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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른바 강자들은 보수적 성향을 띠기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강자로 볼 수 있는 세무사들의 연합체, 한국세무사회의 성향 역시 그러하다. 이는 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대해 상속세율 인하폭이 너무 낮다는 입장을 밝힌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세무사회의 수장인 조용근(62) 회장(석성 세무법인 회장)의 생각도 비슷했다. 그는 18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상속세 감세 폭을 더 크게 하여 세원 양성화를 도모했어야 한다"면서 "경제 살리기란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감세폭을 더 크게 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 회장이 강조한 말은 따로 있었다. 그는 "사회적 강자의 역할은 약자를 보듬는 것"이라고 했다. "부모가 재산을 물려주려고 애쓰는 것은 자식을 망치는 일"이란 말도 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보수층 스스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만 한다는 말이었다.

 

"재산 물려주려는 부모가 자식 망친다"

 

조 회장의 이런 말은 그냥 공언(空言)으로 들리지 않는다. 오랜 시간, 자발적 기부 활동을 확고하게 실천한 그의 이력 때문이다. 서울중부세무서장, 대전지방국세청장 등을 역임한 조 회장의 책상에는 다소 무뚝뚝해 보이는 외모와는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모양의 저금통이 자리잡고 있다. 무려 30년 된 저금통이라고 한다.

 

"1978년 세무서에서 일할 때 주사 시절부터 쓰던 저금통입니다. 동전만 생기면 넣는 거죠. 그럼 한 달에 보통 3∼4만원, 어떨 때는 10만원이 됐어요. 그 돈을 구청 사회복지과를 통해 소개받은 어려운 이들의 계좌로 보내줬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가는 거죠.

 

4∼5년 전부터 국세청 전·현직원들과 함께 소망의 집에 가서 목욕과 이발 봉사도 하고 재정 지원도 하고 있는데요. 우리 거기 가서 사진 한 번 찍은 적 없어요. 그냥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요. 기념촬영은 봉사가 아닙니다. 섬김이 아니에요. 약자가 아플 때 같이 아파하고, 기뻐할 때 같이 기뻐해 주는 것이 진정한 섬김이고 나눔이에요. 작은 것부터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저금통 30년 기부에서 부모님 이름 딴 장학회 설립까지

 

조 회장의 '꾸준하고 작은 기부'는 사무실 탁자에 놓여 있는 또 다른 '큰 저금통'을 통해 내방객들에게도 확대된다.

 

그는 세무상담을 받은 이들에게 불우이웃돕기 성금통에 상담료를 내도록 권유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상담료가 1년이면 1200만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 "필리핀 장애아 한 명을 수술해주는데 250만원이 든다"고 하니, 1년에 5명 정도의 어린이가 혜택을 받고 있는 셈이다.

 

조 회장의 자발적 기부는 여기에 멈추지 않는다. 그는 공무원으로 재직할 당시에 이미 장학회를 만들기도 했다. 장학회 이름은 "문교부 혜택을 받지 못했던 부모님" 이름에서 한 자씩 딴 '석성 장학회'. 유산으로 물려받은 조그만 집을 재테크로 불린 2억2천만원에 자신의 퇴직금도 출연했다. 여기에 그가 운영하는 석성 세무법인을 통해 매년 매출의 1%를 기부하고 있다.

 

"지금까지 장학금으로 6억 5천만원 정도 지급했습니다. 공부는 못해도 괜찮아요. 장학금 지급 기준은 딱 하나예요. 가난입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경우에 장학금을 지급합니다. 사실 국세청 직원 중에도 암 투병으로 힘들게 살거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 적지 않아요. 집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장학금 절반은 국세청 직원 자녀들에게, 또 나머지 절반이 일반인들에게 돌아갑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독지가로 나서고 있습니다. 뜻이 좋다고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나와요. 그저 나는 동기를 부여하고 인프라만 제공했을 뿐입니다.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공익사업을 민간에서 할 수 있도록 유도해주는, 그런 사람이 우대 받을 수 있는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국가가 꼭 해야 할 일입니다."

 

"정부 할 일은 자발적 기부문화 인프라 조성"

 

결국 '30년 저금통'이 조 회장 자신의 기부 인프라라면, 불우이웃돕기 성금통이나 장학재단은 함께 기부하기 위한 공동 인프라인 셈이다. 조 회장은 "정부의 감세 정책으로 복지와 공공재정이 감축될 것이란 우려도 물론 맞는 말"이라고 전제하면서도 "모든 것을 국가 예산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정부가 할 일은 자발적 기부문화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12년 전부터 다일공동체(밥퍼)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만약 그곳이 나라 예산으로만 운영된다면 하루도 식당이 온전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 그 분들 불만이 많아요. 아마 국가 예산으로 운영된다면, 반찬이 조금만 이상해도 이렇게 밖에 못하냐는 불만들이 터져 나올 겁니다.

 

다일공동체는 국가 지원이 한 푼도 없잖아요. 순수하게 민간 차원에서 하는 것이니까, 고마움을 더 느낄 수밖에 없어요. 여기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값으로 백 원씩 내도록 합니다. 그렇게 모인 돈이 1년에 2천만원입니다. 그 돈으로 또 캄보디아 등 다른 나라 어려운 곳을 돕습니다. 사회적인 감동을 주는 인프라가 형성된 것이죠."

 

"언론, 몇 백억 기부보다 작은 기부 더 대접해야"

 

이밖에도 '인프라'에 대한 조 회장의 관심은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있었다.

 

그는 "학생들이 기부통장을 갖도록 하고, 그런 학생들에게 점수도 많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로는 교육의 중요성을, "몇 백억 낸 사람을 거창하게 신문에 실어주기 보다는 코 묻은 돈 몇 천 원이라도 어린이가 꾸준히 기부하는 것을 더 부각시키고 대접해줄 필요가 있다"는 말로 언론의 책임을 함께 강조했다.

 

"연말연시에 거창하게 행사하고 기념 촬영하는 것은 섬김이 아닙니다. 큰돈으로 일시적인 도움을 주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조그만 돈으로 꾸준한 도움을 주는 것이 진정한 기부죠. 이런 사람들이 정말 대우받는 여건을 나라에서 조성해줄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겁니다. 작은 것부터 지속적으로 하자. 바로 나부터 말입니다."


태그:#복지재정, #감세, #세무사, #기부, #조용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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