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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지하철 상계역 부근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상계3동 뉴타운 후보지.
 서울 노원구 지하철 상계역 부근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상계3동 뉴타운 후보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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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물도 별로 없지만, 사려는 사람은 씨가 말랐어요. 거래 자체가 없으니까 집값이라는 게 아예 형성될 수가 없죠."

8일 오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주공아파트 단지에 있는 한 공인중개업소에 들어가 "집값이 좀 떨어졌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이다.

3억4000만원을 호가하던 79㎡대 아파트가 2억7000만원에 급매물로 나왔는데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집값이 5000만~6000만원 하락했다고 볼 수도 없다. 소수 급매물을 제외한 다른 매물들은 여전히 예전 가격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매물에 따른 호가 공백은 크지만, 전체적 현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묘한 상황이다.

'버블세븐' 지역 집값이 연일 하락하는 동안에도 이른바 '노도강(노원·도봉·강북)'이라고 불리는 강북지역의 중소형 아파트는 정체 내지 강보합세를 유지해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집값이 대폭 하락한 상태는 아니지만, 거래가 실종된 상태라서 매수자보다는 매도자 부담감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노원구청에 따르면, 노원구는 지난 1~3월 1분기 5197건에 달했던 주택 거래량이 7~9월 3분기에는 1387건으로 약 70% 가량 큰 폭으로 줄었다.

"거래 딱 굳었다" 개점 휴업 부동산업소들

강남 집 값이 하락한 가운데, 강북은 주택 거래량이 70%가량 줄었다. 사진은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아파트 앞 공인중개업소 간판.
▲ 강북 부동산 거래 실종! 강남 집 값이 하락한 가운데, 강북은 주택 거래량이 70%가량 줄었다. 사진은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아파트 앞 공인중개업소 간판.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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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전화국 후문에 있는 부동산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집을 보려고 오는 사람은커녕, 전화 한 통도 없다"며 "여기가 사실 강남 부자들이 집을 사서 집값이 오른 지역인데, 그 사람들이 전부 손을 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중개업소도 사정은 비슷하다.

이인찬 '굿모닝부동산' 대표는 "집값이고 뭐고 거래 자체가 없다"며 "급매물은 많이 나오는데, 매물이 해소가 안 되니까 갈수록 떨어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정부가 내놓은 8·21대책, 9·1세제개편안, 9·19대책, 종부세 개편안으로 이어진 부동산 규제 완화 행진에도 여전히 매수자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대책이라는 게 전부 강남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정책 발표 시점도 늦었다"며 "종부세 완화한다는데 이 지역에는 6억원이 넘는 집이 별로 없어 해당사항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재건축을 한다고 하지만, (혜택을 보는 건) 강남에 있는 은마아파트에나 해당되는 말"이라며 "강북에는 득볼 사람이 별로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고 했는데, 부동산 거래가 돼야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 아닌가. 아예 딱 굳어버렸다. 전·월세 시장도 죽었다. 게다가 주가도 빠지고… 도대체 뭐를 가지고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건 지 알 수가 없다."

"강남 이긴 적 있나... 이런 불경기는 처음"

이 대표에 따르면, 지난 2월까지 강남 사람들이 심하게는 한 사람당 10채까지 집을 사들이면서 강북 집값이 급등했다고 한다. 3~4월로 접어들면서 집값이 급등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던 강북 사람들도 집을 사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난 6월까지만 해도 실수요자가 가끔씩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지난 7월부터 부동산 거래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연초만 해도 물건이 없어서 못 팔았는데, 10월 현재 매물이 50건이나 나와 있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조금 전에 이 근처에 집 9채 가지고 있는 사장님이 왔는데, '이 놈들, 미친 놈들이다'고 하더라. 세금을 66%나 빼앗아가는데 누가 집을 팔겠느냐는 것이다. 집 안 팔리면 서민들만 죽는다. 지금까지 서민들이 강남 사람들 이긴 적 있었나. 금 모으기 하듯이 외화 예금통장 만들라고 하는 정신 상태를 가진 사람들이 위정자로 있으면서 정책 만든답시고 앉아 있으니, 이 모양 아닌가."

요즘엔 일주일에 한 건의 매매 성사도 힘들다고 토로한 그는 "부동산뿐만 아니라 전체 경제가 동맥경화에 걸린 것 같다"며 "이런 날에는 저녁에 포장마차에 앉아서 소주나 한 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씁쓸하게 웃었다.

서울 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는 학원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집 값의 등락폭이 크지 않다. 사진은 학원이 밀집해 있는 상가 건물 1층에 위치한 공인중개업소에 눈길을 보내고 있는 시민들.
▲ 집 값이 좀 올랐나? 서울 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는 학원가라는 특수성 때문에 집 값의 등락폭이 크지 않다. 사진은 학원이 밀집해 있는 상가 건물 1층에 위치한 공인중개업소에 눈길을 보내고 있는 시민들.
ⓒ 최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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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에서 '한터' 공인중개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장식 대표도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새 정권에 대한 기대 심리가 높았지만, 부동산 정책을 과감하게 못 밀고 나가더라. 지지부진하다가 미국발 대형 금융위기까지 오지 않았나. 여기서 9년째 일을 하고 있지만 이런 불경기는 처음 본다. 전세도 30평형(100㎡)대는 나가지 않는다. 24평(80㎡) 이하 소형 평수만 조금 나가는 실정이다. 부동산업계 90% 이상이 모두 어렵다고 할 것이다. 식당에도 사람이 없다."

이장식 대표는 "부동산 정책을 조각내 하나씩 발표할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한꺼번에 핵 폭탄 던지듯이 터뜨려야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호텔에서 양주 마시면서 뚝딱 만들지 말고, 현장에 나와서 발로 뛰면서 현장을 알고 정책을 입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책 입안자들이 현장을 너무 안이하게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되면 피해는 국민이 보고 욕은 대통령이 먹는다. 평생 월급에 퇴직금에 연금까지 받는 사람들이야 철밥통 가지고 있으니까 그럴 수 있겠지만, 서민은 다르다. 현장에 나와서 직접 느껴봐야 한다."

이 대표는 특히 "(체감상으로는) 거래량이 연초 대비 90% 이상 줄었다"며 "정부에서 다른 처방없이 계속 이대로 가면 공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집을 사려고 대출받은 사람들이 수입은 줄고, 이자는 오르면 어쩔 수 없이 제2금융권에 가서 고금리 대출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버티다가 힘들면 집을 급매물로 내놓게 되고, 결국 집값이 폭락한다. 그 때는 처방을 내놔도 늦는다, 지금도 곪을 대로 곪아 있다"는 것이 이 대표의 설명이다.

매수자 관망세 장기화될 듯

유명 학원가가 밀집해 있어 '강북의 대치동'이라 불리며 집값 상승을 이끌었던 중계동 은행사거리는 집값 변동이 크지 않은 곳이다. 시세로는 500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나지만, 실제 매물 시장에서는 가격을 내려서 내놓은 주택은 별로 없다.

과거에는 특정 지역의 집값이 오르면 다른 지역도 따라서 올랐는데, 요즘은 교통·교육·편의시설 등의 조건에 따라 국지적으로 움직인다. 특히 강북은 투기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실수요자 중심이어서 강남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값의 낙폭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 대표는 "이게 어느 날 갑자기 봇물 터지듯이 터져서 급락하게 되고, 15~20% 정도 빠지면 빨간불이 켜지는 것"이라며 "금년 연말을 기점으로 내년 상반기에는 그런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일부 주택 실수요자들은 별다른 위기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 상계주공아파트 6단지 앞에서 만난 박춘희(50)씨는 "집값이 갑자기 올랐다가 지금은 좀 내렸다더라"며 "살고 있는 집이기 때문에 걱정은 안 된다"고 말했다.

"어차피 팔고 가도 다른 곳에 가서 또 사야 하는데, 그곳은 안 떨어졌겠나? 지난번 집값이 오를 때 혜택을 많이 봤다. 너무나 껑충 뛰었다. 집 값이 약간 주춤하는 것 같다고 들었는데, 크게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많이 오른 것에 비하면, 지금도 안정세라고 할 수 있다."

박씨는 "강남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지만 노원구도 발전하고 있다"며 "여기가 강북의 중앙이어서, 상계동을 중앙동으로 바꾸려고 설문조사를 하고 있다"고 기대감도 갖고 있었다. 물론 박씨의 생각이 다수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강북구청 앞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이복형 대표는 "대형 평수가 죽쑬 때, 소형 평수는 그래도 좀 나았는데, 지금은 소형 평수도 한 2000만원 정도 떨어졌다"며 "그래도 강북은 아파트값이 싸니까, 강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나라 부동산값이 비정상적으로 올랐다, 경제 규모가 취약한 데 반해 너무 많이 오른 것"이라며 "부동산 가격 거품이 꺼질 것이고 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 경제가 어려운데 우리만 특별히 내수 경제를 살린다고 조치를 취하면 되겠나. 오히려 그렇게 하면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정부도 대책이 없다고 본다. 부동산은 순리대로 가면 된다. 투기만 정부에서 잡아주고…."

장기 거래 침체의 원인이었던 규제가 일부 풀렸지만, '일단은 더 두고보겠다'는 매수자들의 관망세는 별다른 변수가 없는 한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금융위기 상황의 전개 양상에 따라 '거래 급감'과 '매수자들의 관망세'는 가격 하락의 기폭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태그:#부동산 시장, #강북 집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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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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