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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1437개 고등학교를 1등부터 1437등까지 순위 매겨서 줄 세우고 싶어 죽겠죠?"(주 : 1437개는 2006년 인문계 기준)

 

19일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민주당 간사 안민석 의원이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틀 전 회의에서 "수능성적 원자료를 제출할 수 있겠느냐"는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의 요구에 안 장관이 "그렇게 하겠다"고 답변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당시 안 장관의 답변은 새 정부의 방침이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것이었다. 교과부는 그동안 "수능 원자료가 공개되면 전국 학교의 서열화 등 공교육에 부정적 영향을 줄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공개 불가 입장을 고수해왔다. 교과부 장관이 내부 정책협의도 없이 앞장서서 원칙을 깨버린 것이다.

 

전국 고교별 수능성적 자료가 공개되면 당장 대학들이 학교별 성적을 바탕으로 학교간 격차를 입시에 반영하게 해 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현재 금지된 고교등급제의 도입을 예고하는 것이다.

 

교과부는 18일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의원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므로 외부에 공개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뒤늦게 수습에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사회적 물의'의 범위를 객관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학교간 서열화 등 부작용을 막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팽배하다.

 

특히 자료가 외부로 유출될 공산이 매우 크다. 이미 조 의원 측도 자료 제출 요구 취지에 대해 "학교별·지역별 성적을 정확히 분석해 성적이 떨어지는 지역에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목적"이라며 "연구자들에게 자료를 제공해 연구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조 의원 측에 제공되는 자료는 교과위 전체 의원들에게 제공된다. 복수의 의원들에게 제출된 자료가 외부로 유출되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료 공개에 어떤 저의와 목적이 있는 것 아닌가?"

 

이 때문에 안병만 교과부 장관이 자료 제출에 동의했던 17일 회의에 이어 19일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거듭 제기됐다. 

 

안민석 의원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수능 원점수가 외부로 공개된 적이 없는 것은 이 정보와 자료가 가지는 폭발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라며 "장관이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한 것이 청와대와 사전에 논의가 있었던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같은 당의 김영진 의원도 "여당 의원이 요구하고 장관은 제공하겠다고 답변하고…, 자료 공개에 어떤 저의와 목적이 있는 것 아닌가, 뭘 생각하면서 이 자료를 공개하겠다는 것이냐"고 추궁했다.

 

그는 "그렇지 않아도 지나친 경쟁, '너 죽고 나 살자'는 교육제도 때문에 전임교육은 뒤로 밀려난 상황"이라며 "이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미칠 파장은 심대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교육부 장관이 자료 공개를 통해서 이득을 얻겠다는 한건주의, 그것을 입수해 공개함으로써 얻어질 부수적 효과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며 "앞으로 미칠 파장에 대해 장관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할지 생각해봤느냐"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안병만 장관은 "조 의원이 '학술적인 목적'이라고 해서 제공하겠다고 했다"며 "구체적인 것은 잘 알지 못하지만, 상임위 의원들이 자료 제공을 요청했을 때 특별한 상황이 없으면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생각"이라고 답했다. "아무런 저의도 없고, 어떤 음모에 의해서 이뤄진 것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 의원은 "장관이 사태 자체를 매우 안이하게 보고 있다"며 "자료가 공개됨으로써 사회와 교육환경에 미칠 영향을 생각도 안 해보고, '학술 목적으로 달라고 해서 줬다'고 무책임하게 얘기하고 있다"고 다그쳤다.

 

심지어 한나라당 의원도 안 장관의 태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교과부에서 조 의원에게 제출할 자료의 범위 등을 묻는 임해규 한나라당 의원의 질문에 안 장관은 "법률적으로 공개를 어디까지 할 지 검토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학생들의) 개인정보를 공개하면 현재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임 의원은 "그렇다면 장관은 엊그제 조 의원이 자료 요청한 것에 대해서 답변을 너무 쉽게, 너무 심사숙고 하지 않고 한 것 아니냐"며 "방금 고려한 여러 가지 법적인 검토와 판단을 마치고 답변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능점수 공개 요구 단체 대표였던 의원이 자료 제출 요구?"

 

회의가 계속되면서 논란의 초점이 안병만 장관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한 조전혁 의원에게로 옮겨졌다. 권영진 한나라당 의원이 "자꾸 '수능성적 공개'라고 하는데, 자료 제출이 맞다"며 "조 의원에게 간다고 해서 일반에게 바로 공개되는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기 때문.

 

그러나 안민석 의원은 "정말 조 의원의 자료 제출을 요구가 순수한 의도이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며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에서 '수능점수를 공개하라'고 끊임없이 요구했고 쟁송까지 하고 있는데, 조 의원은 이 단체의 공동대표였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쟁송이 끝나지 않은 사안을 가지고 공동대표였던 분이 국회에 들어와 자료 제출을 요구했는데, 이게 순수한 학술적 목적이라고 누가 믿겠느냐"며 "'학술적 목적이기 때문에 자료를 준다'고 한 것은 그 바닥에 깔려있는 인식에 대해 장관이 무지한 탓"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자 즉각 한나라당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임해규 의원은 "자료 요구는 그들의 교육 철학에 의한 것"이라며 "조 의원과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이 학문적 목적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 교육적이지 않은 목적 때문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는 말은 적절치 않다"고 안 의원의 유감 표명을 요구했다.

 

김선동 의원도 "조 의원이 전에 있었던 특정 단체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한 의도로 활용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발언은 속기록에서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안민석 의원은 "사실을 왜곡했거나 과장했거나 없는 것을 얘기했으면 백번 유감이 아니라 사과라도 하겠지만 나는 사실을 얘기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권영진 한나라당 의원이 "조 의원은 그 단체의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로부터 선택을 받아서 국회의원이 됐다"며 "전직과 연결해서 저의가 어떻고 하는 것은 같은 동료 의원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후 여야 의원들 간에 설전이 오가는 등 소란이 벌어졌고, 여당의 요청으로 회의가 정회되는 사태까지 초래됐다. 결국 안민석 의원이 유감을 표명하면서 회의는 10여분만에 속개됐다.

 

그러나 안 의원은 "'순수하지 못하다'는 말이 본 의원의 발언 취지와 다르게 받아들여 진다면 유감을 표명한다"면서도 "본질은 표현이 아니라 이 문제가 가지고 있는 민감성, 폭발성을 교육위가 공유해야 한다"고 거듭 우려를 표명했다.


태그:#수능점수 원자료 공개, #국회 교과위, #안병만 장관, #고교등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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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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