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에서 등장하는 세 남자(샘, 해리, 빌)를 엄마 이름으로 결혼식에 초청하며 해프닝은 벌어진다.

일기장에서 등장하는 세 남자(샘, 해리, 빌)를 엄마 이름으로 결혼식에 초청하며 해프닝은 벌어진다. ⓒ 유니버셜

아련한 추억과 비릿한 바다 냄새 그리고 아릿한 사랑이 두둥실 물빛을 맞으며 춤을 추는 영화 <맘마미아>. 이미 뮤지컬로 세계를 흔들어 놓은 <맘마미아>가 영화로 재탄생하여 극장가로 돌아와 우릴 기쁘게 해주고 있다.

 

참으로 희한한 결혼식이 벌어진다. 엄마 도나(메릴 스트립 분)는 그리스의 작은 섬에서 평생 모텔을 경영하며 딸 소피(아만다 시프리드 분)를 키웠다. 이름 하여 '싱글맘'인 게다. 소피는 결혼을 앞둔 어느 날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보다, 엄마의 남편(즉 자신의 아빠)이 누구일까 궁금해진다.

 

일기장에서 등장하는 세 남자(샘, 해리, 빌)를 엄마 이름으로 결혼식에 초청하며 해프닝은 벌어진다. 뜻하지 않은 세 남자의 방문과 소피의 결혼을 축하하러 온 도나의 세 친구 그리고 소피의 세 친구들, 동네 사람들, 이들이 결혼식을 앞두고 펼치는 유쾌한 이야기가 <맘마미아>의 내용이다.

 

아바에 취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사랑을 배우게 된다

 

아바(ABBA)의 시대, 아바의 음악을 아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이 영화가 마음을 흐뭇하게 해줄 것이다. 중고등학생 시절 고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아바의 음악은 '전율' 그것이었다. 공부를 할 때도, 일을 할 때도, 등하교를 할 때도 참 많이도 듣던 곡조들, 그 추억의 명곡들이 영화에서 질펀하게 다가온다.

 

아바는 아그네타 팔트스코크(Agnetha Faltskog), 아니 프리드 린그스타드(Anni Frid Lyngstad), 베니 안데르손(Benny Andersson), 비요른 울바에우스(Björn Ulvaeus) 등으로 구성된 1972년부터 1982년까지 활동했던 주옥같은 히트곡을 낸 스웨덴의 남녀 혼성 4인조 팝그룹이다.

 

<맘마미아> 포스터 엄마 도나와 딸 소피의 모습이다.

▲ <맘마미아> 포스터 엄마 도나와 딸 소피의 모습이다. ⓒ 유니버셜

영화는 전반적으로 이들의 히트곡들이 깔리며 사랑, 삶, 고통, 이별, 정, 추억 등을 이야기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아바의 멤버들이 영화에 출연한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요즘 같이 무엇 하나 시원한 구석이 없는 시대에 <맘마미아>는 아주 단순하지만 '사랑이란 이런 거, 삶이란 이런 거'라고 콕 집어 전해주고 있다.

 

요즘 영화들이 복잡하고, 폭발적이고, 물량적이어서 소위 '블록버스터'가 아니면 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되어가고 있다. 잠시라도 화면에서 눈을 떼면 스토리를 잊을 정도의 긴박감이 스크린마다 가득하다. 이런 영화시장의 틈새에 <맘마미아> 같은 작품의 등장은 의외이지만 그래서 그런지 신선하고 참신하고 상큼하다. 내용 또한 상쾌하고, 통쾌하고, 명쾌하다.

 

그렇게 아바의 음악에 빠지다 보면 어느새 사랑이란 역에 다다른다. 때론 생의 격랑처럼 과격하게, 때론 초콜릿처럼 달콤하게, 때론 음유시인처럼 암울하게, 때론 연인을 손결처럼 부드럽게, 그렇게 음악이 깔리다 마지막에는 엄마와 딸의 사랑으로, 도나와 옛 연인과의 사랑으로 연결된다.

 

고적하나 억센 여인 싱글 맘 도나

 

이 영화를 보며 난 신현림이 생각난다. 혼자 윤아라는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며 <세기말 블루스>의 시인 신현림 말이다. 신현림은 그의 책 <신현림의 싱글 맘 스토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가고 싶은 곳이 많은가. 그럼에도 애 봐줄 사람도 없고 남편도 없고 오랜 동안 마땅히 맡길 곳이 없는 싱글맘은 때때로 좋은 기회를 접어야 한다. 살랑살랑 봄바람 같고 말랑말랑 오렌지처럼 빛나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다치고 아프면 어쩌나 아직 나는 염려가 많다. 먼 하늘에 뜬 파리한 초저녁 별들이 내 안으로 쏟아진다. 수면제 알약 같은 별이 내 몸을 파랗게 물들이면 이상하게도 모든 걱정이 녹아버린다."

 

가고 싶은 곳 많지만 수면제처럼 쏟아지는 별들을 가슴으로 안으며 절제한다는 얘기다. 근데 영화에 등장하는 소피의 엄마 도나가 바로 그런 싱글맘이다. 그렇게 아리고 아픈 사랑의 마음으로 소피를 20년간 기른 것이다. 그리고 딸 소피를 결혼시키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가고 싶은 곳 못 가는 것만 싱글 맘의 불편함이겠는가.

 

영화에서 도나는 성한 구석이 없이 낡은 오래된 모텔을 경연한다. 선택의 여지없이 모텔을 떠안고 경영하면서 얼마나 많은 삶의 애환들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을 것인가. 가히 짐작이 간다. 때로는 눈물짓고, 때로는 한숨지으며 20년을 딸 소피를 키우며 지낸 것이다.

 

육지 사람들 눈에는 환상의 섬이지만, 도나는 그저 가난하고 옹색한 바닷가일 뿐이다. 실제로 화면에 등장하는 섬은 가히 환상적이다. 파랗게 물들이며 다가오는 적당한 높이의 파도, 바다물결보다 더 파란 하늘, 언덕 꼭대기에 있는 하얀 집, 그리고 그 집까지 난 길고긴 층층대 길.

 

"자기야 나 잡아 봐라"하고 뛰어가면 안성맞춤일 그런 환상적인 골목과 척박한 데서 살면서도 순진한 동네 사람들, 그러나 도나에게는 질긴 삶을 영위할 일터일 뿐이다. 삶에 지치고 생활고에 너덜머리가 날 즈음 찾아 온 딸의 결혼식. 그 무엇보다 성대하게 치르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아바의 선율들이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앉는 바닷가에서 울려 퍼지면 벌써 사랑은 농익은 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아바의 선율들이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앉는 바닷가에서 울려 퍼지면 벌써 사랑은 농익은 거다. ⓒ 유니버셜

딸을 사랑한 싱글 맘 자신의 사랑을 찾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아바의 선율들이 햇살이 눈부시게 내려앉는 바닷가에서 울려 퍼지면 벌써 사랑은 농익은 거다. 뮤지컬의 셰필드 모녀는 영화에서는 메릴 스트립과 아만다 세이프리드가 기가 막히게 소화한다. 아니, 차라리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관객을 몰입의 지경으로 몰아넣는다. 이들의 사랑 또한 눈물겹다. 결혼식장에서 도나가 자신도 누가 딸의 아빤지 모른다고 하자 스무 살의 딸 소피는 엄마를 다 이해한다고 외친다.

 

"난 엄마가 수백 명의 남자와 잠자리를 가졌어도 상관없어요. 제 엄마니까요. 그리고 너무 사랑해요."

 

이쯤 되면 그 억척스런 싱글 맘은 성공한 게 아닐까. 엄마를 사랑하는 딸을 키워낸 것만으로 충분하다. 거기다 더하여 딸은 결혼식(결혼 포기가 아니라 결혼식만 미룬 것이다)을 미루고 자신의 결혼식장에서 엄마를 옛 애인 샘(피어스 브로스넌 분)과 결혼하도록 만든다. 소피의 결혼식장이 엄마 도나의 결혼식장으로 둔갑하고 만다.

 

명쾌하게 사랑이 결론이 나는 장면이다. 환한 미소로 극장을 나올 수 있게 하는 영화다. '한 해프닝이 이리 사람을 즐겁게 할 수도 있구나' 생각하게 만든다. 뮤지컬 <맘마미아>는 1999년 런던 초연 이후 160개국 도시에서 3억 명 이상이 관람한 뮤지컬계의 스테디셀러다.

 

그 명성 그대로 더 활달한 영화로 돌아온 <맘마미아>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 사랑이란 참 아름다운 것이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좋은 것,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 남녀 간의 사랑이든 모녀간의 사랑이든, 결국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다.

 

 엄마를 사랑하는 딸을 키워낸 것만으로 충분하다. 딸은 자신의 결혼식을 미루고 엄마를 옛 애인 샘과 결혼하도록 만든다. 소피의 결혼식장이 엄마 도나의 결혼식장으로 둔갑하고 만다.

엄마를 사랑하는 딸을 키워낸 것만으로 충분하다. 딸은 자신의 결혼식을 미루고 엄마를 옛 애인 샘과 결혼하도록 만든다. 소피의 결혼식장이 엄마 도나의 결혼식장으로 둔갑하고 만다. ⓒ 유니버셜

덧붙이는 글 | <맘마미아> 필리디아 로이드 감독, 유니버설 작품, 메릴 스트립, 콜린 퍼스, 아만다 시프리드, 피어스 브로스넌 연기, 108분

이기사는 갓피플,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9.12 14:33 ⓒ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맘마미아> 필리디아 로이드 감독, 유니버설 작품, 메릴 스트립, 콜린 퍼스, 아만다 시프리드, 피어스 브로스넌 연기, 108분

이기사는 갓피플,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맘마미아 개봉영화 필리디아 로이드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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