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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관계자 등이 27일 오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 성북구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 물품을 차량으로 옮겨 싣고 있다.
▲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압수수색 경찰 관계자 등이 27일 오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 성북구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무실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 물품을 차량으로 옮겨 싣고 있다.
ⓒ 연합뉴스 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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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하고 우려했던 일이 터졌다. 추석을 전후해 '조작사건'이 터질 것이라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는 데는 불과 18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27일 오전 6시경 서울 삼선동의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무실을 비롯해 각 지역 실천연대 사무실과 자택 등 25곳을 동시에 압수수색해 최한욱 실천연대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관계자 7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연행했다. 이날 압수수색은 국정원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공동상임대표 김승교)는 2000년 6월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이 합의한 6․15 공동선언을 기념해 그해 10월에 결성된 민간 통일운동단체로, 남북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간 교류사업, 주한미군 철수와 북한 바로알기 운동 등을 벌여왔다. 정부 보조금까지 받으며 8년 동안 공개적으로 활동해온 단체다.

상임대표인 김승교 변호사는 '민변' 소속으로 2003년 대북송금 특별검사팀의 특별수사관으로 참여했으나 "대북송금 특검은 공(功)보다 과(過)가 더 많았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으며, 민주노동당 후보로 총선에 출마하기도 했다.

'코드 맞추기 기획수사' 예감한 실천연대의 9월 9일 특별성명

수사당국은 실천연대가 특히 인터넷 방송 '6․15TV'를 운영하면서 북한의 언론보도 내용을 그대로 전재하는 등 북한 관련 자료를 공개적으로 유포해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 등)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해 압수수색과 체포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와 법집행의 정당성 여부는 법원의 판단에 달려 있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국정원과 경찰의 이번 조처가 정보·수사기관의 이른바 'MB(이명박) 코드 맞추기'로 기획된 수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그렇게 판단할 만한 근거는 한둘이 아니다.

우선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이미 이런 '기획 수사'를 예감하고 지난 9일 '실천연대를 향한 공안사건 조작 음모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제목의 특별성명을 낸 바 있다.

실천연대는 당시 촛불시위에 관여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과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 간부진 긴급체포 그리고 위장 탈북 여간첩 사건 등 일련의 공안사건을 계기로 발표한 특별성명에서 "이명박 정부가 색깔론을 내세워 국민들의 입을 틀어막고 촛불을 끄려는 악랄한 시도를 하고 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탄압의 칼끝이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 공안당국은 실천연대 간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사무실과 간부들의 집을 감시하고 미행하고 있다.

또한 최근 곳곳에서 실천연대에 대한 조작사건이 준비중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으며 심지어 추석 전후로 사건이 터진다는 소문까지 퍼지고 있다. 지금까지 정권은 실천연대를 향해 명예훼손이니 정보통신망법 위반이니 하며 걸고 넘어가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급기야 국가보안법을 동원해 조작사건까지 만들려는 것이다."

다른 실정법으로 다룰 사건까지도 국가보안법 적용 '무리수'

경찰은 이에 앞서 실천연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친북 성향의 게시물을 포함해 400건의 삭제를 방송통신위원회에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실천연대 측은 '6․15 정신을 고수하고 남북 화해와 통일을 지향하는 뜻'에서 북한 관련 게시물을 삭제하지 않아 고발을 당한 바 있다. 또 실천연대의 활동가 중에는 이른바 '주사파'(주체사상파) 출신이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검찰과 경찰 그리고 국정원 등 수사기관들이 다른 실정법으로 다뤄도 충분한 사건에 대해서까지 국가보안법을 적용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실천연대 측도 "이번에 국정원이 '국가보안법 위반'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한 조직가입' 혐의 등으로 압수수색 및 연행한 것은 조직사건 조작 움직임이 현실화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서는 지난달 국가인권위에서도 "국가보안법에 대해 국제사회의 반복되는 지적과 우려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엄격한 법해석을 적용해야 한다"고 국보법의 신중한 법해석을 요구한 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의 10․4선언 1돌을 앞두고 압수수색이 진행된 점도 'MB 코드 맞추기 기획수사' 의혹을 키우고 있다.

실천연대는 10․4선언 1주년을 기념해 29일부터 정세현·이재정 전 통일부장관의 초청강연과 통일사진전 및 북한영화 상영회 등을 준비하고 있었다. 또 당일인 10월 4일에는 1주년 기념식과 반미반이명박운동본부 결의대회 및 행진,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 번영을 위한 1004 통일문화제가 예정돼 있다. 그런데 사무실 압수수색 및 관계자 연행으로 당장 이런 기념행사들도 차질을 빚게 되었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국정원의 압수수색이 끝난 27일 낮 12시10분경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압수수색 현황과 연행자 현황, 그리고 향후 대책을 발표했다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는 국정원의 압수수색이 끝난 27일 낮 12시10분경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압수수색 현황과 연행자 현황, 그리고 향후 대책을 발표했다
ⓒ 박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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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연대 탄압은 6․15, 10․4 선언에 대한 탄압"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실천연대측은 "실천연대에 대한 탄압은 6․15, 10․4 선언에 대한 탄압이며 통일을 부정하고 남북관계를 파탄 내겠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강력 반발하고 있다.

실천연대는 또한 이번 압수수색이 촛불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진보단체와 네티즌에 대한 일련의 보복수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다고 본다. 촛불시위 초기부터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참여해 온 실천연대는 이전부터 보수단체에 의해 한국진보연대 등과 함께 촛불의 배후로 지목돼 왔다. 지난 6월에 개국한 6․15TV 역시 주로 촛불집회 중계를 해왔다.

실천연대도 27일 성명을 내고 "오늘 국정원이 주도한 압수수색과 연행은 국가보안법을 앞세운 명백한 공안탄압이며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에 대한 대규모 조작사건을 벌여 신공안정국을 조성하려는 의도다"면서 "특히 촛불로 인해 위기를 느낀 이명박 정부가 광우병대책회의, 한국진보연대 및 네티즌 등에 이어 통일운동 세력에 대한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실용주의로 '위장'한 이명박 대통령의 '이념본색'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그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 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하고 이른바 좌파정부 흔적 지우기에 골몰해온 이명박 정부가 본격적으로 공안정국 조성에 나선 신호탄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앞서 경찰은 오세철 교수 등 사노련 회원 7명을 보안법 위반혐의로 체포해 국가변란 선전선동 혐의 등으로 구속연장 신청했지만 법원은 범죄 소명 부족 등을 이유로 이를 모두 기각했다. 그때도 무리한 법 적용에 따른 공안 탄압이라는 비판이 일었는데 이번에는 국정원까지 가세한 국가보안법 적용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념본색' 드러내는 신호탄?

이미 공안정국의 부작용은 외부 충격에 취약한 새터민 사회에서부터 확산되고 있다. 얼마 전에 새터민 출신의 한 사업가를 만났는데 이 사업가는 "'간첩 같지 않은 간첩 사건' 때문에 새터민 사회가 분열돼 있다"면서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하소연했다.

그가 말한 '간첩 같지 않은 간첩 사건'은 지난 8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위장 탈북 간첩 원정화 사건'을 말한다. 간첩사건 수사발표 당시에도 탈북자들 사이에서는 "원정화를 간첩이라고 보기는 조금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원정화는 간첩이라기보다 간첩에 포섭된 정보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이다. '간첩에 포섭된 정보원'에 불과한 원씨의 모든 행동반경이 간첩행위로 규정되자 새터민 사회에서는 '이 사람도 수상하고 저 사람도 수상하다'고 정보기관에 신고를 하는 통에 온통 불신이 팽배해 있다는 것이다.

실천연대는 통일부에 가입된 비영리 민간단체로 정부 보조금까지 받으며 8년 동안이나 공개적으로 활동해왔다. 공안당국이 그런 단체를 이제 와서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촛불을 배후조종했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시대착오적 공안탄압'이 아닐 수 없다.


태그:#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MB 코드 맞추기, #국가보안법, #공안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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