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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 지난 거인 금강하구둑

여행 둘째 날 무창포에서의 아침, 우리는 모두 느지막이 게으름을 피우면서 일어났다. 밤늦게까지 놀았던 것도 이유였지만, 몇몇은 그 전날 오서산 산행이 피곤했는지 도통 깨워도 일어날 줄 몰랐다.

늦게 일어난지라 서둘러 아점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원래 여행 계획은 칠갑산 장곡사에 들러 골뱅이를 잡는 것이었지만, 어제 보았던 오서산 억새가 아쉬웠는지 다들 서천 신성리 갈대밭을 가고 싶어 했기에 그리로 방향을 잡았다. 개인적으로는 군대 고참도 만날 겸 항상 가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서천이었다. 비록 고참은 만나지 못하지만 미지의 공간과의 만남에 가슴 설레기는 마찬가지였다.

보령에서 서천 가는 길은 고속도로와 달리 뜨문뜨문이라도 바다가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가을의 황금들녘이 펼쳐져 있었다. 충청도 고유의 나지막한 구릉과 그 사이를 메우고 있는 황금들판. 소위 충청도 사람들의 특성이라고 여겨지는 느긋함과 여유로움은 이와 같은 지리적 특성의 산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군산과 서천 사이의 금강하구둑
▲ 철지난 거인 군산과 서천 사이의 금강하구둑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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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서천. 그러나 핸들을 잡고 있던 난 그대로 군산까지 차를 몰아갔다. 전방의 표지판에 표시되어 있던 금강하구둑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탓이었다. 어렸을 때 사회 교과서를 보면 항상 굵은 글씨로 강조되고 사진으로도 실렸던 바로 그 금강하구둑.

교과서에서도 중요하게 다룰 만큼 금강하구둑은 그 당시 우리 사회의 역량이 축적된 거대한 역사였다. 툭하면 동양최고의 공항을 만들고, 거대한 방조제를 만들어 세계 최대의 갯벌을 없애버리는 지금으로서는 가소로운 일일수도 있지만, 그 당시 우리 사회는 한낱 금강하구둑을 만들고도 자화자찬에 빠질 정도로 소박하고 투박한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도를 넘어 무조건 크고 화려하게, 세계 최고를 지향하는 우리들. 어쩌면 내가 금강하구둑을 찾았던 건 그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도 모른다. 점점 돈에 환장한 악귀로 채워지는 우리 사회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는 철 지난 거인 금강하구둑을 보고 싶었다.

충청도의 장항과 전라도의 군산을 잇는 금강하구둑은 교과서에서 본 것보다, 그리고 나의 예상보다 훨씬 더 크고 장대했다. 그것은 여느 한강다리보다 길고 넓어 보였고, 강과 바다의 경계를 이루는 그 지점에서 가지고 있는 막중한 임무 때문인지 묵직해 보였다. 비록 아날로그식 감성일지는 몰라도 분명 금강하구둑은 순박했던 흘러간 시대의 거인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군산 진포 해양 테마공원과 적산가옥

내친김에 하구둑을 건너 군산으로 향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전라도까지 찍고 가야지 않겠나. 창밖으로 보이는 너른 갯벌이 이곳 역시 바다임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군산과 장항 사이만 해도 갯벌이 이리 넓은데 군산과 변산반도 사이의 새만금은 도대체 어느 규모일까?

세 번째 방문한 군산이었다. 첫 번째는 10년 전 어느 날, 군산대에 입학한 친구가 갑자기 보고 싶어 밤차를 타고 내려왔었으며, 두 번째는 5년 전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친했던 군대 후임을 보고자 겸사겸사 들렀던 군산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로 5년 만에 찾아온 군산. 비록 뚜렷한 목적지도 없는 발걸음이었지만, 군산은 왠지 정겹고 낯설지 않은 도시였다.

우리가 처음 향한 곳은 군산항이었다. 군산이란 도시 자체가 항구로 흥한 이상 군산을 보기 위해서는 항구를 봐야한다고 생각했던 탓이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활기찬 항구의 모습 대신 주위 풍경과 어울리지 않은 군함, 탱크, 전투기 등 군사장비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앞에는 진포 해양 테마공원 임기 개장이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활기가 사라진 그곳
▲ 낯선 군산 내항의 모습 활기가 사라진 그곳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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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리지 않는 군사장비의 전시
▲ 진포 해양 테마공원 어울리지 않는 군사장비의 전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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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안내판을 찾아보지 않아도 그 희괴한 공원의 정체는 짐작할 수 있었다. 군산하면 딱하고 떠오르는 관광자원이 없는 바, 아마도 지자체에서 군산의 관광거리를 만들기 위해 비싼 돈을 주고 저 퇴역 군사장비를 사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이 공원이 군산의 명물이 되기를 원하겠지.

한심할 따름이었다. 물론 관광자원을 어떻게든지 만들어보려는 지자체의 노력은 가상했으나, 그들이 이야기하는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이 왜구를 물리친 군산’이라는 역사적 맥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공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탁상행정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차라리 이 공간에 일제 강점기 때 군산을 통해 얼마나 많은 식량자원이 수탈되었는지, 일제 강점기 때 군산이라는 도시가 가지는 지리적 의미는 무엇인지, 혹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군산항의 모습이 어떻게 변천되었는지를 좀 더 자세하게 표현해 놓았으면 어땠을까? 군함 안에 옛 군산 사진 몇 장만 딸랑 갖다 놓으면 그것으로 군산이란 도시가 설명된다고 믿은 것인가?

그만 군산항을 나와 시내 중앙에 있는 적산가옥 군으로 향했다. 언제인가 군산에는 일제강점기 때 지었던 적산가옥이 시내 곳곳에 산재되어 있어서 몇몇 영화들의 배경이 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의 수탈기지였던 군산에는 약 1만 명이나 되는 일본인들이 살았는데, 그때 지어진 건물들이 아직까지 남아 그대로 이용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군산항을 나오자 당장 그 바로 앞에 일제강점기 때 지어진 구 조선은행 건물이 보였다. 과거의 영광을 보여주듯 건물은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지 쓰러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나중에 알아본 즉, 건물이 개인에게 넘어가 고급 술집으로 이용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화재가 난 뒤 10년이 넘도록 방치되었기 때문에 몰골이 저 모양이라고 했다. 다행히 지난해 문화재청이 문화재 등록을 예고했다 하니 근대의 유적지로서 그 허술한 관리가 개선되려니.

적산가옥의 대표
▲ 구 히로쓰 가옥의 대문 적산가옥의 대표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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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중앙에 들어가 적산가옥을 찾기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대부분의 적산가옥들이 문화유적으로 따로 보존되는 대신, 군산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주택이나 가게로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2층으로 이루어진 동시에 그 분위기가 이국적인 건물은 모두 적산가옥이려니 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나마 적산가옥 중에 근대문화유산으로 관리되고 영화 타짜 등에 출연한 적 있다는 구 히로쓰 가옥을 찾아갔지만 공사 중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고 있었다. 물론 중요한 근대의 유적지로 좀 더 체계적인 관리 및 보수를 위해 행하는 공사겠지만, 그 옆에 자리한 적산가옥과 비교하자니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집이 집으로서 그 기능을 유지할 때 가장 잘 보존되지 않겠나.

더 이상 적산가옥 찾기를 포기하고 차를 돌렸다. 뚜렷한 목적지도 없이 자동차로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그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긴다는 것 자체가 근대역사에 별 관심이 없는 친구들에게 민폐인 듯 했다. 군산의 적산가옥이 만들어내는 아우라를 느끼려면 나중에 혼자 가방 하나 둘러매고 도보로 골목길을 누비는 것이 가장 옳은 방법일 것이다.

서천 신성리 갈대밭과 칠갑산 장곡사

군산 시내를 나와 다시 금강하구둑을 건너 서천 신성리 갈대밭으로 향했다. 관광자원이 얼마 되지 않는 서천에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를 계기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탄 곳이었다. 영화를 보면 초반부 이병헌이 DMZ의 갈대밭에서 대변을 보다가 지뢰를 밟고 그곳에서 북한군 송강호와 신하균을 만나는데 바로 그 갈대밭이 이곳 서천 신성리 갈대밭이다.   

남도에서 느끼는 가을의 정취
▲ 가을의 색 남도에서 느끼는 가을의 정취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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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리 갈대밭까지는 금강하구둑으로부터 꽤 먼 길이었다. 지도상으로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지만 애초에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아닌지라 시골길을 돌고 돌아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덕분에 다시금 감상하게 되는 황금색 가을 들판과 길가의 코스모스. 완연한 가을이었다. 아직 산천의 색깔은 울긋불긋하게 채 변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와 어울리지 않은 숙성된 가을 색이었다. 이상 기온으로 가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더니 그 전조는 이와 같이 어울리지 않는 색의 조합인가.

논길을 따라 얼마나 갔을까. 저 멀리 기다란 둑 위로 많은 차들이 일렬로 쭉 세워져 있었다. 아마도 저 밑이 신성리 갈대밭이려니. 본격적인 관광지로 개발이 안 된지라 주차장도 없었고, 식당 구색만 내는 컨테이너 매점과 이동식 화장실, 그리고 용달차에서 군밤을 파는 이가 전부였다. 혹자는 그 허술함에 실망을 했을지 모르나 차라리 다행이지 싶었다. 어쨌든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 대단위의 자본이 흘러 들어가면 결국 그 지역의 푸짐한 시골인심은 사라질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금강 유역의 신성리 갈대밭
▲ 서천 신성리 갈대밭 금강 유역의 신성리 갈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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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디 넓은 갈대밭
▲ 서천 신성리 갈대밭 넓디 넓은 갈대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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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갈대밭은 어떤 용도였을까요?
▲ 갈대밭의 한 식구 과거 갈대밭은 어떤 용도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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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갈대는 높았고 갈대밭은 넓었다. 규모가 10여 만 평이라 했지만 도시촌놈이 어찌 그 크기를 갈음이나 하겠는가. 갈대밭이 설렁설렁 불어오는 강바람에 들리는 갈대들의 서걱서걱 대는 소리. 처음 들어보는 가을의 소리였다. 아마도 귀뚜리 소리와 함께 가을의 소리로 꽤 오랫동안 각인 될 듯. 우리는 갈대밭 사이로 난 길을 헤집고 다녔고, 중간 중간 세워진 정자 위에서 지친 발을 어루만져주곤 했다.

지금은 비록 관광객들에게 빼앗기고 만 갈대밭이지만 과거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갈대밭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까? 금강의 잦은 범람으로 습지에서 농사를 짓지 않는 덕에 조성된 갈대밭이라던데, 어쩌면 많은 선인들은 그 비옥한 땅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은밀한 약속의 장소로 애용됐을 지도.

정자에 누워 갈대 서걱대는 소리를 계속 들을 수는 없는 바, 우리는 서울로 올라가기 전 마지막 목적지 칠갑산 장곡사로 향했다. 본래 계획은 장곡사를 구경하고 그 옆 계곡에서 골뱅이를 잡는 것이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우선 서둘러 청양의 칠갑산 장곡사만이라도 구경하는 수밖에.

이름만 들으면 ‘콩밭 매는 아낙네’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칠갑산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칠갑산 들어가는 길새는 그 이름만큼이나 정겹고 순박해 보였는데, 도로 한 가운데를 떡하니 막고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하나가 이곳 마을이 매우 유서 깊은 곳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마도 도로포장공사를 하면서 국가는 이 나무를 없애려 했을 것이고, 마을 어르신들은 목숨을 걸고 이 나무를 사수했을 것이다. 혹자는 그 모습을 합리와 비합리로, 근대와 전근대로 표현했겠지만 어디 사람 사는 바를 항상 이분법적으로 해석할 수 있던가.

그 옛날 백제 사비성의 진산으로, 일곱 장수가 나올 일곱 명당을 가지고 있어서, 혹은 만물생성의 7대 근원 칠(七)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갑(甲)자가 합쳐져 그 이름이 되었다는 칠갑산. 산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그 주위 구릉과 비교하여 볼 때 명산이라 할 만큼 왠지 기품이 있어보였다. 괜히 백제의 진산이었겠는가.

이윽고 칠갑산 장곡사 도착.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으로 유명한 장곡사는 가히 그 명성만큼이나 크고 고색창연했다. 그러나 그것은 요란스럽고 시끄러운 거대함이 아니었다. 칠갑산이 높지 않은 대신 깊기 때문인지, 장곡사는 사찰의 진맛을 간직하고 있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초라하지도 않고, 부드러운 듯 하지만 강인한 힘을 지닌 장곡사.

천녀고찰
▲ 칠갑산 장곡사 천녀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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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사를 포근히 안은 칠갑산
▲ 장곡사의 위용 장곡사를 포근히 안은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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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사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하대웅전에서 상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끝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장곡사의 상대웅전과 산신각을 제외한 나머지 전각이 모두 보였는데, 칠갑산이라는 작은 산이 이만큼 장대한 사찰을 품고 있다는 것이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주변에 많은 명당이 있다더니 괜한 말은 아닐 터.

산사에서 좀 더 머물며 저녁 종소리와 함께 저녁 짓느라 올라가는 마을의 연기를 보고 싶었지만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그 전날 오서산에서와 마찬가지로 미련을 흘리며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꼭 칠갑산에 올라 충청도의 그 나지막한 구릉들과 그 사이에 옹기종기 살아가는 우리네의 모습을 꼭 눈에 담아보리라.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군산, #장곡사, #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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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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