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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은 여순사건 60주기가 되는 날이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를 주축으로 20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여순사건 60주기 행사가 10월 한 달간 서울과 여수 전역에서 열린다. 지난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학술심포지엄에서는 여순사건과 한국현대사라는 주제로 제주 4․3사건과 여순사건의 영향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18일 여수시 여서동 미관광장에서 열린 평화인권예술제에는 풍물패 ‘벅수골’의 ‘진실의 북소리 울려 퍼져라’를 필두로 흥과 회한을 그리는 노래와 춤 등 다양한 공연이 있었다. 특별 게스트로 초대받은 안치환의 마지막 무대에 약 5백여명의 관객들이 박수로 화답하며 60주기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겼다.

 

 

19일은 여수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날이다. 여순사건의 시발점이었던 구 14연대 주둔지인 신월동 한화여수공장 부지에서 60년 만에 처음으로 위령제를 지냈기 때문이다. 위령제에는 과거사진상조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대전산내유족회·해남유족회·제주 4․3연구소·한국전쟁전후민간인학살 진상규명위원회·남해유족회 등 억울하게 죽어간 혼을 달래기 위해 애쓰는 전국의 관련단체회원들이 다수 참여했다.

 

 

지역사회와 유족들의 염원

 

제주 4․3항쟁이나 광주 5․18민중항쟁은 지역민을 중심으로 명예가 회복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유독 여순사건만 역사 속에서 침묵하고 지역의 가슴앓이로 남아있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시민단체와 유족들은 진실을 규명하고 상생의 길로 가기를  희망하고 있다.

 

오전 9시 식전행사로 치러진 남해안 별신굿은 넋맛이 굿으로 광목천위에 작은 ‘길배’를 띄워 죽은 이들의 넋을 모셔다가 위로하고 해원하여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의식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유족과 참가자 전원은 60개의 만장과 국화를 들고 억울하게 죽어 떠돌던 영혼을 좋은 세계로 인도하는 ‘용선’을 따라 영혼들이 좋은 세상으로 가기를 빌었다.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전국 유족대표 김종연씨의 말이다.

 

"부모형제들은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가 죽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백만이나 되는 민간인들을 학살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진실을 밝혀 유족들의 한을 풀어 주십시오."

 

여수유족대표인 김천우(68)씨의 말이다.

 

"14연대 군인들에 의해 총격전이 벌어졌는데 진압군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어갔습니다. 당시 모교인 여수중앙초등학교에서 ‘손가락 총’에 의해서 현장에서 즉결처형 당하는 현장은 결코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난 시절 차디찬 아스팔트위에서 진상규명을 바라며 외쳤지만 아직도 여순사건의 진실규명은 요원합니다. 슬픔을 떨치고 새로운 희망의 노를 저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순사건 영령들이여 이승의 한을 풀고 영면하십시오."

 

 

‘손가락 총’이란 여수가 진압되고 시내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초등학교 운동장에 모아놓고 진압군이 지목한 사람들이 좌익혐의자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바로 끌어가 총살시키는 것을 말한다.

 

남해에서 온 유족 중 한 분을 만났다. 전남 장흥군 관산이 고향인 손용갑(66)씨는 사건 당시 여섯살이었다. 당시 마을 어른들의 기억에 의하면 큰 형님(손용반)은 14연대 소대장이었는데  여순사건 당시 전사통보를 받았다. 고향에서 추수를 하다가 소식을 들은 부모님들은 통곡을 하며 밥을 해놓고 제사를 지냈다.

 

 

그 후 가족들은 큰형이 14연대에 복무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좌익으로 몰려 약 1달 후 관산지서 K모 순경이 어머니, 큰 아버지, 큰 어머니, 고모까지 총살했다. 아버지는 도망갔지만 잡혀와 총개머리 판으로 죽도록 맞아 3개월 만에 사망해 천애 고아가 돼 버렸다. 부유했던 집안의 재산과 농토를 몰수당하고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했고 학교를 다니지 못해 진상규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니 도와 달란다.

 

"어렸을 때는 순사만 보면 무서워서 피해 다녔어요.  대한민국에서 나같이 벼락 맞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당시 죽은 14연대 군인들이 대부분 총각들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증언해줄 부모들이 돌아가셔버렸기 때문에 사건이 묻혀 졌어요. 하루빨리 나 같은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 진상규명과 보상이 이뤄져야 합니다."

 

 

여수시 문인협회회장인 신병은씨의 추모시가 이어졌다.

 

1948년 10월 19일

예순의 세월을 돌아돌아 예까지

아, 해마다 시월이면

가을 햇살은 참으로 맑고 고운데

우리의 계절은

이미 우리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략

 

왜 죽어야했는지를

왜 죽여야했는지를 모른 채

어둠 속에 어둠을 사르는

침묵과 고독뿐이었습니다.

 

중략

 

결코 비껴설 수 없는 아픔을

함께 슬퍼하려 합니다

함께 사랑하려 합니다

함께 용서하려 합니다

 

 

당시 서남지구 전투사령부 토벌대장이었던 차일혁 총경의 말이다.

 

"새벽부터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물어보라.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과연 몇 사람이 이를 알겠는가? 지리산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군경과 빨치산들에게 물어보라. 너희들은 왜 죽었느냐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죽었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자 몇이나 있겠는가?"

 

스페인 태생의 미국 시인 조지 산타야나는 <이성의 삶>이라는 책에서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과거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여순사건 60주기 행사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0월 22일(수) 오후 2시 여수MBC 공개홀 :  여순사건 토론회
10월 25일(토) 화장동 전남학생교육문화회관 : 문학예술제 
10월 25(토)~26일(일) : 여순사건의 유적지 순례
10월 17(금)~25(토) 각 행사장 일대 :그림/사진전
10월 13(월)~31일(금) 여수시내 각 학급 : 인권영화제/ 공동수업


태그:#여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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