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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에 대해 한미 정부간의 대응 태도가 크게 차이가 난다.

 

한때 "북한은 악의 축, 김정일은 독재자"라고 비난했던 조지 부시 행정부는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에 대해 아예 언급을 피할 정도로 신중한 모습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스스로 양치질을 할 수준" "부축하면 일어설 정도" 등 마치 옆에서 본 듯 건강 상태를 전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앞으로 사태 전개 방향 등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을 아예 입밖에 내지도 않고 있는데 비해 보수 언론 지면에 등장한 한국 정부 소식통이나 우익 인사들은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 "작계 5029 재추진"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등이다.

 

이같은 발언은 "김정일 유고로 북한 붕괴 가능성이 크며, 무력을 통해서라도 흡수통일해야 한다"는 사고 방식을 배경으로 한다.

 

더구나 국정원과 일부 청와대 인사가 김 위원장 건강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흘리고 있는데 비해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16일 "확인되지 않는 사안들이 보도되는 것은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 정부 안에서도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이다.

 

지난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 기념식 불참 이후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이 기정 사실화된 이후 부시 행정부는 '유구무언'이 무슨 뜻인지 몸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지난 10일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이 그들의 지도자의 건강 문제에 대한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언급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새로 추가해서 말할 게 없다"고 말했다.

 

당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일본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지연을 비판하면서도 "시간이 가고 계속 노력하면 우리는 이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자, 페리너 대변인은 "우리는 이 발언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계속 협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백악관의 태도는 미국이 북한의 비상 사태를 이용하지 않겠으며, 북핵 협상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됐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 '작계 5029' 기정사실화

 

미국 <뉴욕타임스>는 "한 때 김정일을 '피그미'라고 모욕했던 부시 행정부 안에서 그의 건강이상이라는 호재를 이용하려 안달하는 사람이 없다"며 "미국의 걱정은 핵 보유국이 혼란에 빠질 경우 누가 핵 통제권을 갖느냐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즉 김정일이 정권을 잡고 있으면 북한 핵무기가 잘 통제되지만, 그가 사망하고 큰 혼란이 발생하면 핵 무기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는 김 위원장 건상 상태에 대해 상당히 '미주알고주알' 언급하고 있다.

 

지난 10일 국회 정보위에서 김성호 국정원장이 김 위원장이 뇌출혈 또는 뇌일혈 등으로 쓰러졌지만 회복 중이라고 보고했으며, 이후 "스스로 양치질을 할 수준"(청와대 고위 관계자), "부축하면 일어설 정도"(한나라당 정보위 간사 이철우 의원) 등 마치 실황중계를 보는 듯했다.

 

국민들의 첨예한 관심사인 만큼 어느 정도 궁금증을 풀어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한국 정부의 대북 첩보 수집능력을 그대로 노출하는 행태가 계속되는 것은 문제라는 비난이 나왔다.

 

특히 전직 정보 관계자들은 "국정원이 밝힌 내용은 틀려도 문제지만 맞아도 문제"라고 걱정했다. 암실에서 봐야할 필름을 햇볕에 쪼인 격이라는 비유도 나왔다.

 

김 위원장 건강 이상이 사실이라면 주변의 소수 측근들만 알텐데 국정원이 비교적 빠른 시간안에 정확히 파악했다면, 북한 보위부에게 남한 간첩들 잡으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 얘기지만 지난 2003년 11월 당시 대만의 천수이볜 총통은 한 연설에서 "중국이 대만을 향해 겨누고 있는 미사일이 496개"라고 공개했다. 미사일 숫자를 한자릿수까지 정확하게 파악한 데 놀란 중국 정부가 대대적인 색출 작전을 벌였고 대만의 대중 정보망이 큰 타격을 입었다.

 

보수신문 지면에 등장한 정부 소식통들은 북한 급변 사태에 대비한 '작계 5029' 재추진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상희 국방부 장관도 11일 국회 국방위에서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계획을 발전시키고 있다. 정부 관련 부처와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고 '작계 5029' 재추진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시사했다.

 

김정일 양치질 설은 첩보 수준?

 

모두 김정일의 건강 이상으로 북한 붕괴가 임박했다는, 또는 이런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북한 당국을 크게 자극할 것이다.

 

잘 알려져있다 시피 작전계획 5029는 ▲북한의 남침이 아닌 내부 이상 사태만으로 미국의 일방적 판단에 의해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 ▲이 과정에서 남한의 평시 작전권이 침해될 가능성 ▲북한에 진주한 미군에 의한 군정 실시로 남한 정부의 주권 제약 가능성 ▲미군 진주에 맞선 중국의 개입 가능성 등 때문에 지난 2005년 무산됐다.

 

독일 통일이 전쟁 없이 평화적으로 가능했던 것은 미국 뿐 아니라 당시 소련의 양해, 여기에 중요한 이해 당사국인 영국과 프랑스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계 5029는 중국과 러시아의 협조는커녕 이들 나라를 군사적 적대 상태로 만들 수 있다.

 

남북한 간의 전쟁도 위험한데 자칫하면 한반도가 미국과 중국의 대리 전쟁판이 될 형국이다.

 

당장 작계 5029의 공론화는 북한으로 하여금 한미 연합군의 공격에 대비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경제력이 바닥나 재래식 무력 증강을 할 수 없는 북한으로서는 비대칭 전력, 그들 표현대로라면 '핵무기고'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미국 정부 태도는 김 위원장 체제가 유지되어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며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북한을 자극하거나 김 위원장 건강 문제를 꼬집어 서로간의 신뢰를 악화시키지 않으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는 "작계 5029 공론화는 북한에게 핵무기를 증강하라고 명분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대비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것은 남북관계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김정일 건강 이상설과 관련한 정부 공식 대변인은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이다.

 

그는 16일 브리핑에서 "언론에서 김 위원장과 관련해 추석 연휴 기간중 여러 보도를 했지만 정부가 객관적으로 확인할 내용이 없다"며 "정부로서는 확인되지 않는 사안들이 보도되는 것은 남북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자 당장 일부 기자들이 "그러면 김 위원장 건강 문제에 대해 국정원이나 청와대에서 언급을 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를 하는가"라고 질문했다. 계속 같은 질문이 이어지자 곤혹스러워진 김 대변인은 "그건 그 쪽에 물어보라"면서 "양치질설은 아직 첩보로 확인중"이라고 답했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아직 첩보 수준의 정보를 가지고 정부 고위관계자가 언론에 흘리고 다녔다는 말이다.

 

정부 안에서 손발이 맞지 않는 모습은 지난 10일에도 보였다.

 

당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서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여야의원들의 집요한 질의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 건강에 대해 더 할 말이 없다"는 말로 일관했다. 일부 의원들이 비공개로 하자고 요구했으나 김 장관은 이것도 거부했다.

 

그러나 같은날 김성호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에서 김 위원장이 뇌출혈 또는 뇌일혈로 쓰러졌으며 회복중이라고 밝혔고 이후 정부 안팎에서 그의 건강과 관련한 '실황중계성' 발언이 잇따랐다.


태그:#김정일, #부시, #이명박,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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