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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볕이 뜨겁다. 이럴 땐 밭에 나가기도 싫다. 뭐 볼만한 TV프로가 없을까? TV를 켜본다. 재방송에다 시시콜콜한 프로들뿐이다. 뒹굴뒹굴 TV앞에 죽치고 있자니 따분하다.

 

가을은 책읽기 좋은 계절이라나? 아내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 크게 틀어놓은 TV소리가 귀에 거슬린 모양이다. 아내가 말을 꺼낸다.

 

"당신, 대개 심심한 모양이네! 옆집 아저씨랑 산에나 오르시지?"

"산에? 엊그제도 장군봉에 올랐는데! 어디 바람이나 쐬고 올까?"

"난 싫어요. 그냥 책 보는 게 백배 나아요."

 

가까운 포구에 나가 바람도 쐬고 맛난 전어구이를 먹자고 꼬여도 아내는 손사래를 친다. 모처럼 인심 한번 쓰려고 했는데 마다하니 하는 수 없다.

 

"북한 땅을 가까이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간다고?"

 

동네 어르신들과 드라이브나 할까? 그렇다. TV 앞에서 시간 죽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성싶다. 해안도로를 따라 월곶리 연미정까지 갔다 오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집에 와서 막걸리나 한 잔 하자고 하면 대개 좋아들 하시겠지!

 

진즉부터 벼르던 일이었는데 잘 되었다 싶다. 우리 이웃들 중에는 요 근래 이사를 오신 분들이 몇 분 계신다. 연세가 많으신지라 강화 명승지를 찾아 나서기가 어려운 터이다. 특히 민간인 통제선 구역인 강화 북쪽지역은 좀처럼 행차가 곤란하다.

 

차를 끌고 옆집으로 향했다. 마침 옆집 아저씨네 평상에서 새집 할아버지와 건넛집 아저씨가 담소를 즐기고 계신다.

 

"모두들 제 차 타세요."

"어디를 데려가려고 그러는 거야?"

"제가 좋은 데로 안내할게요. 바람도 쐬고요."

"그곳이 어딘데?"

"북한 땅이 바라다 보이는 곳이에요."

"북한 땅? 그거 좋은 생각이네. 그냥 나서면 되는 거야!"

 

새집 할아버지께서 특히 좋아라 하신다. 건넛집 아저씨도 대 찬성이다. 두 분 모두 이북이 고향인 실향민이기 때문이리라. 북한 땅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을 간다고 하니 두말없이 차에 오르신다. 옆집 아저씨도 집에 놀러온 손자 용아를 태우며 함께 가자고 한다.

 

기분 좋은 출발이다. 강화해협을 끼고 있는 해안도로가 호젓하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옆길로 나있다. 경쾌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들의 표정에 여유가 있다. 가을을 즐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연미정 이정표를 보고, 용아가 묻는다.

 

"선생님, 연미정 가는 거예요. 들어보긴 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역사공부도 하고, 멋진 자연환경도 구경할 수 있을 거야."

 

연미정, 역사의 현장과 자연 앞에 서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연미정에 도착했다. 연미정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월곶돈대가 오늘따라 돋보인다. 돈대 밖에는 월곶진지 문화재 복원공사가 한창이다. 뛰어가는 용아를 따라 돈대 안으로 들어갔다.

 

밖의 어수선함과 딴판이다. 연미정 건물이 고즈넉하다. 느티나무 두 그루가 우리를 반긴다. 느티나무는 보호수로 무려 5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아름드리 나무 그늘이 시원해 보인다.

 

용아가 소리 내어 연미정 안내표지판을 읽어간다. 어르신들은 또박또박 읽어가는 소리를 잠자코 듣고 계신다. 녀석은 연미정에 대한 궁금증이 풀린 모양이다.

 

한강하구 마지막 길목에 자리 잡은 연미정. 이름부터가 특이하다. 이곳을 흐르는 물줄기의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하여 정자의 이름을 연미정(燕尾亭)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동안 연미정은 민간인 통제구역 안에 위치해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었다. 이제는 완전 개방되어 누구나 관람이 가능하다.

 

연미정은 처음 건립한 시기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없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전쟁을 거치며 수차례 파손되었던 것을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고려 1244년 왕이 구재(九齋)의 학생들을 모아 이곳에서 교육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니까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연마하던 정자인 것이다.

 

조선 중종은 삼포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황형(黃衡)에게 이 정자를 하사하였다. 돈대 앞에는 장무공황형장군택지비가 있다. 정묘효란 때는 인조가 청나라와 형제관계의 굴욕적인 강화조약을 맺었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높은 돌기둥 위에 나무기둥을 얹은 팔작집의 건축물이 예술감을 더해준다. 정자 바닥이 나무마루가 아니고 평기와를 깔아놓았다. 이유는 뭘까? 여느 정자처럼 현판이 있을 법한데 현판이 없는 게 특이하다.

 

돈대를 한바퀴 돌아본다. 모두들 한강하구의 물줄기가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발길을 멈춘다. 한강이 임진강을 만나 흐르다 연미정에서 다시 두 갈래로 나눠진다. 한 줄기는 강화해협으로 흐르고, 또 한 줄기는 서해로 흐른다. 저마다 멋진 자연의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용아 녀석도 신기한 듯 좀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한다. 강 너머를 보며 할아버지께 묻는다.

 

"할아버지, 저기가 북한 땅이에요?"

"그렇지! 어때 아주 가깝지?"

"그런데 저쪽 산에는 나무가 너무 없어요?"

"땔나무로 산에 있는 나무들을 베어가서 그렇다는구나."

 

벌거숭이 북녘 땅이 예사롭지가 않다. 북한 어려운 경제사정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이 크다.

 

한강하구에 배가 다닐 날은 언제일까?

 

어르신들도 감회어린 표정으로 강 너머를 주시한다. 돈대 밑 초소에서 군인이 근무를 서고 있다. 건넛집 아저씨가 말을 붙인다.

 

"저기 앞에 보이는 섬을 뭐라고 부르죠?"

"그 섬이요? 유도라고 하지요."

"아! 예전 임진강에서 홍수가 났을 때 북한 소가 떠내려 와 올라갔다는 곳인가?"

"네. 맞아요."

 

유도는 '머무를 유(留)'에 '섬 도(島)'를 쓴다. 예전 서해에서 올라오는 배는 연미정 앞 유도에서 닻을 내려 조류를 따라 한양까지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머무를 유(留)자를 써서 유도라 부르지 않았나 싶다.

 

도도히 흐르는 한강하구에 배가 자유롭게 다닐 날은 언제일까? 나룻배라도 띄어 당장이라도 강을 건너 고향 땅에 가고 싶은 심정은 새집 할아버지나 건넛집 아저씨뿐만 아닐 것이다. 남과 북으로 갈려 배가 다닐 수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

 

두 분 실향민은 발길을 돌리기가 아쉬운 모양이다. 자꾸 북녘 산하를 주시한다. 아마 지척에 둔 고향 땅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드는 것 때문이 아니실까 싶다.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용아 녀석이 배가 고프다며 집에 가자고 보챈다. 녀석도 연미정 아래 한강하구의 뱃길이 열리기를 기대나 할까?

 

돈대를 빠져 나오며 옆집 아저씨는 좋은 구경하게 되었다며 내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전 선생, 드라이브 한 번 멋졌어! 집에 가서 막걸리는 내가 살게!"


태그:#연미정, #월곶돈대, #한강하구,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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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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