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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은 인생이다." - 오쇼 라즈니쉬

복수도 인생의 일부분일까. 그렇다면 이단논법이 가능하다. 도박은 복수다. 그리고 복수는 인생이다. 복수, 듣기만 해도 섬찟하지만, 어쩌면 인간의 삶에 있어 복수는 충격이고 자극이다. 다짐이다.

허영만 원작 <타짜> 1부 '지리산 작두'는 복수극이며 되갚기다. '고니'가 '아귀'와 벌였던 건곤일척의 한판에서 타짜의 '경지'에 오르면서 동시에 시도했던 것은 그 숱한 인물들을 위한 진혼곡을 울리기 위한 '복수'였다. 자신으로 인해 기구해진 누나에 대한 되갚기였다.

'고니'는 도박을 통해 인생을 달관한다. 그 안에는 대한민국이 거쳐야 했던 격변의 역사가 있었으며, 도박판은 '고니'에게 있어 인생의 시험무대이자 '달관'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의 길이었다.

모든 속임수와 '관심법(?)'을 통달하면서 "도박을 끊을 결심부터 하고 도박을 손을 대야 한다"는 준엄한 원칙을 기어코 이뤘을 때, '고니'는 인생을 달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심심할 때마다 손댔던 낚시를 통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 길을 찾는 과정이 왜 하필 도박이었을까? 그것이 운명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도박이란 인생의 불확실성을 담보하는 하나의 비유였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때때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그것도 한두번이 아니라 여러번, 그렇기 때문에 작은 화투패 속에 투영된 세상이 예사롭지는 않을 것이다. 도박은 복수다. 도박은 승부수다. 인생은 복수이자 승부수다.

드라마 <타짜>, 시작부터 '복수극'

드라마 <타짜>
 드라마 <타짜>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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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에 잠시 나왔던 주연배우들의 경상도 사투리가 입에 붙지 않은 듯, 다소 어색하게 들려온다는 한계는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드라마판 <타짜>는 '복수극으로서의 도박'을 위해 '복수'라는 테마를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 그를 위해 스토리는 대폭 수정됐다. '복수극으로서의 도박'도 주목할 가치는 있다. 만화 <타짜> 4부 '벨제붑의 노래'는 그야말로 복수극의 진수였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고니'의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맛봐야 했던 도박의 쓴맛은, '고니'의 인생을 예고한다. 그러면서, '친구'의 복수를 위해 다시 화투에 손을 대 상대의 손목을 자름으로써 '진혼곡'을 울리려 했던 남자의 이야기는 마치 1980년대풍 홍콩 느와르를 연상시킨다.

드라마는 제법 쉬운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통속의 요소가 버무려짐으로써, 그것이 '고니'가 '타짜'가 돼야만 하는 이유임을 강변한다. 형의 어처구니없는 죽음과 자신이 직접 맛본 쓰디쓴 패배의 맛이 유기적으로 얽혀진 원작 만화와는 다른 이야기 전개다. 보다 폭 넓은 대상을 토대로 제작되는 영상 장르로서의 타협인 것 같다.

원작만화에서와 같은 교묘한 서사 구조를 기대했다면, 실망스러울 여지는 있다. 하지만 지켜볼 여지는 있다. '고니의 성장'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았으며, 대한민국 제일의 타짜 '아귀'의 역할이 보다 확장된 버전으로 등장하면서 '아귀'를 지켜보는 맛이 쏠쏠할 여지도 있다. 원작 만화에서의 '아귀'가 하이에나였다면, 김윤석이 맡은 영화판의 '아귀'는 저돌적인 멧돼지, 드라마판의 '아귀'는 살모사의 냄새를 풍긴다.

드라마 <타짜>의 한 장면
 드라마 <타짜>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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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이 사회악이라면, 이렇듯 변화무쌍하게 묘사되는 사회악의 풍부한 변화를 장르별로 음미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악마는 본래 야누스의 얼굴이다. 우리가 악의 맛을 음미하면서도 그에 대처하려면 그 야누스의 얼굴을 조금이라도 더 자주 음미할 필요가 있다. 알아야 대처하는 것이 세상이다. 그리고 져본 자만이 이길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한다. 그것 역시 세상이다. '고니'의 시작은 처절한 패배였다.

낯선 요소, '러브 라인'

드라마 시리즈의 특색이자 한계는 '러브 라인'이다. 사랑 이야기가 때로는 양념이지만, 때로는 작품을 죽일 때도 있다. 과거 드라마판 <쩐의 전쟁>에서 '500원 이야기'가 전개의 주를 이루면서 시청자의 원성을 샀던 적도 있다. 사랑은 인간의 삶을 풍부하게 하는 필수불가결의 요소지만, 때로는 삶을 파멸시킬 때도 있다. 시선을 흐려 승부를 망치는 일도 부지기수다.

도박, 패 하나하나에 '기리' 하나하나에 거액의 돈과 심지어 손목이 왔다갔다 하는 살얼음판이다. 원작 만화에서의 '고니'가 사랑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눈을 흐리지 않았던 이유는 '도박'과 '사랑'은 반드시 구분하는 냉철함을 지녔던 것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타짜>의 한 장면
 드라마 <타짜>의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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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드라마는 이미 다소 뻔한 '어린 시절의 풋사랑'과 '삼각 관계'를 엮어 '러브 라인'을 예고했다. 이것 역시 '쉬운 길'을 가겠다는 암묵적인 선언. 하지만 시청자는 지나치게 쉬운 길을 용서하지 않는다.

마침, <타짜> 1부 '지리산 작두' 마지막 장면에서는, '고니'가 '사랑'에 대해 우리의 시선을 확 끌 만한 이야기를 제시한다. '풋사랑'과 '삼각 관계'를 예고하면서 '쉬운 길'을 선택한 드라마판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경고는 제법 냉소적이다.

"따지고 보면 사랑도 '구라'야. 사랑은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상대방을 들었다 놓았다 속이고 자기 자신까지 속이거든."

'러브 라인=시청률 보장'이라는 환상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르겠다. '환상'을 깨는 냉철한 현실 직시와 단호한 맺고 끊음까지 겸비해야 '타짜'라는 원작의 강변은 무척이나 인상적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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