구 열정이 없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거예요. 그런 선배들의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해야겠죠."

그 겸손함 속 김민아의 모습에선 빛이 났다. 그 빛은 당당함이었다. 그에겐 최고의 축구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꿈이 생겼다. 그 꿈을 위해 김민아는 현재에 충실하다. EPL을 누비는 박지성 선수의 멋진 골을 좀 더 생생하게 전하기 위해, 그리고 호날두, 램퍼드, 파브레가스 등 EPL 대스타들의 골을 현장감 있게 있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좀 더 나은 방송을 위해 썼던 원고를 고치고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다. 그의 뜨거운 열정처럼 <김민아의 유럽 축구 GOALS>는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방송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장면 #4] 운명? 축구와 피겨 사이

 김민아 아나운서의 꿈은 '축구와 피겨사이' 어느 한 공간에 자리잡은 듯도 보인다.

김민아 아나운서의 꿈은 '축구와 피겨사이' 어느 한 공간에 자리잡은 듯도 보인다. ⓒ 곽진성


<김민아의 유럽 축구 GOALS>의 담당 캐스터, 그리고 K리그 리포팅을 비롯해 테니스, 마라톤 등 수많은 스포츠 방송을 담당하며 분주한 김민아에게 예전 자신의 전부였던 피겨스케이팅이 다가왔다. 마치 운명처럼,

MBC ESPN은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특집 예고편을 촬영했다. 그런데 예고편 설정이 피겨스케이팅을 타며 멘트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 예고편의 주인공을 예전 피겨 선수였던 김민아가 맡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그 당연함이 김민아에겐 낯섦으로 다가왔다. 너무 오랜 공백 탓이었다.

그렇기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추운 겨울날, 하얏트호텔 링크장에서 피겨스케이트화를 신은 김민아의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피겨선수를 그만둔 뒤로 가까이 할 수 없었던 피겨스케이팅. 그가 다시금 은반 위에 선 것이다.

10년 전, 자신만의 조촐한 은퇴식을 치른 그에게 있어 다시 신은 스케이트화는 화려한 복귀식을 알리는 신호와도 같았다. 그래서 그는 은반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근 십년만에 선보이는 김민아의 스파이럴(다리를 드는 기술)과 스핀(회전)은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선물했다.

"그제서야 선배들과 PD분들이 제가 피겨스케이팅 선수였다는 것을 믿더군요. 블록버스터급 예고편의 탄생이었어요(웃음)."

 자신의 분야인 축구, 그리고 꿈인 피겨란 분야에서 김민아는 최선을 다해 달려나가고 있다

자신의 분야인 축구, 그리고 꿈인 피겨란 분야에서 김민아는 최선을 다해 달려나가고 있다 ⓒ MBC ESPN 제공


피겨와의 재회는 우연일 뿐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또다른 시작이었고 김민아는 그것을 운명으로 바꾸어나가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덕분에 피겨인들은 오래전 기억 속 피겨선수 김민아를 기억해 냈다. 그리고 중요 대회가 있을 때 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민아는 다시 찾아온 피겨와의 인연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때 자신의 전부였던 피겨와 함께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에 말이다. 김민아는 '축구와 피겨 사이' 어느 한 지점에 자리잡은 꿈을 향해 달려나가고 있다.

"축구캐스터란 일에 있어서는 같이 축구장 가고 싶은 사람? 그렇게 함께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피겨스케이팅이란 꿈에 있어서는 틈틈이 노력해서 국제심판이란 꿈을 이루고 싶네요."

김민아에게 축구란 '현재이자 해내야 하는 꿈'이고, 피겨란 '과거이자 해내고 싶은 꿈'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꿈은 이제 김민아의 미래가 되었다. 피겨 선수 출신인 <김민아의 유럽 축구 GOALS>는 감동 사연을 간직한 시청자들을 찾아가고 있다.

2008년 11월. 축구와 피겨스케이팅, 그 특별한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김민아의 꿈은 반짝 반짝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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