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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플레시아라는 꽃을 아시나요? 세계에서 가장 큰 꽃으로 100cm에 달하는 거대한 식물종이에요. ‘사치스러울 정도로 큰’ 이 꽃의 거대함에 대해 생물학자들은 여러 가지 진화론 설명을 하였지요. 그 중에 한 생물학자가 경제 원칙으로 이 거대한 꽃을 설명하는 가설을 내세웠는데 흥미롭네요.

 

“라플레시아는 다른 꽃들과 달리 비용 효과의 경제 원칙에 지배되지 않는다. 이 식물이 소비하는 영양분은 자신이 번 것이 아니다. 소비하는 영양분을 숙주인 덩굴 식물로부터 가져온다. 라플레시아가 착취하는 영양분의 한계에는 제한이 있을 수 없다. 다른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식물의 세계에서도 불로 소득이 터무니없이 한계를 벗어나는 낭비와 사치로 이어지는 것 같다.”(<식물의 사생활>, 데이비드 애튼보로, 도서출판 까치, 1995) - 책에서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을 때 생물들은 몸 색깔이 화려해지죠. 풍족한 생물들이 몸 색깔을 화려하게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에요. 괜찮은 ‘성적배우자’를 구하기 위해서죠. 먹고 살기 쉬워진 한국 사회에서도 몸치장에만 신경 쓰고 머리는 비우고 있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책이 있어요. 시인이자 문화평론가인 조병준은 <나눔 나눔 나눔>[2002. 그린비]에서 라플레시아를 빗대어 한국 사회를 꼬집죠.

 

라플레시아의 거대한 꽃은 금세 지독한 냄새를 풍기며 썩기 시작한다. 우리의 불로 소득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다른 불쌍한 덩굴 식물로부터 착취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베트남에서, 스리랑카에서, 아니 김포와 동두천과 안산에서, ‘피부가 약간 검은’ 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착취하는 불로 소득을 가지고 우리가 지금 탱탱한 젖가슴을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종속이론을 신봉하며 미국의 독점 자본을 물어뜯던 한국의 대학생들은 왜 이제 입이 닫혀있을까? - 책에서

 

자신을 꾸미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감정이지요. 먹을 것도 귀했던 시절을 지나 풍족해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잘 차려입고 다니고 있지요. 책을 읽으니 이것이 스스로 힘으로 얻은 것인지 고민하게 되네요.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이 편안함이 많은 이들의 불편위에 세워진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네요. 불로소득의 말로를 보여주는 라플레시아 꽃처럼 땀 흘려 벌지 않는 것은 썩기 마련이라는 교훈을 얻게 되네요.

 

이어서 지은이는 현대인들에게 우상이 된 ‘몸’에 대해서 날카롭게 꼬집어요. ‘외모자본’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어느새 몸이 경쟁력이 되었네요. 농경사회도 아닌데 남자들은 팔굽혀펴기를 하여 근육을 키워야 하고 여자들은 다이어트 소리에 자다가도 귀를 기울이고 있죠. 수 십 만원 화장품을 발라야 하고 삶의 자연스러운 징표인 주름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대에, 백설공주 동화에 대한 글쓴이의 해석은 여러 모로 생각하게 하네요.

 

왕자가 백설공주를 살리게 된 것은 오로지 그녀의 ‘아름다움’이 유일한 이유였다. 왕자는 백설 공주의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녀를 구원한 것은 그녀의 착한 심성이 아니라 그녀의 ‘착한 몸’이었다. 백설 공주 이야기가 여자들만의 이야기라고 착각하지 말자. 못생긴 왕자, 비쩍 마르고 숏다리인 왕자를 본 적이 있는가? 백설 공주가 그 착한 일곱 난쟁이 중 누구와도 사랑에 빠지지 않았음을 기억하자. - 책에서

 

지은이는 음악, 연극, 영화, 건축, 여행 다양한 분야를 횡단하고 마이클 잭슨부터 서태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종단하며 글을 쓰지요. 이 책에서 그는 특유의 문체와 따뜻한 눈길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나눔'이라는 주제로 풀어나가지요.

 

이 책에서 '나눔'은 세 가지 의미가 있어요. 지난 세대의 집단주의에서 벗어난 건강한 개인으로 나누어짐(dividing), 건강한 개인들이 연대하기 위해 생각을 나눔(communicating), 연대한 공동체가 서로를 열어서 공유하는 나눔(sharing)이죠.

 

지은이의 의도대로 마더 테레사와 같이 봉사활동을 하고 세계를 이리저리 여행하면서 배운 사람에 대한 믿음과 행복이 읽는 이에게 전달이 잘 되네요. 그가 펼쳐놓는 풍성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네요.

 

마지막으로 건축가 곽재환과 인터뷰한 내용에서 나오는 인상 깊은 글을 소개해요. 상대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걸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이곳, 침묵 수도원에 다녀왔으면 좋겠네요.

 

[자비의 침묵 수도원]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복도 폭을 75cm로 만들었지요. 신부님, 수사님들이 욕을 바가지로 하더군요. 두 사람도 못 지나가도록 복도를 만들면 어떻게 하냐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 양반들이 그 복도를 그렇게 좋아한답니다. 사제들 간에 형제애를 키우는 복도라고요. 두 사람이 서로 지나가겠다고 우기면 한 사람도 그 복도에선 못 지나갑니다. 한 사람이 옆으로 붙어서 주면 그 때 비로소 두 사람이 모두 지나갈 수 있지요. 그래서 그 복도의 이름이 ‘겸손의 복도’입니다. - 책에서

 


나눔 나눔 나눔

조병준 지음, 그린비(2002)


태그:#라플레시아, #나눔, #조병준, #불로소득, #외모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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