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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낮 서울 청계광장에 모인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총연합 소속 농민들이 쌀직불금 불법수령과 관련해서 이봉화 차관,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등 해당자 명단공개와 처벌을 촉구하며 총리실까지 벼와 쌀가마니를 지고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벼를 뿌리며 항의했다. 행사를 마친 뒤 한 농민이 바닥에 뿌려진 벼를 다시 주워 담고 있다.
 17일 낮 서울 청계광장에 모인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총연합 소속 농민들이 쌀직불금 불법수령과 관련해서 이봉화 차관,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등 해당자 명단공개와 처벌을 촉구하며 총리실까지 벼와 쌀가마니를 지고 행진을 시도하다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벼를 뿌리며 항의했다. 행사를 마친 뒤 한 농민이 바닥에 뿌려진 벼를 다시 주워 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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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들 등쳐먹은 인간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벼룩에 간까지 내먹을 그런 '싸가지 없는 공무원들' 머리통 숫자가 무려 4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가뜩이나 농사만 지어선 먹고 살기 힘들어 죽어나고 있는 농민들의 살길을 모색하고 나서야 할 공무원들이 '쌀 직불금'을 아가리 가득 쳐 넣었다는 것이다. 나락조차 까부르지 않고 통째로 삼키다가 모가지에 꽉 걸린 것이다. 농민들의 피땀을 가로챈 인간들이 어디 공무원들뿐이겠는가?

우리집에서 1년 내 수확한 쌀을 몰래 훔쳐 먹는 놈들은 오로지 쥐새끼들뿐이다. 하루 한끼 조차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쌀독을 노리는 생계형 도둑들이 더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쌀을 훔쳐가는 생계형 도둑들은 없다. 오로지 쥐새끼들뿐이다. 사실 쥐새끼들 조차도 땅 한평 없는 소작농들의 가난한 곡간(穀間)에는 잘 몰려들지 않는다.

누가 농사를 짓고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불법으로 쌀 직불금을 수령한 것으로 드러난 이봉화 보건복지부 차관.
 불법으로 쌀 직불금을 수령한 것으로 드러난 이봉화 보건복지부 차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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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땅 한 평 없는 반거충이 소작농이다.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길이 대책 없어 반쯤은 도시에 글을 팔아 빌어먹고 있다. 도시에 걸쳐 있는 발 한 짝을 합쳐 오로지 농사를 통해 자급자족하겠노라 깃발을 내걸고 있지만 어지간한 땅 한 평에 10만원이 넘는 현실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올 봄이었다. 논농사를 좀더 늘려 보겠노라고 작정하고 있던 차에 때마침 마을 앞에 놀고 있는 4마지기의 논이 있었다. 임대차 계약서를 쓰고 직불금 혜택을 받기 위해 논의 주인을 찾았다.

논에 물을 대놓고 여기 저기 수소문해도 경상도 어디인가에 산다는 그 논 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논농사를 늘려야 할지 한참 고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물꼬를 틀어막아 놓았다. 다시 열어 놓았는데 또 다시 막았다. 결국 경상도 어딘가에 산다는 지주에게 연락할 방도가 없었고, 동네 누군가와 물꼬 싸움을 하기 싫어 그 논을 포기했다.

결국 그 논엔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았다. 벼 수확이 한창인 지금, 그 논은 잡풀로 우거져 있다. 과연 그 논의 쌀 직불금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직불금제가 도입된 지난 3년 동안 나는 내가 소작하고 있는 벼논을 찾아온 조사원들을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농사를 계속해서 짓고 있는지 여부도 확인하지 않았다. 신청만 받으면 그만이었다. 전년도에 농사지은 사람이 올해도 그 논에다가 벼농사를 지을 것이라 판단하고 있는 것 같았다.

농사를 짓고 있는지조차 조사하지 않으니 누가 농사를 짓고 있는가는 전혀 관심 밖의 일일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지 장관이 짓고 있는 것인지 말단 공무원이 짓고 있는 것인지는 상관없어 보였다. 다만 쌀 직불금 신청만 하면 그만인 듯 싶었다.

그렇다면 올해 쌀농사를 짓지 않은 그 논의 쌀 직불금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쩌면 전년도에 쌀 직불금을 타 먹은 사람이 올해도 역시 자동으로 타 먹게 될지도 모른다.

직불금 신청 못하는 소작농들

쌀을 도둑질해 가는 것은 오로지 쥐새끼들 뿐이다.
 쌀을 도둑질해 가는 것은 오로지 쥐새끼들 뿐이다.
ⓒ 송성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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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반포면에서 소작을 하고 있는 정한섭씨는 쌀 직불금 신청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그나마 농지원부를 만들어 우연찮게 쌀 직불금을 타먹고 있지만 그는 직불금은 고사하고 농지원부조차 만들지 못하고 있다.

임대료를 내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 논이라서 지주에게 쉽게 말도 건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농사짓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임대차 계약서를 써 주쇼'라고 요구하면 그마저 갈아먹고 있는 논조차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는 정씨처럼 임대차 계약서를 쓰지 않고 땅을 빌려 쓰는 소작농들이 수없이 많다. 주지들은 임대차 계약서를 쓰지 않는 대가로 세 없이 논을 빌려주거나 다른 땅보다 세를 적게 받고 있다. 논 임대료를 마지기당 한 가마니를 받는 것이 보통이라면 반 가마니를 받는다거나 하는 것이다.

소작농들에게는 좋은 조건일 수밖에 없다. 부재지주들은 그런 조건을 내걸어 땅을 빌려 쓰든지 말든지 배짱을 튕긴다. 그렇게 부재지주들은 자신이 경작하는 것처럼 서류를 작성해 쌀 직불금을 신청해 타 먹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8년이 지나면 세금 한 푼 내지 않고 그 만큼 오른 땅값으로 되 팔수 있단다.

인터넷상에 올라온 기사들을 검색해 보니 큰 제목으로 농림수산식품부에서 '내년부터는 직접 경작자에게만 직불금을 지급'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언제는 안 그랬나?

농림수산식품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이 판국에 뭔놈의 희망이 있다는 것인지 '우리에겐 희망이 있고 미래는 여전히 밝다'는 구호와 함께 쥐눈으로 웃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사진이 실려 있었다. 그 사진이 바뀌면서 '쌀 직불금 이렇게 바뀝니다'라는 대문짝만한 제목으로 쌀 직불금 신청 자격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겠다는 대책들을 내놓고 있었다(지난 10.7 국회에 제출한 쌀소득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 심의과정에서 일부 수정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농림식품부가 내놓은 쌀직불금에 관련된 법률개정안
 농림식품부가 내놓은 쌀직불금에 관련된 법률개정안
ⓒ 농림식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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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 숨통조이는 직불금 강화책

그 내용들을 꼼꼼히 살펴보니 소작농인 내가 볼 때 참으로 가관이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아닌, 아예 외양간 문짝에 못질을 하겠다는 대책처럼 다가온다. 설령 이 법률개정안이 나름대로의 대책을 가지고 있다치더라도 먼저 '직불금 도둑놈들'을 완전히 소탕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이번 쌀 직불금 사태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소작농들이다. 하지만 농림수산식품부의 대책에는 전혀 소작농들을 위한 대책처럼 보이지 않는다. 소작농들의 속사정을 모르면 얼핏 직불금 도둑놈들을 막기 위한 좀더 강화된 대책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두 눈을 크게 뜨고 그 핵심 내용을 하나하나 까뒤집어 살펴보면 아사 직전인 농촌의 숨통을 좀더 조이겠다는 대책처럼 보인다.

먼저 '직불금 부당 수령 시 신청자와 신청자가 소유한 모든 농지를 지급대상에서 제외시키고(5년 이내 범위)신고 포상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예전에 비해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는 등 보다 강화된 대책이지만 도둑놈들이 설쳐 대는 판국에서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남 땅 빌려 쓰는 소작농들이 더이상 농사 지을 땅을 확보하지 못하게 될지 모르는 '위협'을 감수해가며 신고할 수 있겠는가?

이 조항은 농민들이 피땀 흘려 지은 쌀농사를 도둑질 하는 쥐새끼들에게 단지 도둑질 못하도록 좀더 타이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도둑질 하다가 들키지 않으면 계속해서 도둑질 해 먹을 수 있고, 설령 들켰다 하더라도 5년 후면 다시 도둑질해도 상관없다는 대책인 것이다. 

또 '실경작 및 임대차 확인 강화'하기 위해 ‘거주지 이외 지역에서 벼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직접 실제 경작 사실을 구체적 자료를 근거로 입증해야만 쌀 소득 보전 직불금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그동안 그래왔듯이 농사짓지 않고 직불금을 수령해 가는 부재지주들에게는 그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그간에 그래왔듯이 소작농들에게 농토를 빌려 쓰려면 '구체적 자료'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식으로 '협박'하면 '구체적 자료'는 얼마든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소작농들을 힘들게 할 수 있다.

아울러 쌀 직불금 수혜자를 개인 10ha로 제한 한다고 하는데 '경작 사실을 구체적 자료를 근거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소작농에게 그만한 땅을 빌려주고 꼬박꼬박 세금을 물 지주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더이상 농사 지으려 귀농하지 말라는 것인가

17일 낮 서울 청계광장에 모인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총연합 소속 농민들이 쌀직불금 불법수령과 관련해서 이봉화 차관,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등 해당자 명단공개와 처벌을 촉구하며 총리실까지 벼와 쌀가마니를 지고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가로막고 있다.
 17일 낮 서울 청계광장에 모인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총연합 소속 농민들이 쌀직불금 불법수령과 관련해서 이봉화 차관, 국회의원, 고위공직자 등 해당자 명단공개와 처벌을 촉구하며 총리실까지 벼와 쌀가마니를 지고 행진을 시작하자 경찰이 가로막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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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가 농업이외 종합소득세(부부합산)가 고시금액 이상인 자는 제외 (고시 잠정안 3500만원)시키겠다는 것이다. 3500만원 이상의 돈 벌이를 하는 사람은 농사를 짓지 말라는 것인가? 아이들 교육을 위해 농촌에 사는 부부가 뼈 빠지게 일하고 그것도 부족해 정직하게 농사를 지어 보겠다는데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농촌에 들어와 살든 말든 알아서 하고 농사를 지어 더 이상 수익을 올리지 말라는 것인가?

농림수산식품부가 내놓은 이번 쌀 직불금 대책 중에서 가장 어리석고 어리석은 대책은 '신규가입자 지급 제한을 위해 2005~2008년 기간 중 1회 이상 직불금을 농업인으로 지급 대상 한정(후계농으로 선정됐거나 같은 세대원이 농사를 승계한 경우를 제외하고)하겠다'는 것이다. 

쌀시장 개방 피해와 무관한 신규 진입자의 직불금 수령을 막기 위한 조처하는 것인데 쌀 개방 피해자는 현재 농사는 짓고 있는 농민들이 전부가 아니다. 앞으로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들도 그 피해자다. 쌀 개방으로 농사를 짓고 싶어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농하여 농사를 짓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아사 상태인 농촌에 그나마 불씨를 지피겠다는 귀농인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더 이상 농촌으로 들어오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이상 농사 지을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다. 개발지상주의 정부의 정책이 그러하듯 이런 대책은 농촌 말살 정책을 가속화 하려는 아주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조항이다.

농민들 목 조르고 쌀 도둑에겐 관용 베풀겠다?

모든 것을 법대로 처리하겠다는 정부의 '직불금 도둑놈들'에 대한 최근 대책을 보면 할말을 잃게 된다. "마녀사냥식의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부당 수령 공직자의 명단이나 신상정보는 최대한 보호하고 조사가 끝나면 부당수령 공무원의 숫자와 사례만을 집계해 공개 하겠다"는 것이다.

농민들의 직불금 혜택에는 목을 조르고 있으면서 쌀 직불금 도둑놈들에게는 무한한 '관용'을 베풀겠다는 것이다. 얼토당토 않은 법적 근거를 내세워 자식들의 안전한 먹을거리를 위해 유모차를 끌고 나온 속 깊은 엄마들까지 족치고 있는 정부가 쌀 도둑놈들은 은글슬쩍 법을 피해갈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직불금 도둑놈들'이 직불금을 도둑질 한 가장 큰 이유는 농지법상의 규제를 피하거나 양도소득세 감면 등 탈세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한 '직불금 도둑놈'들이 아니다. 공문서를 위조한 사기꾼에 농지를 구입해 땅 투기 하려는 투기꾼들인 것이다.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농지는 직접 경작하는 사람만 소유할 수 있다'는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른 강력한 법 적용을 해야 한다.

곡간을 황폐화 시키는 쥐새끼들을 때려잡지 않고 쥐가 들어갈 구멍을 막겠다고 백날 천 날 대책을 세워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쥐새끼들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쌀 창고 구멍을 뚫고 들어가기 마련이다.

쥐새끼는 쥐새끼를 낳는다. 친일 매국노들을 청산 못하니 독재 앞잡이들이 득실거린 것이고 부정부패가 난무한 것이다. 선행은 선행을 낳고 악행은 악행을 낳기 마련이다. 악업이다. 끊어야 한다. 그 악업을 끊어야 할 사람들이 단지 '직불금 도둑놈'들, 사기꾼, 투기꾼들 뿐일까? 농사를, 땅을 생명 차원에서 보지 않는한 우리 모두가 그 물음에 대해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태그:#직불금 법률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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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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