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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한 장면. 소도시 출신의 앤드리아 삭스가 최고의 저널리스트 꿈을 안고 뉴욕에 상경했다. 그녀는 세계 최고의 패션지 <런에이>에 기자가 아닌 편집장 미란다의 말단 비서로 들어간다. 영화처럼 나 역시, '작가'의 꿈을 안고 서울에 상경했다. 그리고 내 꿈을 실현 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잡지사'가 구인 공고를 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그러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한 장면. 소도시 출신의 앤드리아 삭스가 최고의 저널리스트 꿈을 안고 뉴욕에 상경했다. 그녀는 세계 최고의 패션지 <런에이>에 기자가 아닌 편집장 미란다의 말단 비서로 들어간다. 영화처럼 나 역시, '작가'의 꿈을 안고 서울에 상경했다. 그리고 내 꿈을 실현 시킬 수 있을 것 같은 '잡지사'가 구인 공고를 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그러나...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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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기 왠지 쑥스럽지만, 나의 꿈은 '작가'다. 그래서 대학생 시절엔 참 이상한 짓(?)도 많이 했다. 나는 평생을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취업을 해야 했다. 그래서 굳은 결심으로 5개월 전,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막 올라왔을 쯤에는 세상이 내 것 같았다. 별천지 서울의 여기저기를 구경하면서 기뻐했다. 또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하루에도 서너번씩 '미디어잡'과 '사람인'을 오가며 열심히 채용정보를 검색했다. 거기까진 좋은데…, 문제는 마음이었다.

"이건 도대체 어떤 회사야? 음…. 난 패션 쪽은 싫은데, 여긴 너무 멀어. 여긴 연봉이 너무 심해. 먹고는 살아야 하잖아."

작정하고 따질 손 치면 끝이 없었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은 비루했다. 그러다 결국 무수한 회사에서 응시를 했고, 결과는 서류전형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난 남들과 달라' 그 근거없는 믿음

이유는 간단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모르겠으니까, 무조건 유명한 회사에만 지원했던 거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따지고 보면 나는 '스펙(구직인 사이에서, 학력·학점·토익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이랄 게 아무것도 없다. 초등학생들도 가지고 있다는 토익성적표 한 장도 없고(한 번도 시험을 쳐본 적도 없다), 지방 대학을 나온 데다가 학업 성적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3.83점. 자격증이라곤 작년에 따놓은 컴퓨터자격증 2개가 전부다.

사실 부산에서 올라올 때는 믿는 구석이랄 게 있었다. 대학시절 방학 때마다 했던 수많은 아르바이트들이 사회 경험의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부산의 방송국에서 구성작가로 일했던 10개월 정도 시간도 분명히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난 좀 남들과 다르다는 '되지도 않는' 생각을 했던 거 같다.

하지만 두 달 정도 취업을 시도하면서 이력서에서 떨어지고 보니까 현실이 보이더란 말이다. 나는 사실상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거였다.

신문사나 방송사의 기자는 '언론 고시'를 쳐야 한다는 것도 몰랐고, 큰 잡지사의 공채에선 글 쓰는 것보다 시사와 영어가 더 중요하단 사실도 몰랐으며, 한두 자리가 나는 경우는 대부분 알음알음 인맥으로 취업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누가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서 그저 무턱대고 긍정적이었던 거다.

거기에 나에겐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그건 예술의 언저리에서 일하고 싶다는 고집인데, 그 쪽은 더 캄캄했다. 매체도 한정될 뿐 아니라, 채용정보도 잘 안 올라올 뿐더러, 모든 걸 알음알음 해결하는 눈치였다. 언제 자리가 나는지 알려주는 사람 하나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두 달간의 삽질 끝에 얻은 하늘이 주신 기회?

학원 건물 벽에 각종 입시, 자격증, 취업 정보가 어지럽게 붙어 있다.
 학원 건물 벽에 각종 입시, 자격증, 취업 정보가 어지럽게 붙어 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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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서울에 올라온 지 두 달 반 만에, 내 기호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생각되는 잡지사를 발견했다. 거기는 기자가 5명밖에 되지 않아서, 사람을 뽑는 일 따윈 없어 보였는데 딱 공고가 난 거다. 하늘이 나에게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두달간의 삽질로 나의 가치를 몸소 체험한 후 아무리 해도 이대로는 취업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차였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기로 했다. 까짓것 안 됨 부끄럽고 마는 거지, 정말로 원하는 걸 잡았는데…. 이번에도 면접 한 번 못 보면 억울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우선 달랑 주소 하나만 들고, 회사로 갔다. 회사 앞에 도착하긴 했는데 사실 계획이랄 것도 없었다. 막상 가보니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부끄럽기도 하고, 한 몇십 분을 주위에서 방황하다가 버스를 타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안 되겠다 싶어서 차선책으로 회사에 전화를 했다. 답변은 당연히 "이력서를 보내라"는 거였다. 일단 멋들어진 이력서를 쓰자는 생각에 밤을 새워서 작성한 이력서 3종 세트를 보냈다. 그것만으론 조금 부족한 것 같아서 잡지에 적혀 있는 편집장 메일로 구구절절한 장문의 사연을 적어 보내고, 거기에도 모자라 전화까지 했다. 안부를 가장한 척 문자도 보냈다.

나는 '여기서 일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는 페로몬을 허공에 마구 흩뿌렸다. 회사에 맛있는 간식을 보낼 생각마저 했지만, 오버인 거 같아서 참았다.

그랬더니, 몇 주 후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일단 보자는 거였다.

아, 나는 정말 됐구나 싶었다. 면접에는 왠지 자신이 있었다. 나름대로 밤새도록 포트폴리오(지금에서 돌이켜 보니 무척이나 허접했다)를 만들어서 정장까지 다려입고는 면접장에 갔다.

그날은 내 생에 몇 안 되는 반짝반짝한 날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열심히 면접을 봤다. 편집장님은 사실 내가 경력이 하나도 없지만, 그 열정에 탄복하여 한번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면접을 보는 자리에서 '됐구나!' 싶었다. 예감이 좋았다.

다음 날, 나는 온종일 전화통을 붙잡고 있었다. 연락이 없었다. 그 다음 날 전화가 아닌 문자가 왔다. '불합격'이었다. 거의 울 뻔 했다. 아니, 사실 울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다 한 것이었다.

내 생에 몇 안 되는 반짝반짝한 날

곰곰이 생각해보니 떨어진 이유는 단 하나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생초짜'를 왜 어르고 달래서 가르쳐 주겠느냐는 말이다. 열정보다 중요한 건 '실력'이었다. 나보다 훨씬 나은 경력자를 찾으면 그 사람을 뽑는 것이 당연한 이치였다. 딱 한 명만 뽑는 면접이었으니 말이다.  

결국 나는 취업에 실패했다. 정말 일하고 싶었던 곳에서 떨어지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취업 포기자들이 늘어난다는 기사에 팍팍 공감이 갔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데, 취업일랑 해서 뭐해? 라는 마음이 심장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한동안 무수한 밤을 뒤척이며 자의식을 혼란을 겪었다. 그러면서 알았다. 내가 취업하지 못하는 이유는 '스펙'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력이 부족한 탓'이라고.

어차피 내 삶은 단 한 번도 짜인 각본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인생이 아니었다. 늘 남들은 한 번에 가는 길을 빙빙 돌아서 이리저리 헤매다 지쳐서 울고 싶을 때 목표지점이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뺑뺑 돌고 돌다가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나게 되는 것이라고. 돌아갈 지언즉 절대로 뒤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고. 미비하지만 앞으로 앞으로 가고 있다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한 장면. 주인공 앤드리아 삭스는 결국 꿈을 이룬다. 나 역시 열심히 살고, 열심히 글을 쓰다 보면, 실력이 늘아날 것이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닌가. 모든 것의 가능성이 되는 오늘이 좋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한 장면. 주인공 앤드리아 삭스는 결국 꿈을 이룬다. 나 역시 열심히 살고, 열심히 글을 쓰다 보면, 실력이 늘아날 것이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닌가. 모든 것의 가능성이 되는 오늘이 좋다.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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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25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정직원'으로 일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한심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럼 어때! 열심히 살고 열심히 글 쓰다 보면 실력이 늘어나겠고, 없는 돈은 아르바이트로 충당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뭐가 되긴 되겠지, 어차피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게 아닌가?

서울로 올라온 지 벌써 5개월째인 지금은 다시 마음을 비우고 자유로운(?) 생활 중이다. 호프집, 팬시점, 패밀리레스토랑, 아이스크림 전문점, 백화점, 병원 안내 등의 서비스직부터 학원강사, 구성작가, 다큐멘터리 프리뷰까지….

이 수많은 나의 아르바이트 경력 중에 아마도 14·15번째를 장식하는 4개월짜리 인턴 생활을 지금 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주말에는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린 것 같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편견을 제외하고는 '나는' 행복하다. 그럼 만사형통! 즐거운 인생 아닐까?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오늘이 좋다.

덧붙이는 글 | 나의 좌충우돌 구직기 응모작입니다.



태그:#취업, #아르바이트 , #인턴, #좌충우돌 구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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