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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이 묵었던 방
 전두환 전 대통령이 묵었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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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절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변하면서 그 호기심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20.6km 내설악 도보기행 종착역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수행의 절집 그 흔적 속으로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690번지 백담사. 백담사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지요. 한때 온갖 세인의 지탄을 받고 떠나온 자를 머물게 했던 곳이니 자비가 넘쳐 흐르는 절집이 아닌가요? 그렇기에 누구나 한 번쯤은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시 그곳에서 1년 동안 머물렀다는 어느 한 지인은 하루에 3천 명의 길손들이 백담사를 방문해서 북새통을 이루었다더군요. 아미타불 자비에 의해 극락왕생할 수 있는 수행의 절집이기 때문이었을까요?

아마 그것은 자신의 꼬리를 감추고 싶었던 인간의 욕망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 방문객들은 동물원 원숭이를 구경하러 가는 꼴이었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내설악 깊은 오지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릴 일이 뭐 있겠습니까.

수심교
▲ 수심교 수심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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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계곡 가로지르는 수심교 

8월 25일 오전 10시 30분. 수심교를 건너 백담사로 들어가는 순간이었습니다. 백담사 뒤에는 내설악의 고즈넉한 산봉우리가, 백담사 앞으로는 백담계곡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갈고 닦는 다리'라는 수심교는 백담계곡을 가로지르더군요. 수심교는 절집 앞 다리치고는 생각보다 길었습니다. 더욱이 이 수심교는 절집 수행에 나선 전직 대통령을 위한 배려로 완공되었다더군요. 그것뿐이 아닙니다. 설악의 첩첩산중에 그나마 길이 트인 것은 전직 대통령이 기거하면서부터였다 하니 좁은 산길을 갈고 닦아 시멘트길 만들어 놓은 것이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인적 드믄 산사 하나쯤 남아 있음은 동경의 대상이지요. 하지만 이젠 설악의 오지 봉정암까지 인파가 북적이니 때 묻지 않은 산속 절집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수심교 주변에는 마지막 여름을 즐기고 있는 세인들이 몸을 닦고 있더군요. 몸이 가뿐 해야 마음도 정갈할 테지요.

사천왕문
▲ 사천왕문 사천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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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
▲ 금강문 금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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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문을 지나 사천왕문에 이르렀습니다. 절집에 들어갈 때 늘 마음이 동요되는 곳이 사천왕문입니다. 사찰을 수호하고 정신을 깨우치는 문이라는데 육신을 웅크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아마 전생에, 아니면 현세에 많은 죄를 지었나 봅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걸 보니까요.

백담사 가람
▲ 백담사 백담사 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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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보전
▲ 극락보전 극락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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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불상을 모신 극락보전에는 노스님께서 축원 기도를 드리고 있더군요. 대학 수능 기도문 같았습니다. 이쯤해서 사찰마다 신도들이 붐비는 이유는 깨달음의 순례가 아니라, 복을 기원하는 순례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안락 정토세계를 보장한 곳으로, 중생을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지혜 주는 가람이라면 백담사 극락보전이 아닌가요? 그러나 중생들은 하나같이 소망을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는 것 같더군요.

약수
▲ 약수 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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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의 방문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해야 하는데, 2박 3일 설악의 땀 냄새가 풍기니 아미타불께 죄송스런 마음이 들더군요. 하지만 극락보전 뒤뜰에 서 있는 약수가 찔끔 찔금 흐르고 있어 물 두 바가지를 받아 2박3일 동안의 목마름을 해소할 수 있었지요. 약수터 뒤에 자리잡은 호수가 백담의 호수 같았습니다.

사회적 이슈는 흔적만 남아 잇다.
▲ 흔적 사회적 이슈는 흔적만 남아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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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사회 쟁점은 흔적만 남아

드디어 화엄실로 향합니다. 1988년 11월 23일부터 전 대통령이 기거했다는 방 한 칸은 세월의 때가 묻은 것 같습니다. 이불 2채, 작은 거울 1개, 큰 물통 하나. 그리고 방에는 카페트가 깔려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사회 쟁점도 세월이 변하니 퇴색되어 버린 것 같더군요. 백담사가 달라진 게 있다면 도량마다 전각들이 들어섰다는 것뿐이겠지요. 

한용운 님의 시비
▲ 시비 한용운 님의 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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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운 님의 동상에 새겨졌다.
▲ 님의침묵 한용운 님의 동상에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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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입문했다는 한용운님의 흔적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님만이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이 다 님'이다. 목판에 새겨진 메시지가 산사를 방문한 길손의 마음을 흔듭니다. 생각해 보니 언제부턴가 내설악 풍경과 절집을 그리워했던 내게 설악은 진정 '내 님'이 아니었던가 싶습니다. 하지만 '기룬 것이 다 님'이라니 내 님은 삼라만상에 다 존재하는군요.

숨 가쁘게 걸어왔던 두 다리의 피로를 만해기념관에서의 뚜벅이 걸음으로 해소해 봅니다. 나지막이 만해의 육성이 들리고 학창 시절 애송했던 시 구절을 기억 속에서 꺼내어 보는 순간이었지요. 시비에 새겨진 <나룻배와 행인>시 한편이 시대의 감성을 떠나 역사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산사체험실
▲ 산사체험실 산사체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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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계곡에 객진번뇌를 털어내고 설악영봉 벗을 삼아 출격장부의 기상을 다듬는 선불장 백담사. 한때 사회적으로 이슈를 제공하기도 했던 오지의 절집 백담사는 이제 설악의 정상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에게 시작과 끝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평등한 정토세계를 꿈꾸는 가람은 '님의 침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기룬 것이 님'이라, 내설악 속에 숨어 있는 '님'을 만나기 위해 20.6km 천상의 길을 걷고 왔지요. 푸른 산 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덧붙이는 글 | 내설악 도보기행 마지막 편입니다. 그동안 기사를 읽고 여러가지 정보를 제공해 주신 분들과 지적을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태그:#백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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