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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같이 맑은 것을 벗 삼고 대쪽같이 곧음을 내 스승 삼으리."

(水能性淡爲吳友 竹拜心靈是我師)

 

최근 방문한 강화군의회 구경회(61) 의장실에 걸려 있는 표구에 적힌 글자다. 말하기는 쉬워도 행하기는 어려운 글이다.

 

"다른 건 모르지만 뇌물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떡값이라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술자리 향응도 일체 없었죠. 정치를 시작한 뒤로는 아예 술을 끊어 버렸고요."

 

말 그대로라면 그야말로 클린 정치인이다. 그런데 신문이나 방송에서 지방의회 관련된 뉴스는 대부분이 부정과 비리에 대한 것이다. 지난봄에는 서울시의회 의원들이 의장 선거 과정에서 뇌물을 받고 대거 기소됐고, 충주시의원들은 단체로 관광성 해외연수를 떠났다가 '성매매의혹' 장면이 방송사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왜 이처럼 지방의회 의원들은 부정부패의 유혹에 취약한 것일까?

 

"지방의회 정당공천제 반대"

 

"정치를 봉사라 생각하고 명예직이라 여겨야 하는데, 특권을 누리는 자리로 여길 경우 그런 일이 발생하기 쉽겠죠. 그리고 정당공천제 아래서 간혹 돈으로 공천을 사는 사람들이 섞여있기 때문일 겁니다. 돈으로 공천권을 딴 사람들이 의원이 되면 아무래도 물이 흐려질 수도 있겠죠."

 

무소속으로는 보기 드물게 기초의회 의장에 뽑힌 구 의장은 정당공천제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지역을 위해 소신껏 일해야 하는 지방의회에서는 중앙정치와 무관하게 생활정치에 전념해야 되며, 정당공천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형편없는 인물들이 유력정당에 줄을 서서 민의의 대변자로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초의원은 당을 떠나서 주민들하고 어울려야하는데 정당공천제를 하면 공천자들 눈치를 보게 됩니다. 정당공천제는 지방자치화 시대에 맞지 않다고 봐요."

 

구 의장은 2006년 지방의회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나와서 당선된 3선 의원이다. 현장 중심의 활동을 강조하는 구 의원은 풀뿌리민주주의의 정신에 역행하는 정당공천제는 폐지하고, 소선거구제는 부활해야 함을 역설한다.

 

"하루 빨리 남북을 텄으면 좋겠어"

 

강화군 송해면 숭뢰리는 구 의장의 처갓집이기도 하다. 북한의 개풍군을 마주한 해안 철책 코앞에 위치한 처갓집 동네는 김대중-김정일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밤낮으로 남쪽과 북쪽의 대형 확성기 소음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터였던 것이다.

 

사무실에서 잠시 대화를 나눈 뒤 송해면 숭뢰리에서 자동차로 5분거리에 있는 평화전망대를 구 의장과 함께 방문했다. 최근 개관한 평화전망대 입구에는 민주공화당 김종필 의장이 명명하고, 해병제1여단이 건립한 '제적봉'(制赤峰) 비가 서 있었고, 아래쪽에는 건립 취지가 적혀 있었다.

 

'우리는 민족의 자유와 인류의 평화를 위해 공산 침략자들을 무찔러야 한다. 그래서 이곳을 <제적봉>이라 이름하고 불굴의 의지를 기르는 것이다. 1966 년 6월 27일'

 

'제적봉'은 반공과 평화통일 염원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웅변해주고 있었다. 전망대의 1층에는 통일염원소가 있었고 방문객들이 제각각의 소감을 쪽지에 적어 걸어놓았다.

 

구 의장은 '평화 통일을 기원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전망대 2, 3층에는 북한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다 건너 마주 보이는 북녘의 산이 백마산이고, 개성공단 철탑이 높이 서 있는 것도 보였다.

 

강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수석부회장 자격으로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해서 의약품, 경운기, 강화 고구마를 전해주고 왔다는 구 의장은 "하루 빨리 남북을 텄으면 좋겠다"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북한, 아니 북측을 자주 다니다 보니 인도적 차원에서 동포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낌없이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하루 빨리 남북이 합해져야 해요. 강화 사람들은 특히 통일에 대한 기대가 크죠. 강화는 지금은 변두리이고 골짜기 같지만 통일만 되면 남북한의 중심이고 동북아의 요충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맑은 물로 사는 것이 인생의 승자

 

평화전망대를 뒤로 하고 강화읍내의 군의회로 돌아오는 길에 구 의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치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말이 무엇인가요?

 

"정도정치예요. 기회를 봐서 이리 기웃거리고 저리 기웃거리지 말자는 게 내 소신입니다. 자식들에게 큰 재산은 못 물려줘도 명예는 물려주고 싶어요. 만약에 우리 아들이 선거에 나오면 '아버지가 괜찮았으니까 아들도 괜찮을 거야'라는 평판을 넘겨주고 싶습니다. 맑은 물에 고기가 들지 않아서 잠시 손해를 보더라도 '맑은 물로 사는 사람이 인생의 진정한 승자'가 아닐까요?"

 


태그:#강화, #지방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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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에는 채식과 마라톤, 지금은 달마와 곤충이 핵심 단어. 2006년에 <뼈로 누운 신화>라는 시집을 자비로 펴냈는데, 10년 후에 또 한 권의 시집을 펴낼만한 꿈이 남아있기 바란다. 자비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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