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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장관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도 되는가?"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김경한 법무장관의 '경찰 폭력 면책' 발언이 도마 위에 올랐다. 김 장관은 전날(3일) 한나라당 연구모임 '국민통합포럼' 초청토론에 나와 "경찰관이 법 집행 과정에서 다소 상대방에게 물리적인 피해가 간다 하더라도 정당한 공무집행이면 면책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야당 의원은 물론 일부 여당 의원들조차 "경찰의 과잉 대응을 주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김경한 장관이 면책특권을 운운한 것은 법무부장관으로서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으로 "월권", "초법적 발상" 등의 지적이 제기됐다.

 

홍일표 한나라당 의원은 김 장관 발언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법무부는 경찰과 다른 엘리트 집단"이라고 말했다가, '경찰 폄훼'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을 비롯해 청와대와 정부 고위관료들의 위법 사실에 대해 김 장관이 '모르쇠'로 일관하자, "법치를 얘기하면서 이중잣대를 대고 있다"고 쏘아붙이는 등 설전을 주고받았다.

 

'돌아온 장고'와 'MB 저격수'의 돋보이는 활약 

 

촛불집회 등을 두고 '불법시위 엄단'을 외치며 이명박 정부의 '신 공안정국' 조성에 앞장서 왔던 김경한 법무장관이었지만, '돌아온 장고' 박지원 의원과 'MB 저격수' 박영선 의원 앞에서는 진땀을 뺐다

 

김경한 장관의 '경찰 폭력 면책' 발언에 대해 가장 먼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것은 초선의 이춘석 민주당 의원이었다. 이춘석 의원은 "경찰의 공권력은 최소한의 한도에서 행사되어야 하고, 남용되어서는 안된다고 규정돼 있다"며 "법무장관의 발언은 경찰이 강경 진압을 해도 된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장관은 "정당한 공무집행을 하다가 물리적인 피해를 보는 것은 면책이 된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그 말은 안해도 경찰이 다 안다. 그런데 공개 석상에서 그런 발언이 바람직하냐"고 재차 따져물었지만, "본의가 아니다"는 김 장관의 해명으로 논란이 일단락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이 의원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한나라당 의원들이 적극적으로 김 장관에 대한 지원사격에 나섰다.

 

손범규 의원은 "합법화된 폭력인 공권력이 죄를 짓는 것처럼 되고, 불법적 폭력이 영웅행위처럼 되는 억울한, 바람직하지 않은 사태가 발생함으로써 경찰 공무원들의 의욕과 사기가 떨어졌다"며 "김 장관이 공무원 사기 진작을 위해서 당연한 얘기지만 재천명 할 수 있다고 본다"고 거들었다.

 

주성영 의원도 '집회시위 피해자들에 대한 집단소송제' 도입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김 장관의 발언은 경찰관의 정당한 공무집행 과정에서의 물리적 피해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하겠다고 한 것으로 법률 교과서에 나오는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고 옹호했다.

 

'든든한 지원군'의 전폭적인 지지 발언을 등에 업은 김 장관은 "(의원들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며 여유를 보였다. 이 때까지 분위기는 '김 장관이 할말을 했다'는 쪽으로 기우는 듯 했다.

 

"월권, 사과하라"... "월권하지 않았다"

 

 

그러나 96년 이후 12년만에 국회에 복귀한 박지원 민주당 의원이 마이크를 잡으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박 의원은 "법무장관은 법질서 유지의 책임도 있지만 국민의 기본권인 인권도 책임지는 분"이라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유감스럽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장관이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다"고 해명에 나섰지만, 박 의원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하지 않았다면 더 위험한 발상"이라며 "김 장관이 '서울대 여대생 한 명만 과잉진압했다'고 하니까,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는 것"이라고 질책했다. 박 의원은 법무부 인권국장까지 불러내 김 장관에게 '인권도 지켜져야 한다'는 말을 건의한 적이 있는지 등을 추궁했다.

 

박 의원은 또 "김 장관의 말 때문에 혹시 과잉진압이라도 해서 만약 피해자가 나면 (제2의) '6.10 항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장관이 물리적으로 그렇게 해도 봐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초법적 발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의원의 질문이 끝나자, 한나라당 소속인 홍일표 의원조차 "장관의 말은 인권침해를 무릅쓰고서라도 (시위대를 진압)하겠다는 것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번엔 지난해 대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BBK 주가조작 의혹' 사건을 매섭게 물고늘어졌던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박영선 의원은 "법부장관에게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신뢰"라며 "그런데 말을 너무 쉽게 한다. 경찰이 물리적 피해를 주는 것이 정당방위인지 아닌지, 법무장관이 결정하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김 장관이 "제가 결정하는 것은 아니지만..."이라며 답변을 얼버무리자, 박 의원은 "정당방위인지 아닌지는 법원에서 판단한다"며 "면책도 장관이 하나? 법무장관으로서 월권을 한 것이니, 사과하라"고 다그쳤다. 김 장관이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듯 "월권하지 않았다"고 반박해봤지만, 박 의원은 "법무장관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있느냐"고 쏘아붙이며 일축했다.

 

박 의원은 김 장관이 전날 포럼에서 "두세 번 소환해 보고 안 오면 체포하든지 조사 없이 기소해야 한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이를 검찰에 지시하는 중"이라고 말한 것도 문제삼았다. 당시 김 장관의 발언은 정연주 KBS 사장이나 문화방송 PD수첩 제작진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박 의원은 "법무장관은 검찰 사무에 대해 감독권을 가지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기소를 지시할 수 없다"며 "김 장관은 법무부 장관이지, 과거 공안검사가 아니다. 법무장관으로서 할 수있는 발언이 아니다"고 몰아붙였다.

 

같은 당의 우윤근 의원도 "독재.권위주의 시대로 가는 시그날(신호)은 법치를 내세운다는 것"이라며 "(시위가 많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처방없이 나타나는 결과만 보고 대응하는 것이 가장 치졸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주광덕 한나라당 의원도 김경한 장관에 대한 비판에 가세했다. 주 의원은 "김 장관의 발언은 경찰에게 (과잉진압을 해도 된다는) 오해를 줄 수 있고, 일반 시민들에게도 '집회 시위에 참석했을 때, 경찰이 과잉진압을 하는 것이 면책이 될 수 있겠구나'라는 공포와 불안감 갖게 할 여지가 있다"며 신중한 발언을 주문했다.

 

김경한 장관은 민주당 의원들의 질타에 대해서는 "법을 철저히 준수하자는 취지였다"는 정도로 해명에 급급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의 예상치 못한 지적에 대해서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았다면 시정하도록 하겠다", "혹시 오해가 있었다면 제 불찰이다"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법치주의 강조하는 장관이 법 떠나서 발언"

 

박지원 의원이나 박영선 의원은 보충질의까지 나서면서 김경한 장관에 대한 '융단폭격'을 가했다. 박지원 의원은 오세철 교수에 대한 법원의 영장 기각 사실을 언급하며, "장관은 법치주의를 강조하면서 정작 장관의 발언은 법을 떠나서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박영선 의원은 김 장관의 답변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에 대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것이지, 주가조작이 아니다"고 답변한 것을 문제삼으며, "대통령에게 점수 딸 일이지 모르지만, 법무장관이 이 사건을 봐주려고 가이드라인 제시한다는 의혹을 살 답변"이라고 지적했다.

 

김 장관이 "의혹을 일으킬 일 아니다. (주가조작과 미공개 정보 이용은) 구분을 해야 한다"고 반박했지만, 박영선 의원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서 주식을 사들였으면 주가조작 사건이다. 장관이 구분해야지, 누구한테 구분하라고 하느냐"며 "MB정부에서는 주가조작에 대해 민감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첫 질문에서 김 장관에게 다소 밀린 듯했던 이춘석 의원도 보충질의에 나서서 쐐기를 박았다. 특히 이 의원은 그동안 김 장관이 '신 공안정국'을 조성하며 쏟아냈던 발언을 모두 열거한 뒤,  "모두 국민들을 협박하는 내용"이라면서 "면책특권 발언 또한 이러한 발언들의 연장선상이며, 국민들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바라보는 장관의 인식을 극명하게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태그:#김경한 법무장관, #경찰폭력 면책 논란, #박지원 의원, #박영선 의원, #법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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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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