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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가을이면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이라는 김상희의 노래를 듣고 그 감미로운 목소리와 음률이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국도변에 줄지어 핀 코스모스를 보노라면 문득 이 노래가 귓가에 맴돌다가 사라집니다.

 

특히 제게는 이 코스모스의 추억이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제법 부유했던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지면서 부모님과 우리 다섯 남매는 가난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했고, 생계를 위해 늘 집을 비우시던 부모를 대신해서 큰 누님은 동생들 뒷바라지를 책임졌습니다.

 

 

나보다 12살이나 많은 큰누님은 막내인 저를 유난히 귀여워해 주셨고 등하교 시간은 어머니처럼 동행해 주었습니다. 집에서 학교로 가는 길엔 언제 열차가 다녔는지 알 수 없는 녹슨 기찻길이 나타나고, 그 옆으로 줄을 지어 피어 있는 '코스모스'는 바람에 흔들리며 여덟개의 손가락을 폈다 오무렸다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누님의 입에서는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길을 걸어 갑니다~"라는 김상희의 노래가 흘러 나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한창 낭만을 누렸어야 할 아가씨였지만 누님은 동생들 뒷바라지 때문에 야간 직업학교와 공장을 다녀야만 했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학교에서 상장을 타거나 체육대회에 1등을 할 때면 엄마보다 제일 먼저 큰누님에게 알리고 싶어 한 걸음에 달려가기도 했었고, 사춘기의 고민을 기꺼이 들어주기도 했었던 든든한 후견인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고 혼자서 조카를 키우던 누님의 모습을 봐야 했던 건 아픔이었습니다. 다행히 엄마의 고통을 감싸주던 딸 덕분에 누님은 상처를 치유받고 지금은 다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방뉴스를 보니 오는 9월 19일부터 인근 경남 하동에서 코스모스와 메밀꽃 축제가 열린다고 하는군요. 길가에 옹기종기 핀 코스모스만 보다가 넓은 들에 끝없이 피어 있는 코스모스가 생소해서 한 번 미리 가 봤습니다. 엄청난 넓이의 들에 몽몽하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와 메밀꽃들이 가을을 재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추억은 눈으로 발견하는 게 아니던가요. 누님의 손을 꼭 잡고 기찻길을 걸으며 꽃잎을 하나 건너 하나씩 따내고 공중으로 날리는 헬리콥터 놀이를 하며 깔깔거릴 때의 기억은 이미 잊혀져 가더군요.

 

어쩌면 내가 잃어버린 건 시간이 아니라 추억을 담아두었던 마음의 그릇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문득 큰 누님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싶습니다.

 

"코스모스 한들한들 피어있는길. 향기로운 가을길을 걸어갑니다.

기다리는 마음 같이 초조하여라. 단풍같은 마음으로 노래 합니다

길어진 한숨이 이슬 맺혀서 찬바람 미워서 꽃속에 숨었나

코스모스 한들 한들 피어 있는 길 향기로운 가을 길을 걸어 갑니다"


태그:#코스모스, #메밀꽃, #하동코스모스축제, #하동메밀꽃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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