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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새벽 조계사 인근 우정국 공원에서 일어난 촛불시민 테러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피의자 박씨(39)는 흉기를 거침없이 휘둘러 '안티이명박' 카페 회원 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오른쪽 눈썹 위를 다친 윤아무개(31)씨는 지난 9일 4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다. 이마에 흉기가 박혔던 문아무개(39)씨는 흉기를 맞은 뒷목 수술에만 10시간이 걸렸고 아직까지 의식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다.

 

방송사들도 급박하게 움직였다. 피해자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사건이 일어난 우정국 공원, 그리고 수사 중인 종로경찰서까지 카메라는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경찰이 내놓은 보도자료와 다른 피해자와 목격자 진술이 이어졌고, 심지어 범행 당시 경찰의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러나 그날 MBC <뉴스데스크>, SBS <8시 뉴스>에서 이 테러사건은 주요 사건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10번째 꼭지 밑의 뉴스로 밀렸다. KBS <9시 뉴스>는 아예 다루지도 않았다.

 

이에 따라,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와 '방송장악·네티즌탄압 저지 범국민행동'(이하 범국민행동)은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방송사들을 향해 "시민을 향한 백색테러, 제대로 보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찬밥 취급받은 '촛불시민 테러사건'... KBS <9시뉴스>는 보도조차 안 해

 

범국민행동의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지난 9일 KBS, MBC, SBS 메인뉴스의 촛불시민 테러 보도는 다음과 같다.

 

SBS는 10번째 꼭지 <'쇠고기 논쟁'... 중상>에서 피의자 박씨의 주장과 피해자의 반박을 나란히 실었다. 경찰의 행태를 비난하고 '안티이명박' 카페 등이 이번 사건을 '공권력의 방조 아래 일어난 정치테러'로 규정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MBC는 9일 15번째 꼭지에서야 이 사건을 보도했다. MBC는 피해자 윤씨와 피의자 박씨의 주장을 나란히 실어 기계적 중립성에 충실했다. 사건의 의문점을 제기한 피해자들의 기자회견은 나오지도 않았다. 이보다 앞서 나온 보도들을 살펴보면 한반도 온난화로 인해 작물재배지도가 바뀐다는 내용의 '서울에 열대과일', 10일 중국에서 월드컵 축구대표팀이 북한과 경기를 치른다는 내용의 '내일 남북대결' 뉴스였다.

 

KBS 메인뉴스에서는 단신조차 없었다. 메인뉴스 이전 저녁뉴스에서는 36초짜리 단신으로 처리됐을 뿐이다. 이에 대해 범국민행동은 "우리사회의 최대 이슈였던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시민 3명이 회칼 테러를 당했는데도 이를 보도하지 않은 것은 공영방송으로서 직무유기"라며 "실망을 넘어 분노마저 느낀다"고 개탄했다.

 

범국민행동은 이어 "이명박 정부가 방송장악 시도를 노골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지상파 방송사들의 보도태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시민을 향한 백색테러에 대한 방송사들의 적극적인 보도를 거듭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언련 "KBS, 촛불시민들을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입을 모아 KBS를 비판했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SBS 보도를 처음보고 '역시 SBS'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통상 강력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증언 뒤에 가해자의 반박이 이어지는 보편적 구성을 뒤집어, 가해자의 주장을 먼저 처리한 뒤 피해자의 증언을 배치하는 식으로 처리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MBC나 KBS도 SBS와 다를 바 없다는 점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MBC도 SBS가 보도했던 '안티이명박' 카페 회원들의 의혹제기는 무시한 채 기계적 중립에만 충실했고, KBS는 스포츠뉴스가 끝날 때까지 관련 보도가 없었다고 개탄했다.

 

"오히려 SBS가 가장 나았다. 비참했다. 지금 시민들이 KBS를 찾아가 촛불을 밝히고 있는 것은 내부의 건강한 세력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보도국에서 들려오는 내부 잡음 등은 국민에게 'KBS를 위해' 계속 촛불을 들지 말도록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김 사무처장은 이어 "시민들이 KBS를 버린 순간, KBS는 다시 독재정권 하의 굴욕적인 상황에 빠진다"며 "신뢰도 1위의 명성을 잊지 말아달라, 잘 생각해달라"고 호소했다.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도 "조·중·동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KBS마저 이럴지 몰랐다"며 "경찰이 하지 못한다면 진실을 보도해야 할 언론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실망 그 자체"라고 비판했다.

 

또 "이번 사건은 이명박 정권 하 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잴 수 있는 척도"라며 "언론인 여러분에게 이 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한 노력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최상재 언론노조위원장, "진실보도 약속했는데..."

 

이에 대해 최상재 전국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번 테러사건 보도를 '정권의 눈치 보는 보도'로 규정하고 대신 사과했다.

 

최 위원장은 "그동안 촛불집회에서 '언론을, 방송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면서 '사실을 열거하는 보도가 아닌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이 되겠다'고 약속했는데 참담하다"며 "앞으로 계속 이런 일이 생긴다면 수신료 납부거부운동, 구독거부운동이 일어나고 언론은 공공의 적이 될 것"이라고 한탄했다.

 

또 언론들을 향해 "이 상태로 가면 언론은 독재정권하 노예시절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자성을 촉구하기도 했다.


태그:#촛불시민 테러, #조계사, #백색테러, #언론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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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입사. 사회부(2007~2009.11)·현안이슈팀(2016.1~2016.6)·기획취재팀(2017.1~2017.6)·기동팀(2017.11~2018.5)·정치부(2009.12~2014.12, 2016.7~2016.12, 2017.6~2017.11, 2018.5~2024.6)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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