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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교길에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청소년들
 하교길에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청소년들
ⓒ 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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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북구 인수동에 사는 청소년들은 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학원에서 뒤쳐진 공부와 다음 학기를 준비하면서 ‘방학특강’에 열중일까? 아니면, 집에서 인터넷과 TV에만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와 학원 앞 PC방 앞에서 청소년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8월 7~8일 152번 종점 혜화여고 앞에서 학생 열다섯 명을 만났다. 먼저 ‘방과후학교’(학교에서 진행하는 보충 수업을 일컫는 말)에 다니는 수유중 3학년생인 박의진·김미은·신지영 학생과 마주쳤다. 이들의 일과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침 7시 30분경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등교를 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방과후학교에서 국어·영어·수학 등 주요 과목을 공부한다. 3과목 정도를 수업을 듣고,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친구들과 함께 자습을 하고 하교한다. 집에 돌아가면 인터넷으로 EBS 강의를 한두 시간 듣고, 나머지 시간은 인터넷을 하거나 TV를 본다. 책은 거의 읽지 않는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와 대화를 주로 한다. “사실은 아버지와 담을 쌓고 지내요.”

윤지민(수유중 1)과 최예빈(수유중 1)도 방과후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자율학습을 한 뒤 저녁 먹을 때쯤 집에 돌아오는 일과를 보낸다. 지민이는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한다고 했고, 예빈이는 케이블TV에서 방영하는 쇼프로나 만화, 드라마를 즐겨본다고 했다. 이 친구들도 아버지와는 대화다운 대화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머니와는 하루 일을 터놓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어머니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했다. 무슨 잔소리냐고 물었더니, “네 방 청소 좀 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 같은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세 번째 그룹은 수유중·화계중·수송중 2학년생들이었다. 정태진·김진명·안성민·조민기·김철민 학생도 ‘방과후학교’를 마치고 하교하는 길이었다. 이들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한다. 점심은 집에서 해결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식이다. 수업을 마친 뒤에는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PC방으로 달려간다. 가끔은 축구도 즐기지만 요즘 같은 더위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고 했다. 교과서 외에 책은 읽느냐고 했는데, 다들 안 읽는다고 했다. 민기만 한 달에 두 권 정도 소설책을 읽었다.

학원에 다니는 친구들도 만났다. 장지원(화계중 2), 최시원(수유중 2) 학생은 학원에서 ‘여름방학특강’을 수강하고 있다. 여름방학특강은 오후 1시 50분에 시작해 저녁 7시 10분에 끝나는데, 45분 수업에 5분 휴식으로 연이어 6~7교시를 진행한다. 나른한 여름날 오후에 쉴 틈도 별로 없이 수업을 받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방학을 즐길 시간은 있다. 학원 수업이 오후에 열리기 때문에 아침에는 오랜만에 오전 9~10시까지 늦잠을 즐긴다고 했다. 친구들과 PC방에 가거나 만화책을 보면서 숨을 돌린 뒤 점심을 먹고 학원으로 간다. 이들도 한 달에 한 권 정도 소설책을 본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수유중 2학년생 이현기·이철중·한진기를 만났다. 이 친구들은 학교에서 열리는 ‘방과후교실’을 다니지도 않고 학원에 가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들은 오전 9시쯤 느긋하게 일어나 두세 시간 TV를 보거나 친구들과 어울려 PC방에 간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는 더운 날씨 덕분에서 지낸다. 이때도 역시 TV나 컴퓨터를 끼고 산다고 했다.

한 친구는 인터넷에서 즐길 수 있는 플래시 게임을 만드는 일을 즐긴다고 했고, 현기는 이틀에 한 권씩 책을 읽는 독서광이었다. 현기네 부모님을 맞벌이를 하셔서 일찍 집에서 나가는데 틈틈이 전화를 걸어 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한다고 한다. 그래도 대화다운 대화는 굶주려 있는 눈치다. 공부는 언제 하느냐고? “30분 정도 책을 들여다볼 때도 있지만, 공부는 거의 하지 않아요.”

열심히 공부를 하지만 책을 읽지 않는 청소년들. 우리 동네 청소년들의 하루살이 모습이다. 게다가 부모 특히 아버지와는 눈빛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않고 살고 있었다. 교육에 관해서도 “공부 잘하라”는 충고를 넘어선 대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틈으로 학원과 컴퓨터, TV 따위가 들어와 청소년들의 시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학원은 지식을 전달할 뿐이고, 컴퓨터와 TV는 말초적인 자극만을 전달한다. 길거리에 만나 짧게 이야기한 우리 동네 청소년들의 뒷모습은 방학인데도 폐기 없이 지쳐보였다. 무엇보다 대화를 나누지 못해 같이 살면서도 혼자 사는 것 같은 고독을 어린나이부터 경험하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태그:#청소년, #방학,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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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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