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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잠이 없는 아이를 키우면서 제 눈 밑에는 '헤이세이 너구리 전쟁'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짙은 다크 서클이 가시질 않습니다. 육아(아이와 놀아주는 일)가 정신적, 경제적으로 쉽지 않은 것은 물론, 체력적으로도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이가 커 갈수록 새록새록 느낍니다.

 
낮잠도 자지 않은 세 살짜리 아이가 새벽 1-2시가 되도록 잠들지 않으면, 펑펑 울어버리고 싶어집니다. 먼저 잠든 남편이 얄밉기도 하고, 엄마 생각은 안 해주는 아이가 귀찮기도 합니다. 그런 날 엄마도 요령을 피웁니다. 전등을 끄고, 그림자 놀이 책들을 꺼내는 거지요.
 
"밤마다 집안에 그림자 극장을 차려요." - <할머니의 요술 모자>
 

"여기 있는 이 모자에는 절대로 손대면 안 된다. 알았지?"

 

다정한 할머니가 웬일인지 단호하게 말씀하시지만, 아이는 할머니가 나가자마자 얼른 모자를 써 봅니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요. 모자를 쓰고 소리가 나는 2층으로 올라간 아이 눈에는 엉망진창으로 어질러진 방이 나타납니다. 욕실에서는 거센 물소리가 들리고, 지하실에서는 불꽃이 활활 타올랐지요.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지요?  

 

이 책은 맨 뒷장에 그림자 배경판이 붙어있어서, 한 장씩 세워 빛을 비추면 그림자가 나타나는 책입니다. 쿠하가 18개월 무렵에 샀는데, 처음에는 마녀가 나오는 그림자를 무서워해서 책을 꺼내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1년 뒤 30개월이 되자 매일 저녁 스스로 책을 꺼내 옵니다. 쿠하 또래의 아이들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까지 어른들이 성대모사를 실감나게 해 주면서 읽어주면 좋아할 책입니다.

  

아주 어린 아기들도 좋아하는 <불을 꺼 봐요!>

 

그림자에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아기들에게 추천하는 책입니다. 

 

책장을 펼치면 어두운 팝업이 나타납니다. 사냥을 나선 고양이의 반짝이는 눈동자, 밤 바다를 빛내는 등대 불빛, 나뭇가지 위에서 날개를 펼치는 올빼미, 빗자루 타고 날아가는 마녀 등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 나옵니다. 

 

고양이와 달의 이미지는 의외로 아기들에게 친숙한 그림입니다. '국민 그림책'이라 할 수 있는 <달님 안녕>은 6-7개월짜리 아기들부터 읽어주기 시작하는데, 그 책에 달과 고양이 두 마리가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아주 어려서부터 달과 고양이에 익숙해서인지 이 책은 어린 아기들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듯 움직이는 갖가지 그림자가 아기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에 그림자에 무관심한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좋은 책입니다.

 

쿠하의 첫번째 그림자 그림책, <누구 그림자일까?>

 

작가 최숙희의 그림은 따뜻하고 편안합니다. 오래 두고 봐도 질리지 않는 그림은 이 책의 첫번째 장점입니다. 날개책으로 되어 있어 한 장을 더 펼쳐보는 재미를 주고, 그림자의 주인을 알아맞히는 수수께끼 형식이라 아이들이 재미있어 합니다. 

 

얼핏 보면 왼쪽에 나오는 사물의 그림자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른쪽 접지 부분을 펼치면 생각지 못한 주인공이 나타납니다. 사물, 사물의 그림자, 그 그림자 뒤에 숨은 동물이 "누구 그림자일까?"라는 반복 질문과 펼쳐서 답을 찾는 동안 아이들의 호기심, 형태 인식력, 그리고 상상력이 자라겠지요.

 

손전등 없이 그림자를 가르쳐 줄 수 있고, 물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2-3세 아기들에게 읽어주기 좋은 그림책입니다.   

 

난이도를 조금 높여볼까요? - <그림자는 내 친구>

 

우리집은 티라이트 양초를 박스채 사다 놓고 밤마다 촛불을 켭니다. <그림자는 내 친구>를 읽고, 빛이 물체를 통과하지 못할 때 그림자가 생긴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 생긴 버릇입니다. 쿠하 키보다 약간 낮은 서랍장 위에 촛불을 켜 놓으면, 혼자 알아서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들며 책 속의 그림자를 흉내내며 놉니다. 엄마는 누워서 벽에 생긴 그림자를 구경하면 그만입니다. 

 

이 책은 지겹지 않게 그림자의 원리를 설명해 줍니다. 빛에 가깝게 서 있으면 그림자가 커지고 빛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그림자가 작아진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면, 아이는 벽과 서랍장 사이를 오가며 커졌다 작아지는 제 그림자를 자랑하느라 바빠집니다.

 

'그림자를 떼어 놓을 수는 없지만, 사라지게 할 수는 있어'라는 대목에서는 엄마 품으로 쏙 파고들어 자기 그림자를 없애기도 하는 등 자기 수준의 이해를 보여줍니다.

 

밤마다 아이는 손전등과 촛불을 켜달라고 조릅니다. 귀찮기도 하고,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아이라 위험하기도 하지만 밤에만 즐길 수 있는 그림책으로 그림자와 친구가 됩니다. 덤으로 엄마는 조금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요술 모자 - 미세기 그림자 극장

나탈리 디에테를레 글.그림, 박상은 옮김, 미세기(2007)


태그:#그림자, #그림책, #놀이, #잠, #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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