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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6일 <오마이뉴스>에 실린 내 기사 '서울 봉헌하려던 대통령, 제네바 보고 배워라'를 보고 다음날 한 독자가 '제보'라는 머리말을 달아 내게 이메일을 보냈다.

 

자신을 "기독교인이자 서울 소재 기독교계 고등학교에 재직 중인 교사"로 소개한 제보자는 최근에 전자문서시스템으로 온 한 공문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그리고 "민감한 시기에 공정택 교육감이 특정 종교행사에 가고, 그걸 교육청이 운영하는 전자문서시스템을 통해서 홍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이를 지적해달라고 부탁했다.

 

제보자가 보내준 공문서를 꼼꼼히 들여다보면서, 관련 단체와 인사들에 대한 수소문에 들어갔다. 서울시교육청과 공문서를 발송한 Y정보산업고등학교에도 전화를 걸어 몇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부족한 부분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주간 <교육희망>의 윤근혁기자가 모두 채워주었다.

 

그렇게 해서 지금 전 언론에서 논란이 된  <공정택 교육감 부부, 교장들과 평일 기도회> 기사가 나오게 됐다.  

 

공정택 기도회, 특종 쓰기까지

 

그리고 공정택 교육감을 둘러싼 보수 기독교계의 움직임, 학교와 종교를 둘러싼 제반 문제들도 다시 검토해 보았다. 특히 교육에서의 종교 문제는 지난 2004년 강의석군 학내 종교자유를 위한 싸움 이후 나의 주된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세속화를 부정하고 신정통치를 꿈꾸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움직임은 전방위적이다. 특히 교육 분야는 전통적으로 매우 공을 들여온 분야다.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종교의식을 주입시키는 것은 어른들을 회개시키는 것보다 매우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강의석군의 싸움은 보수 기독교인들 입장에서 보면 큰 '환란'이었다. 이들은 학내 종교자유 허용 주장을 일관되게 종교사학에 대한 탄압, 사학의 종교 자유를 짓밟는 것으로 규정한다.

 

지난 2006년 이와 관련한 해프닝이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에서 학내 종교 자유를 어느 정도 보장한 종교교육 관련 지침을 내려보냈는데, 한기총 등이 "종교사학 말살 의도"라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결국 서울시교육청은 "실무자의 착오"였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공 교육감의 악효과는 딱 하나, '주일예배에 지장'?

 

한기총·한국기독교학교연맹 등은 사학법 재개정 문제에서 이미 실력을 보여줬듯이 종교사학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온갖 수단을 동원해 싸운다. 그런 그들이 교육감과 교육청을 구워삶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겠는가. 이들은 대부분 지지선언도 아끼지 않으며 공정택 후보의 당선을 고대했다.

 

당선이 확정된 다음날(7월 31일) <국민일보>는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 미션스쿨, 학생들 신앙 교육에 탄력'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국민일보>는 공 교육감 당선이 미션스쿨 입장에서 여러 모로 반길 일이긴 한데, 딱 한 가지는 우려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학생들 경쟁이 너무 치열해지면 주일예배 출석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서울교육발전을 위한 기도회'는 당선축하 기도회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기도회 순서에도 격려사와 축사가 있는 게 아닌가.

 

이 기도회가 열렸던 신일교회의 이광선 목사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공정택 후보 지지 선언을 했던 인물이며, 최근에는 이 기도회의 주최단체였던 '서울교육발전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런데 '서울교육발전위원회'라는 명칭부터가 기만적이다. 일단 서울시교육청 자문기구인 '서울교육발전협의회'하고 유사 명칭이라는 문제가 있다. 기독교인들과 기독교 학교 관계자들의 모임이 분명한데도 공적 성격의 위원회 냄새를 풍기는 명칭을 쓴 것이다.

 

그리고 이 명칭은 학내 종교자유를 꽁꽁 묶어두고 기독교 사학들의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모임의 명칭으로는 부적절하다. '서울기독교교육발전위원회'라면 또 모를까.

 

학교장의 거짓말과 교육청의 변명

 

한편, 이 기도회 공문을 보낸 Y정보산업고 박아무개 교장은 교육청 전자문서시스템 사용과 관련해 이를 직원의 실수 탓으로 돌렸다. 그러나 직원에게 우편으로 공문을 보내도록 지시했는데, 직원이 실수로 그것도 두번씩이나 전자문서시스템의 전자우편(업무연락)으로 보냈다는 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전자문서시스템으로 업무연락을 보내려면 관리자의 결재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결재해서 발송한 문서를 부하 직원의 실수로 돌리다니. 이런 뻔뻔한 교장이 어디 있나? 내가 그 학교 행정실에 직접 전화를 해서 확인했을 때, 그 담당자도 분명히 교장이 시킨 일이라고 답변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의 해명도 구차한 변명으로 들린다. 공휴일 불교 연등행사에 참석한 것과 평일 낮 특정 목적의 기도회에 참석한 것이 비교가 되는 이야기인가.그리고 '서울교육발전을 위한 행사'였기에 참석한 것으로 생각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공정택 교육감이 생각하는 서울교육발전은 학내 종교자유를 억압하고 기독교 사학의 이해를 증진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인가.

 

이 건을 두고 굳이 기독교를 비판할 생각은 없다. 문제의 당사자인 공정택 교육감과 보수 기독교인들 모두 제발 '공'과 '사' 만이라도 구분해주길 바라는 소박한 마음뿐이다.

 

이 참에 교육과 종교 사이의 올바른 관계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 '공교육은 선교의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학생들에게 종교를 강요해선 안 된다'는 원칙은 지켜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최광은 기자는 사회당 대표입니다.


태그:#공정택, #종교 편향 논란, #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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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정치학을 가르치고 비교정치, 한국정치 등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는 연세대학교 복지국가연구센터에 적을 두고 있다. 에식스 대학(University of Essex, UK)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두에게 기본소득을>(박종철출판사, 2011) 저자이고,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asic Income Earth Network) 평생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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