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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 해명'의 죽음에 아버지 유리왕이 통곡을 했다? 천만의 말씀.
 '태자 해명'의 죽음에 아버지 유리왕이 통곡을 했다? 천만의 말씀.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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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자 해명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 적국 부여의 대소왕 앞에서 말이다. 대소왕이 누구던가? 선대 동명성왕을 핍박한 악연을 간직한 인물이다. 아버지의 원수나 다름없다. 그런 대소왕 앞에서 아들이 무릎을 꿇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모습을 봐야 한다.

 
물론, 유리왕 본인도 굴욕적인 화평을 맺으면서 '조카' 소리를 듣고 있다. 해명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혈기왕성한 아들은 복잡한 정치와 외교의 이음새를 이해하지 못했다.

 
제가회의에 의해 왕권은 늘 위협받는 현실, 신생국가로서 기존 강대국인 부여에 짓눌리는 고구려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선대 동명성왕의 원수에게 '조카'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아버지가 원망스럽고 한심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못난 녀석이다.

 
하지만, 그렇게 못난 녀석이라 하더라도 태자 해명은 아들이다. 아들이 저 원수 앞에서 기어이 가슴팍에 칼을 꽂아버렸다. 아들이 쓰러진다. 그가 죽어간다. 아버지의 원수 앞에서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고, 그것을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하는 유리왕."
 
드라마 <바람의 나라>는 대무신왕 무휼의 등장과 그의 업적을 극적으로 그리기 위해서 부여와 고구려의 외교관계를 기본정세로 깔아놓으면서, 유리왕의 정치적 입지와 개인적인 신세를 저렇듯 비참한 지경으로 묘사했다.
 
'드라마'는 '드라마'인 것일까? 과연 유리왕이 저렇게 '인간적인 아버지'였을까? 드라마 <바람의 나라>는 '왕'이라는 자리에 대한 성찰이 부족해보인다. 물론, <삼국사기>의 기록을 완전히 무시해버린 것만 가지고 따지자는 것이 아니다. <바람의 나라>는 "왕은 좋은 아버지가 되기 어렵다"는 가능성을 철저히 무시했다.
 
고구려 초기 왕들의 '가족 잔혹사'

 
'태자 해명'을 맡아 짧지만 굵었던 명연기를 보여준 이종원
 '태자 해명'을 맡아 짧지만 굵었던 명연기를 보여준 이종원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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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역사, 그리고 왕의 가족을 면밀히 살펴보면 놀라운 폐륜이나 비정한 처사를 거리낌없이 저지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지연의>의 주를 이루는 중국 삼국시대 인물들만 해도 그렇다. 가족에게 그나마 인간적이었던 왕은, 자신이 죽은 이후 첩들의 삶을 걱정했던 조조밖에 없다.
 
유비는 부하의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의 갓난 아기를 내동댕이쳤으며, 이용가치가 다해 오히려 정치적 위험일 수밖에 없었던 양자 유봉을 비정하게 죽인다. 그뿐일까? 촉한을 건국하기 이전까지 잦은 패배를 당하던 유비는, 항상 가족을 내팽겨쳐두고 홀로 도망치기를 예사로 삼았다. 손권 역시 마찬가지. 16살된 자신의 여동생을 나이 쉰을 앞둔 유비에게 시집보내는 '비정함'은 기본, 말년에는 태자들을 쉽게쉽게 죽여버렸다.
 
고구려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유리왕의 아버지인 동명성왕 주몽. 그 역시 임신한 조강지처를 놔둔채 부여로부터 도주해 스스로의 안전(정치적 안전도 포함된다)을 지켜냈다. 그리하여 막강한 호족 집안의 소서노를 만나 결혼을 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 '온조'를 낳았다. 자신의 뜻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과 피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소서노의 전 남편 소생 '비류'도 아들로 받아들인다. 혼자 호강하면서 왕 노릇하면서 살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데릴사위 신세는 정치적으로는 그다지 안전하지 않다. 어렵게 어렵게 '징표'를 찾아들고 온 자신의 본처 소생 아들 '유리'가 찾아오자, 주몽은 전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킨다. 자질 시험 한번 안해본 '유리'를 태자로 삼으면서, 소서노와 그녀의 두 아들을 버린다. 결국 그들은 남쪽으로 떠나 백제를 세우게 된다. 버림받은 것이다. 주객전도 현상이라고 할까.
 
그렇게 왕이 된 유리 역시 마찬가지. <바람의 나라>와는 딴판이다. 태자 해명이 황룡국에서 보내온 강한 활을 부러뜨린 일이 일어났다. 황룡국 왕은 '(활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했을 뿐' 외교적 항의를 하려 했다는 구절은 <삼국사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태자 해명을 죽이려고 앞장선 사람은 다름아닌 아버지 유리왕이었던 것이다.
 
일단, 태자 해명은 황룡국에 사과 인사를 하러 떠난다. 여기서도 태자 해명은 "하늘도 날 못죽이는데 황룡국 국왕 따위가 날 어떻게 죽이겠느냐"는 무례한 언사를 남겼지만, 황룡국 왕은 태자 해명의 남자다움에 반해 오히려 극진한 대접과 함께 존경의 뜻을 표한다.
 
일이 이렇게 되자 안절부절 못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유리왕이다. 어찌된 일인지 그는 아들을 죽이기 위해 집요하게 집념을 불태웠다. 결국, "내 방침을 따르지 않고 힘을 과시한 죄"를 물어 아들에게 칼을 내려 자결을 명한다. 그 당시 해명의 나이는 20세였다.
 
혈기방장한 아들이 힘 좀 과시했다고, 그 당사자인 황룡국 국왕은 건드려달라는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과감히 아들을 죽인 것이다. 태자 해명이 정치적·외교적으로 경솔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죽일 죄가 되나? 고작 20세된 아들 아닌가. 앞으로 배워나가면서 성숙할 시간이 더 많은 태자였다. 태자 해명은 단 한번의 외교마찰로 아버지에 의해 죽었다.
 
<바람의 나라>의 주인공 대무신왕도 마찬가지다. 그는 '호동왕자'의 아버지다. 대무신왕은 낙랑국을 정복하기 위해 아들의 사랑을 비정하게 이용했다. 낙랑국은 항복했지만, '호동왕자'는 자신의 여자를 잃었다. 아버지의 명령을 받들고 사랑받기 위해 낙랑공주를 위험에 몰았다가 아버지의 손에 죽게끔 했던 것이다.
 
아버지라면, 그런 아들에게 상을 내리고 위로해야 한다. 하지만, 호동왕자는 대무신왕의 첩 소생 왕자였다. 정비는 자신의 아들이 아닌 호동왕자가 태자가 될까봐 "저 녀석이 날 어미 취급하지 않는다"는 모함을 집요하게 전개한다.
 
베갯머리에서 아내가 매일같이 속삭이는 말을 들었던 대무신왕은 결국 지방에 파견나가있던 호동왕자에게 질책의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를 받아본 호동왕자는 자살을 선택한다.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자신의 사랑을 희생했지만, 모함을 믿어버린 아버지에게 제대로 해명조차 못하고 죽은 것이다.
 
아들을 바라보는 '왕'의 관점 이해못한 <바람의 나라>

 
훗날 대무신왕이 되는 '무휼', 그 역시 '비정한 아버지'가 된다.
 훗날 대무신왕이 되는 '무휼', 그 역시 '비정한 아버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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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초기 왕들, 이와 같은 '아들 잔혹사'가 있었다. 물론, 고구려 초기 왕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유비와 손권의 전례도 있으며, 조선왕조만 해도 어린 조카를 몰아냈고 결국인 죽인 삼촌이 있었으며, 아들을 쌀궤짝에 가둬죽인 왕도 있었다.
 
외국에서 볼모로 수십년 있다가 귀국한 아들을 독살했다는 혐의를 받는 왕도 있다. 정실 소생 왕자가 태어나자 전란 극복에 온 힘을 다한 세자를 향해 "네가 뭔데 누구 마음대로 세자 노릇을 하느냐"면서 아무 이유없이 호통을 친 왕도 있다.
 
왕조국가에서 '왕'과 '왕자'의 관계는 단순히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다. 그안에는 정치가 개입돼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의심하며, 아들은 아버지를 마찬가지로 의심하며 두려워한다.
 
그렇다고 양가집에서처럼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스킨십을 나눌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다. 정이 생길 수가 없다. 그런데 거기엔 비정한 정치와 권력의 논리가 개입돼 있다. 아들은 아버지가 죽어야 왕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아버지는 자신의 왕권을 온전히 유지하면서 아들을 눌러야만 한다. 이것이 왕조국가에서의 '왕'과 '왕자'의 관계다.
 
<바람의 나라>는 그리스 신화의 요소를 도입해, 새로 태어난 왕자가 "고구려를 망칠 운명을 타고 났다"는 내용의 신탁을 받았다는 가상의 설정을 추가시켰다. 드라마에서는 유리왕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고자 차마 아들을 죽이지 못하는 것으로 나온다. 하지만, 태자 해명에게 대한 태도로 봐선 유리왕이 실제로 그런 신탁을 받았더라면 주저없이 아들을 죽였을 것이란 가설도 성립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바람의 나라>에 그런 비정한 서사를 강요할 순 없다. 온가족이 모여앉아 보는 드라마에서 그런 '비정한 정치폐륜'을 치밀하게 묘사하라는 요구를 해서야 곤란하다. 하지만, 다소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 태자 해명을 연기한 배우 이종원의 달라진 연기는 건졌을지언정, '왕'이기에 겪어야만 하는, 그리고 마찬가지로 '왕'이었던 아버지로 인해 '왕'임을 훈련받고 터득했던 유리왕에 대한 묘사는 팽개쳐둔 셈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정치는 비정하다. 거기엔 아버지와 아들도 없다. <바람의 나라>가 묘사한 '유리왕의 눈물'에 결코 동의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바람의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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