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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치 <조선일보> 경제 섹션 11면에 실린 <더 큰 집으로 옮기고 싶은데… 지금이 기회?> 기사
 10일치 <조선일보> 경제 섹션 11면에 실린 <더 큰 집으로 옮기고 싶은데… 지금이 기회?>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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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집으로 옮기고 싶은데… 지금이 기회?'

10일 <조선일보> 경제섹션 중 '돈 좀 법시다'면의 톱 기사 제목이다. 제목 말미에 물음표가 붙긴 했지만, '양도세 면제 기준 조정 매물을 노려라', '중대형으로 갈아타볼까' 등의 부제에서 드러나듯, 더 큰 집을 구입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로 <조선> 기사대로 하면 돈을 벌지는 의문이다. 이 기사는 누리꾼들로부터 혹독한 평가를 받고 있다. 네이버 아이디 'man6963'은 이 기사에 댓글을 달아 "집값 폭락하면 집 사라고 부추긴 너희가 책임 질겨? 이렇게 민감한 시기에 언론매체가 참 잘한다"고 비판했다.

<조선>은 억울할 수도 있다. 이 기사는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써브 등의 자료를 참고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기사를 찬찬히 살펴보자.

<조선>에 나온 익명 전문가들 "주택 구입 고민해야"

<조선>은 기사 첫머리에서 "세계 경제 침체 여파로 국내 주택 시장도 점점 안개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면서도 "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한 단지들이 적지 않게 나오면서 바닥권에 근접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일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익명의 '전문가들'을 동원해 "전문가들은 주택은 투자 상품인 동시에 사람들의 거주용 수단이라는 필수품 성격이 있는 만큼 가격이 무한정 하락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다"며 "자금 여력 등에 비춰 가장 근접한 구입 시점을 고민하기 시작해야 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본론으로 들어간 기사는 "'집값 급락기를 활용한 주택 마련(혹은 갈아타기) 전략'을 알아보자"며 "양도세 면제 기준 조정 매물을 노려라", "중대형으로 갈아타볼까", "경매 시장에도 관심을"이라며 주택 구입을 권하고 있다.

특히 <조선>은 "자금 여력이 되고 언젠가 중대형으로 옮겨 타겠다는 생각을 가진 소형 주택 소유자라면 요즘 시장을 주목해 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고 밝혔다. 최근 시장에서 중소형 아파트와 대형 아파트 간 가격 차이가 조금씩이나마 줄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써브의 자료를 인용해, 서울 지역 중소형(전용 85㎡ 이하)과 대형(전용 85㎡ 이상) 아파트의 3.3㎡당 가격 격차가 1월 808만원에서 9월엔 693만원으로 좁혀졌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넓은 주택 형으로 갈아타는 시점을 고려할 만하다"는 부동산써브 함아무개 실장의 멘트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최근 집값이 많이 떨어졌다고 알려진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최근 집값이 많이 떨어졌다고 알려진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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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은 아껴도 적자인데, 집 사라니..."

<조선> 기사에 대해 누리꾼들이나 그동안 집값 하락을 예상했던 전문가들 모두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윤순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시민감시국장은 "보수 언론들은 유동성 압박이 심한 건설업체 쪽만 관심 있기 때문에 주택 구입을 부추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집값이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기사로 사람들을 현혹해 집을 사게 하면, 그 손해는 누가 보상해주느냐"면서 "집을 사면 집값 뻔히 빠질 거 아는데 누가 집 사겠느냐, 건설사들을 위한 이런 기사에 시민들이 열 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말 누리꾼들은 열 받았다. 네이버 아이디 'sing5706'은 "경제가 개판이어서 아끼고 줄여서 생활해도 적자나는 게 서민들의 생활인데, 경제가 개판돼서 집값 싸니까, 집 사라는 소리는 어디서 구더기 굴러다니는 소리냐"고 비판했다.

아이디 'jang122547'은 "아파트에 매달리면 그 나라 경제를 말아먹고, 큰집(대형주택) 찾는 국민의식 수준은 최후진국형 국민의식 수준"이라며 "경매 쫓아다니는 사람치고 바보 아닌 사람 없다"고 일갈했다.

아이디 'ssp6405'는 "기자의 현실감각이 의심스럽다. 역사적인 세계 금융 불안에 그것도 돈이 묶이고, 꺼져가는 한국 아파트에 투자하라는 이런 기사에 대해 할 말이 없다"며 "현실성 있는 기사를 찾아 쓰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받아 쓰고 베껴 쓰는 언론들... "제대로 볼 줄 아는 기자가 없다"

왼쪽은 부동산써브의 자료고, 오른쪽은 연합뉴스의 기사인데, 거의 차이가 없다.
▲ <연합뉴스>의 받아쓰기 왼쪽은 부동산써브의 자료고, 오른쪽은 연합뉴스의 기사인데, 거의 차이가 없다.
ⓒ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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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은 아예 부동산써브의 보도자료를 '베껴 쓰는' 수준에 이르렀다. 연합뉴스의 <아파트 '중소형→중대형' 갈아타기 쉬워져> 기사는 손재승 부동산써브 리서치센터 연구원이 자사 홈페이지에 올린 <세제완화 최대 수혜 중대형, 갈아타기 쉬워졌다>라는 글과 첫 문장을 제외하곤 거의 흡사했다.

<연합뉴스>는 "중소형에서 중대형으로 갈아타는 비용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는 손 연구원의 글 첫머리 부분을 "올 들어 서울지역 중소형 아파트 보유자들이 중대형으로 갈아타기가 쉬워졌다"고 바꿔, 부동산 정보업체보다 '갈아타기'를 더 적극적으로 권유하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연합>은 또한 "자금 여력이 있는 실수요자라면 이번 기회에 넓은 주택 형으로 갈아타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는 손 연구원의 주장을 그대로 기사 마지막 부분에 덧붙였다.

다른 언론의 상황도 만만치 않다. <헤럴드경제> 등 일부 언론들은 <연합>처럼 부동산써브의 보도자료와 거의 비슷하게 보도했다. 부동산써브 자료를 인용하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균형 잡힌 보도를 한 언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윤순철 국장은 "부동산 정보업체·건설사·언론사들은 커넥션이 있어 같이 움직인다"며 "받아쓰기만 하는 기자는 정말 바뀌어야 한다. 우리나라 언론사엔 부동산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전문기자란 거의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강조했다.

부동산 담당 기자의 받아쓰기는 언론과 부동산 광고주인 건설업체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씨는 "언론의 논조는 부동산 광고 수주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며 "보수 언론은 부동산 5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최근 <부동산 대폭락 시대가 온다>를 펴낸 선대인 김광수경제연구소 부소장은 지난 7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광고 중 부동산 광고 비중이 많을 땐 30~40%"라며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 강력한 이해관계자인 언론을 믿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태그:#부동산 언론, #부동산,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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