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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동양화가 만난 퓨전 작품 전시회가 눈길을 끈다.

 

지난 1일부터 오는 7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나우’에서 퓨전 동양화가 홍지윤(39) 작가 선보인 ‘Bohemian Edition’전은 동양 전통적인 시서화(詩書畵)를 재해석한 그의 기존의 작업 방식에, 사진을 접목시킨 실험적인 퓨전 작품들이 선보였다.

 

홍 작가는 시와 그림이 어우러진 화풍을 트레이드마크로 삼아 작업을 해왔고, 동양화에 다른 매체를 접목시킨 퓨전 방식으로 작품을 확장해 왔다. 이번 전시회에서 특이한 점은 동양화와 사진이라는 매우 이질적인 두 매체 간의 결합에 있다. 여기에 아름답고 꿈같은 세상을, 시와 그림에 접목시켜 표현했다.

 

시와 그림이 접목된 시서화는 수백 년의 전통을 지닌 지극히 아날로그적이며 동양적인 매체인 반면, 서구에서 발명된 사진은 20세기 이후 점점 첨단화돼 가는 사회의 근저에 있는 기계 매체이다. 바로 동양과 서양의 이질적 매체를 결합한 것이다. 하지만 이질적 매체의 결합에 끝나지 않았다. 흑백 사진 속 서양 여인의 풍만한 나체는 꽃처럼 활짝 핀 생의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그러면서도 오래된 사진 속에서나 존재하는 흐릿한 기억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반면, 여인을 감싸는 흐드러진 꽃들은 한복의 색동저고리처럼 동양적이면서도 활력 넘치는 느낌을 준다. 특히 전시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빛의 기록물인 사진의 속성에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홍 작가는 "일순간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 허무하게 사라져가는 일상의 편리들을 사진 속에 붙잡아 놓고 그 위에 내면을 담은 시와 그림을 그려 넣었다"면서 " 이 때 사진 위에 빛으로 기록된 아름다운 순간들이 과거를 상징한다면, 힘차게 그려 넣은 시와 그림들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강조했다.

 

현 21세기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동양화와 사진이 만난 이번 실험 작품들이 관객들의 관심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홍 작가의 작품을 평한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문인화의 오랜 전통인 ‘시서화’는 삼위일체 사상에서 그 뿌리를 찾고 싶다. 시와 글씨, 그림이 하나의 화면에서 만나는 동양화의 오랜 전통은 서양의 회화 전통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라면서 “홍지윤의 퓨전 동양화는 당연히 동양의 유구한 전통에 기대고 있다. 방향이 정해진 이상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마치 비빔밥과도 같다”고 강조했다.

 

갤러리 나우 유한아(31) 큐레이터는 “그의 작품은 이질적 매체끼리의 실험 작품을 통해 동양화 영역을 개척해 가고 있는 중”이라면서 “그의 시서화들은 전통과 첨단,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와 같은 대립적인 요소들이 하나의 화폭에 어우러져 있다”고 말했다.

 

퓨전 동양화로 알려진 홍 작가는 지난 1970년 서울 출생으로 홍익대와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했다. 홍익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동양화와 동양화론 등을 가르쳤다. 서울, 독일, 중국 등 국내외에서 열세 번째 개인전과 여러 차례 기획초대전에 작품을 냈다. 지난 2001년과 2003년 피렌체 비엔날레에 ‘Lorenzo il Magnifico’상을 두 번 수상했고, 2003년 정글프레스 출판사에서 수묵화 시집 <화선지위의 시간>을 출간했다.

 

지난 2005년 KBS ’디지털 미술관’ 및 2007년 MBC ’문화사색’ 에 출연해 퓨전동양화를 설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고양스튜디오(2005)와 독일 Villa Waldberta(2006)에서 레지던스(뮌헨시 초청)로 근무 했고, 같은 해 독일에서 틱낫한 스님의 책 <기도>(명진출판사)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현재 홍익대학교 동양화과와 홍익대학교미술디자인 교육원에서 현대수묵화를 강의하고 있다.

 

다음은 홍 작가의 작품 노트이다.

 

에피소드1, 여행 : Blowing in the wind

 

뜨거운 여름날 이름 모를 곳을 여행하고 있을 때에도 전시를 위해 동서분주 낯선 곳을 찾아 나설 때에도 그리고 가만히 창가에 앉아서 부서지는 햇살에 무지개 빛 날개를 한 눈부신 새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도 나의 영혼은 바람 속 또 다른 어딘가를 맴돈다. 그대로 난 길이 아닌 아무도 모르는, 나조차도 몰랐던 길을 무심히 지나갈 때 자유, 방랑, 떠도는, 늘 움직이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영혼과 같은 단어들이 내 주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어떤 이상도 감상도 이성도 감성도 아닌 내 심장과 혈류를 따라 흐르는 그러한 것들.

 

에피소드2, 빛과 그리고 그림자 : ‘Bohemian edition’.

 

잡히지 않는, 잡을 수도 없는, 나를 끊임없이 고독하게도 행복하게도 하는 보헤미안을 닮은 나의 영혼을 판박이 하여 나와 꼭 닮은 모습으로 남겨진 책처럼 잠시 붙잡아 두고 싶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 잠시 멈춘 빛의 기록물인 사진의 속성에 대해 집중한다. 빛은 멈출 수가 없다. 내 영혼도 마찬가지.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갈 뿐, 빛의 기록물인 사진과 내 영혼의 그림자와 같은 기록물인 시와 글씨와 그림이 만난다.

 

떠돌던 길에서 마주친 물, 꽃, 풀, 정원, 아름다운 여인, 작은 새, 도시, 하늘을 담은 사진 위에 지필묵으로 그리고 쓰고 난 후 스캐닝한 시와 글씨와 그림이 얹어져 또 하나의 사진이 되었다. 쉼 없이 유유히 흐르던 다뉴브 강의 물결, 마음대로 자라난 풀숲과 사과나무와 꽃잎들이 무성한 친구의 다정한 정원, 아름다운 금발의 풍만한 여인, 무지개 빛 날개를 단 작은 새들, 소도시, 신비롭도록 푸른 하늘과 구름, 그러한 것들 위에서 나의 새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고 그들을 따라 내 영혼도 노래하고 춤을 춘다.

 

에피소드3, Bohemian

 

떠돌던 영혼의 울림 한 자락

가슴이 흔들리고 있을 때,

맴도는 바람으로부터

잊고 지내오던 우리의 약속이 들려온다.

 

가끔 아주 조금씩 작은 목소리로

사과나무에 걸려있는 달콤한 대기의 향기

비가 내린 후, 풀섶마다 꽃잎마다 방울 맺힌 그녀의 온기

강물 위에 동그랗게 춤추는 찬란한 햇살 그리고 별빛

거리마다 부유하는 소음과 흐르는 노래 한 소절

골목 안, 이름 가졌던 영혼들의 조용한 발자국

대게는 그러한 것들.


태그:#홍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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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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