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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날이 우중충해서 미술 선생님 마음도 꽁했나 보다. 선생님은 준비물을 안 가져온 사람에게 '엎드려 뻗쳐라'라고 했다. 나는 물풀이 없었다. 그거 없어도 친구 것 같이 쓰면 되겠다 싶어 문방구점을 가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여남은 녀석들과 함께 엎드려 뻗쳤다.

 

우리 미술 선생님은 왕년에 역도라도 하셨는지 키는 좀 짤막하지만 팔뚝이 내 갑절의 갑절은 되는 분이었다. 설마, 설마 싶었는데 기어이 선생님은 구석에 있던 각목을 집어 드셨다. 우리 모두 벌벌 떨었지만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초중고를 거치면서 이미 무수한 사랑의 매질을 참아내지 않았던가.

 

그러나 각목이 엉덩이를 철썩 갈겼을 때 입에서는 나도 모르게 '억' 소리가 나왔다. 왜 맞아야 하나 싶었지만 말대꾸를 하다가는 더 맞을 것이 분명하여 아무 말도 못했다. 영화 속에서는 각목은 똑똑 잘도 부러지던데 선생님의 각목은 무쇠 같았다. 다섯 대를 맞자 아픔으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체벌을 부를 수밖에 없는 우리 교육

 

언제인가 학생의 뺨을 때렸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간 선생님이 뉴스에 보도된 것을 기억하고 있다. 당장 "교권(敎權)이 무너진다"는 비명이 터졌다. 아이들을 교육하면서 보람을 못 느끼겠다는 선생님들의 한탄이 이어졌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내가 어렸을 때는 스승의 그림자조차 밟지 않았노라'고 훈계하였다.

 

그 후로 교육부에서 체벌기준을 마련하는 등 지리멸렬하고도 웃기 힘든 촌극이 벌어졌다. 그리고 14일 <부산일보>에 "울산의 한 중학교 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들이 다른 학부모들에게 학생 체벌을 허용해 줄 것을 요청하는 동의서를 보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래서 나도 초중고 시절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은 생지옥과 다름없다. 교육에 시장이란 말이 붙어 다니는 것은 자본주의의 비극이지만 교육시장이 가마솥처럼 펄펄 끓고 있는 나라는 또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어도 제대로 배우기 전에 혀 수술을 받는 아이, 영어 유치원을 다니는 유치원생, 하루 학원 서너 개를 전전하는 초등학생, 특목고를 위하여 악쓰는 중학생, 수능 때문에 자살까지 하는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야 하는 나라는 거의 없을 것이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지만 무슨 말씀! 공교육은 무너진 지 이미 오래다. 그것을 직접 체험한 내가 잘 알고 있다. 우리의 공교육은 사교육과 별반 다르지 않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좀체 발견하기 힘들 정도다. 오히려 사교육에 대한 기대가 더 높다. 그러니 착실하게 시장논리에 따라 공교육이 사망선고를 받고, 사교육이 어마어마한 파워를 가지면서 아이들이 공부기계로 조립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교권이 파괴되는 근본적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스스로의 장래희망이 없다. 과학자도 되고 싶고 축구선수도 되고 싶어요 하던 시절과는 다르다.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의사·검사·변호사 따위의 소위 '사' 자 직업들이나 대기업 사장님 정도로 획일화 되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보면 쉽게 다 느낀다. 하나같이 모두 돈을 잘 버는 직업들이다.

 

소름 끼치는 일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독한 자본 파시즘에 빠져 있는지 당장 보인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돈이 최고라고 가르쳤다. 그게 사실이다. 도덕과 윤리 교과서는 돈이 다가 아니라고 하지만, 참 살고 있는 세계와 동떨어진 비현실적 훈계다. 그래서 아이들의 꿈은 비슷비슷 매한가지다. 모두들 벤츠를 타길 원한다.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명품에 환장하는 나라는 세상에 없다. 그리고 학교는 자본의 이치를 그대로 따랐다. 사람이기보다 공부기계로 사는 아이들에게 꿈이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숨 막히는 성적투쟁에서 빠지는 아이들이 나온다. 그 아이들을 어른들은 꼴통이라고, 더 심하게는 낙오자라 부른다. 이 세상에는 아이들의 휴식처는커녕 탈출구조차 없다. 이유도 모르고 피터지게 싸워야 하는 공부가 싫어 아이들은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걸 학부모와 선생님과 학교는 '반항'이라 부른다. 체벌이 가해진다.

 

'어린이 권리조약' 가르치는 교사, 몇이나 될까

 

1989년 11월 20일 유엔총회에서는 '어린이 권리조약'을 채택했다. 이는 만 18세 미만 청소년들이 누려야 할 인간적 권리들을 명시한 조약이다. 대한민국은 1991년 이 국제법 조약에 가입했다. 따라서 어린이 권리조약에 있는 조항들을 대한민국은 법률로서 똑같이 행해야 한다.

 

의견 표명권, 표현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휴식 놀이의 권리 등 조약의 내용을 잠시만 들여다봐도 전국 수많은 학교 학칙의 상당 부분이 불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체벌 또한 절대 금지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심지어 이 조약의 42조에는 이러한 권리들을 어른과 아이들 모두 알아야 하며 아이들이 배울 권리까지 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 권리조약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대한민국에 과연 몇이나 될 지 궁금하다.

 

어른들이 말하는 '사랑의 매'는 아이들을 입시지옥으로 내모는 폭력이 된다. 모두가 한편인 세상 앞에서 외로이 매맞는 아이는 한없이 약하다. 교권이란 폭력을 휘두르는 권리가 아니다.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교권이 무너지는 것이 필연적이다. 아이들을 공부기계로 만드는 올바르지 못한 교육을 행하면서, 체벌로 무너진 교권을 바로세우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교권이 파괴되는 원인은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에게 있다. 학교가 학원과 다르지 않은 세상을 누가 만들었을까. 오늘도 새벽까지 학원에 틀어박혀 코피를 쏟아낼 아이들의 얼굴에서 과연 행복한 미래가 보이는지 생각해보자. 지금 어른들이 가르치는 아이들도 자라서 어른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지금의 어른들과 똑같은 어른이 된다면 그 세상은 도대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부끄러운 세상이다. 아무래도 사랑의 매를 맞을 이들은 아이들이 아닌 듯싶다.


태그:#체벌, #교권, #사교육, #공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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