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리스도인이라 제사는 안 드리지만 직접, 그것도 낫으로 벌초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 벌초 그리스도인이라 제사는 안 드리지만 직접, 그것도 낫으로 벌초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될 수 있는 대로 산 밑까지 차를 몰고 와 폐가의 마당에 차를 댑니다. 그러고도 헐떡대며 4-50분을 올라야 공동묘지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산 밑까지 차를 몰고 와 폐가의 마당에 차를 댑니다. 그러고도 헐떡대며 4-50분을 올라야 공동묘지입니다.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파란 하늘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뭉게구름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천사들이 자신들의 둥지를 뭉게뭉게 그린 듯합니다. 들꽃 또한 흐드러집니다. 거미줄도 꼭 꽃이 핀 듯 예술적으로 엮어놓았네요. 그리 아름다운 길을 사람들은 상여를 짊어 맨 채 울며불며 올랐겠지요.

"아부지, 아들 왔시다. 잡초가 너무 컸시다. 잠깐 기다리시겨. 금방 깎아 드리갔시다."

무덤 속에 계신 분이 알아듣기야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살갑게 강화 사투리로 인사를 드리고 일 년 만에 낫을 들었습니다. 낫 쓰는 일을 안 하니 일 년에 한번 벌초할 때 낫을 듭니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좀 늦었습니다.

강화는 대부분 추석 한 달에서 한 달반 전에 벌써 벌초를 마칩니다. 나는 일러야 20일전, 늦으면 일주일 전에 벌초를 하니 다른 산소들이 이미 산뜻하게 벌초가 되어 있을 때 아버지 묘에 낫질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너무 이르면 추석 때는 다시 풀이 덮여서 일부러 그렇게 합니다.

헐떡고개를 넘으며

"당신 아버님 참 복도 많으셔요. 기르지도 않은 아들이 이토록 먼 길을 와 벌초를 꼭 해드리니."
"그래도 낳으셨잖아. 얼굴 기억도 없는 아버지 산소에 벌초하기 위해 이리 꼭 오니. 그래서 '아들 아들' 하는 모양이야."

차에서 등산화를 꺼내며 아내가 하는 말에 나도 등산화를 챙겨 신으며 이렇게 응수합니다. 내 생일이 음력으로 4월이고 아버지 돌아가신 게 그해 11월이니 날 낳은 지 7개월 만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얼굴을 기억할 리가 없지요.

등산화를 챙겨 신어야 할 정도로 급한 경사의 헐떡고개(순전히 우리 부부가 붙인 이름)를 올라야 아버지 묘에 이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산 밑까지 차를 몰고 와 폐가의 마당에 차를 댑니다. 그러고도 헐떡대며 4-50분을 올라야 공동묘지입니다.

지난해는 장마로 길이 온통 패어 힘든 등산이었는데 올해는 임도를 만드는지 공사가 한창입니다. 이미 공동묘지까지는 거의 공사가 끝나 오르기도 수월합니다. 그래도 경사도가 4-50도 고개인지라 헐떡거림이 덜하지 않습니다.

37살에 청상과부가 된 가난한 농부의 아내, 그게 우리 어머니였습니다. 지금 우리 부부가 헐떡대고 오르는 아버지 묘가 아무리 힘들게 올라야 하는 고개라고 해도, 어머니가 넘은 삶의 헐떡고개만이야 하겠습니까. 난 아버지 묘 앞에서도 고생하신 어머니 생각만 납니다.

그렇게 핏덩이를 남겨놓고 가신 아버지, 어머니는 오죽했겠습니까. 그 핏덩이가 아버지 묘에 벌초를 하러 온 것입니다. 헐떡고개를 오르려면 두세 번은 쉬었다 올라야 합니다. 낫 두 자루, 혹 있을지 모르는 벌을 퇴치하기 위한 모기향, 장갑, 수건, …. 만반의 준비를 하고 말입니다. 오늘도 아버지는 말이 없습니다.

거미줄도 꼭 꽃이 핀 듯 예술적으로 엮어놓았네요.
 거미줄도 꼭 꽃이 핀 듯 예술적으로 엮어놓았네요.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아버지 묘로 올라가는 길에 산사나무열매, 구절초꽃 등이 흐드러집니다.
 아버지 묘로 올라가는 길에 산사나무열매, 구절초꽃 등이 흐드러집니다.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고단한 삶의 길만큼이나 빈부격차가 가르는 죽음의 길


강화도 고려산 줄기 중 하나인 '터안'이라는 데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기존 무덤들에 표지석을 세우고 나서는 묘지를 쓰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새 무덤을 쓰면 벌금을 물린다는 경고판까지 세워졌습니다. 올해는 그 경고판이 더욱 살벌하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매장하고 싶은 사람이 돈이 없을 때는 하는 수 없는가 봅니다. 이장한 무덤 터에 새 무덤이 들어섰습니다. 바로 아버지 묘 옆이라 눈길이 갑니다. 표지석이 없는데 나중에 어찌 될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아버지 묘에 오를 때마다 그 턱에 차는 숨만큼이나 죄송하고 주눅 드는 게 있습니다. 묘지관리가 엉망이기 때문입니다. '형편이 나아지면 이장해 드려야지' 하며 차일피일 한 것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어머니는 대전의 그럴싸한 공원묘원에 묻혀 계십니다.

아직 아버지는 공동묘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납골묘나 공원묘원이나 작은 돈이 드는 게 아니거든요. 아버지에게는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내가 묘지에 그리 돈을 들여야 하는 건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가진 사람 못 가진 사람이 가장 차이가 나는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바로 무덤입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는 유명한 말을 다 아실 것입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는지 모르지만 죽은 사람을 묻는 산 사람들은 주머니가 있습니다.

요즘 화장이니 수목장이니 하는 것들을 장려합니다. 참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성공하려면 돈 가진 자들의 초호화판 납골묘를 단속해야 합니다. 금수강산이 어느새 묘지강산이 된 지 오랩니다. 이젠 금수강산이 호화판 납골강산이 될지 모를 일입니다.

경사도가 4-50도 고개인지라 헐떡거림이 덜하지 않습니다.
 경사도가 4-50도 고개인지라 헐떡거림이 덜하지 않습니다.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새 무덤을 쓰면 벌금을 물린다는 경고판까지 세워졌습니다. 올해는 그 경고판이 더욱 살벌하게 여겨집니다.
 새 무덤을 쓰면 벌금을 물린다는 경고판까지 세워졌습니다. 올해는 그 경고판이 더욱 살벌하게 여겨집니다.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역시 벌초는 낫으로 해야

이젠 고향에 일가친척이나 친구도 거의 없어 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고향 공동묘지에 누워계시니 꼭 옵니다. 한해도 직접 하는 벌초를 거른 적이 없습니다. 요즘 어떤 이들은 벌초를 대행시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건 자손 된 도리가 아닌 듯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 제사는 안 드리지만 직접, 그것도 낫으로 벌초해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벌초대행과 예초기라는 것이 유행하는 시대지만 왠지 거리감이 들어 이용하지 않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낫을 들고 묘의 풀들을 깎습니다. 잔디로 덮였어야 할 묘가 이끼와 잡풀들뿐입니다. 올해도 또 그럽니다. '아부지, 죄송하이다. 째끔만 여기 더 계시겨. 형편 되면 옮겨드리겠시다' 이런 말을 몇 번을 더해야 할지. 아내가 말을 겁니다.

"여보, 언제 그리 낫질을 배웠어요? 참 잘하네."
"어렸을 때 소꼴 베고 논두렁 풀 깎고 다 내가 했는데 뭐. 그땐 손가락도 어지간히 베었는데."
"어떻게 잊어버리지도 않아요? 일 년에 한번 벌초 할 때 밖에는 전혀 낫질을 안 하는데."
"어릴 때 배운 일인데. 왜 '세살 버릇 여든 간다'잖아? 역시 벌초는 낫으로 하는 게 좋아."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어릴 때는 지겹던 낫질이 이리 유용하게 사용될 줄 그땐 몰랐습니다. 아들 녀석은 '낫'자도 모르는데 어떻게 할지 걱정입니다. '내가 죽으면 화장하라고 해야지. 내가 죽기 전에 부모님 묘도 다 화장하고.' 다시 한 번 다짐해 봅니다.

흐르는 땀을 닦으며 잠시 하늘을 봅니다. 참 곱기도 합니다. 저기 떠가는 구름이 꼭 예수님이 거느리고 있는 양떼들 같습니다. 둘레 다른 묘들을 봅니다. 옹기종기 모여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합니다.

"아부지, 이제 다 했시다. 시원하시꺄? 이웃들은 좋으꺄? 이웃사촌이 좋아야 하는데…."

벌초를 마친 후 우리 부부는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합니다. 시원한 물을 목으로 넘기며 우린 헐떡고개를 내쳐 내려옵니다. 언제가 돼야 이 헐떡고개를 다시 오르지 않아도 될지 아직 기약도 못한 채. 우리 맘 아는지, 여전히 높은 하늘에선 양떼구름이 끝 모를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웃들은 좋으꺄? 이웃사촌이 좋아야 하는데…" 공동묘지의 묘들에 벌초가 깨끗이 되어 있습니다.
▲ 공동묘지 "이웃들은 좋으꺄? 이웃사촌이 좋아야 하는데…" 공동묘지의 묘들에 벌초가 깨끗이 되어 있습니다.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우리 맘 아는지, 여전히 높은 하늘에선 양떼구름이 끝 모를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맘 아는지, 여전히 높은 하늘에선 양떼구름이 끝 모를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 김학현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갓피플,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벌초, #호화납골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