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남녀상열지사가 항상 <우리 결혼했어요>나 <파리의 연인> 같을 수는 없다. <사랑과 전쟁>같은 불륜과 배신도 있고, <싸움>이나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같은 액션 활극(?)도 있을 수 있다. <이별후애>나 <봄날은 간다>, <우묵배미의 사랑>처럼 소소한 일에 마음상하고 때로는 구질구질해 보이기까지한 일상이야말로, 어쩌면 삶과 사랑의 진정한 모습인지도 모른다.

 

올 가을에는 한동안 극장가에서 사라졌던 '생활 로맨스' 영화들이 다시 관객들을 찾아온다. 바람난 부부, 옛 연인들의 기구한 재회, 돌아온 첫사랑에 흔들리는 아내 등이 그 주인공이다. 모두가 영화 속에서만 존재할 것같은 특별한 인물들이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 한 번쯤은 만났을 법한, 혹은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는 '생활밀착형' 캐릭터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영화 <멋진 하루>

영화 <멋진 하루> ⓒ 영화사봄

이윤기 감독의 <멋진 하루>(25일 개봉)는 과거 연인이었다가 지금은 채권자-채무자의 사이로 재회한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주인공 희수(전도연)는 오랜만에 재회한 옛 남자친구 병운(하정우)에게 다짜고짜 예전에 빌려줬던 돈 350만원을 갚으라고 요구하고, 당장 수중에 돈이 없던 병운은, 결국 희수의 차를 얻어타고 자신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돈을 꾸기 시작한다.

 

하루 동안의 불편하고도 기묘한 동반 여행속에서, 두 남녀는 과거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했던 흔적들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헤어진 연인들을 소재로 했지만 기존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로맨스를 풀어가는 설정이 독특한 멜로영화다.

 

안방극장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은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은 TV의 인기를 등에 업고 극장판으로 탄생한 <열두번째 남자>(25일 개봉)를 선보인다. <올드미스 다이어리>처럼 드라마가 영화화된 경우는 여러 차례 있지만, 옴니버스 단막극 형식의 TV드라마가 별도의 극장판으로 제작된 것은 보기 드문 사례다.

 

극장판 역시 드라마의 흥행공식과 마찬가지로 '불륜'과 '외도'를 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부가 맞바람을 피운다는 설정이나, 11명의 남자를 상대하는 주부의 베드신 등은 TV에서 미처 보여주지 못한 파격적인 성적 묘사를 선보일 예정이어서 눈길을 모은다.

 

10월 16일 개봉하는 <사과>는 사연이 많은 작품이다. 2004년 12월에 모든 촬영을 종료했던 이 작품은 배급망을 찾지못해 묻혀졌다가 무려 4년만에 다시 빛을 발하게 됐다. 신예 강이관 감독의 데뷔작으로 7년을 사귄 남자친구에게 차인 여주인공 현정이 새로운 남자와 결혼하지만, 남편과의 갈등과 돌아온 첫사랑으로 인하여 결혼생활의 위기를 맞이하는 과정이 담겨져있다. 2005년 산세바스타안 국제영화제 신인각본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낭만적인 판타지를 일절 배제하고 철저한 생활 속 연애, 결혼, 사랑을 리얼하게 그려낸 구성이 돋보인다. '생활 연기의 대가' 김태우와, 이제는 톱스타가 된 <커피프린스 1호점>의 이선균과 <우·생·순>의 문소리의 풋풋한 호연을 볼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문소리는 2006년 부산 국제영화제 당시 이 작품을 '출산하지 못한 산모의 아픔'에 비유하며 눈물지을만큼 각별한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 ⓒ CJ엔터테인먼트

가장 늦게 찾아오는 <아내가 결혼했다>(10월 23일)는 제 2회 세계문학상 당선작인 박현욱의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순수한 로맨티스트 노덕훈(김주혁)과 자유연애주의자 주인아(손예진)의 결혼과 사랑을 다루고 있다.

 

결혼이 연애의 완성이라고 생각하는 세간의 통념과 달리, 영화는 결혼 후에도 다른 남자와 연애와 결혼을 즐길 수 있다는 파격적인 여주인공을 내세운다. 또한 그런 아내를 바라보는 순수한 로맨티스트 남편과의 대비를 통해, 사랑과 결혼의 진정한 의미에 대하여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처럼 올 가을에 개봉하는 멜로 영화들은 단순히 낭만적인 '로맨스'라는 범주에 국한시키기에는 다소 곤란할 만큼, 파격적이거나 혹은 독특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인위적인 짝짓기를 통하여 남녀간의 사랑의 완성을 아릅답게 포장하는 데만 치중하는 기존 멜로 영화들에 비하여, 현실은 다르다고 외치는 생활 로맨스의 재등장이 관객들에게 어떤 공감대를 유도할지 관심을 모은다. 

2008.09.24 13:51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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