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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내내 더위에 뒤척이며 몸 가까이에서 멀리 하던 이불을 이즈음 새벽녘엔 슬며시 당겨 몸에 덮을 때입니다. 잠들 무렵에는 조금 덥게 느껴지다 새벽녘에는 제법 선선한 느낌에 이불에 몸을 묻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우리 생활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이불. 철마다 그 두께를 달리 합니다. 겨우내 같이 하는 이불은 제법 두툼한 것 그리고 여름에는 얇은 이불이 함께 합니다. 떼놓을 수 없는 이불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장 한 편에 쌓아놓고 제 몫이 필요한 계절에만 내려와 우리와 함께 밤을 지새웁니다.

삶에서 뗄 수 없는 이불은 그 무게나 부피가 만만치 않아 빨아야 할 때는 큰 맘을 먹어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물론 대형 세탁기가 등장해 여름 이불 정도는 쉽게 세탁기의 힘을 빌려 깔끔하게 유지한다고 하지만 두툼한 겨울 이불은 아직은 기계의 편리함에 의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가정에서도 그려려니와 특히나 혼자서 살아가야 하시는 노인분들은 이불 빨래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몇 년씩 계속해서 제철에만 사용한 후엔 그대로 이불장에서 묵힐 수 밖에 없답니다. 

큼지막한 빨래통에서는 묵은때가 차츰 벗겨지고 있습니다.
 큼지막한 빨래통에서는 묵은때가 차츰 벗겨지고 있습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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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봉사활동을 하는 거야? 즐거운 놀이를 하는 거야?

지난 8월 30일 오후 제법 따가운 여름해가 마지막 여름 무더위를 자랑하는 가운데 경기도 시흥시 '대야종합사회복지관' 앞마당에는 때 아닌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꽃은 '이불꽃'입니다. 꽃은 이 뿐 아닙니다. 웃음꽃도 활짝 피어나고 있습니다. 커다란 소방호스의 노즐을 조절하면서 물통에 뭔가를 넣고는 발로 짓이기며 신이 나는 듯 십수명의 남자들과 옆에서 거들고 있는 두 분의 여성들 얼굴에서 피어나는 웃음꽃입니다.

커다란 물통에 넣어진 채 남성들의 힘찬 맨발짓에 짓이겨(?)지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이불빨래입니다. 제법 두툼한 이불에서부터 얇은 이불까지 물통에서 한참 묵은 때를 벗고 있는 중입니다. 빨래통 안에서의 힘찬 발길질과 함께.

한 편에선 젊은 남성들의 팔뚝에 힘줄이 돋아나며 젊은 기운들을 한참 쏟아내고 있습니다. 두 명이 한 조가 되어 묵은 때가 벗겨진 이불의 물기를 짜내는 것입니다.

물은 소방호스를 이용했답니다.
 물은 소방호스를 이용했답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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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수기가 있다고는 하지만 두꺼운 이불이 한껏 물기를 머금고 있다면 탈수기가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고 파업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탈수기에 넣기 전엔 어느정도 물기를 짜내야 합니다.

행사는 (주)삼천리 서부지역본부 안전관리1팀에 속해있는 직원 14명이 토요일을 맞아 봉사활동에 나선 것입니다.

명칭은 '삼천리 봉사단'입니다. 이날 웃음꽃과 이불꽃이 피어난 것은 이들 봉사단원들이 행한 '빨래데이'행사 때문입니다.

'빨래데이'는 이들 팀원들이 스스로 작명한 이름이기도 합니다.

'빨래데이'는 이 팀이 하고 있는 봉사활동의 하나로 지난 2006년부터 3년째 이어져 내려오는 봉사활동입니다.

빨래데이 행사는 해마다 여름과 겨울 두번씩 치른답니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이불빨래를 이들이 나서서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의 경우 반지하 주거 형태가 많은데 눅눅한 환경 때문에 이불에 곰팡이가 스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건강에 유념하셔야 하시는 이분들에게는 큰 골칫거리이지요. 더구나 눅눅한 이불을 덮고 지내는 잠자리가 상큼한 밤을 가져다 주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눅눅한 이불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들 봉사팀은 일부러 시간을 내 어르신들의 묵은 애로를 해소해주는 것이랍니다.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경우 밤낮으로 이불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데도 이불의 위생상태는 형편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현실"이라며 대야종합사회복지관 한 복지사가 현장의 목소리를 말합니다.

각자가 맡은일을 하느랴 구슬땀을 흘리면서 여념이 없습니다. 힘이 든듯 막걸리 한잔씩을 걸쳐가면서 말입니다.
 각자가 맡은일을 하느랴 구슬땀을 흘리면서 여념이 없습니다. 힘이 든듯 막걸리 한잔씩을 걸쳐가면서 말입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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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아도 빨아도 나오는 묵은때.... 발짓은 더욱 힘이 들어가고

마당에 쌓여 있는 이불은 300채가 넘습니다. 지난 며칠간 대야사회복지관 측에서 독거노인분들에게 행사내용을 미리 알리고 이불을 수거해 놓은 것입니다. 이불은 이날 봉사팀의 노력으로 묵은 때를 벗고 서너시간 여름 햇볕에 보송보송하게 말려진 후 다시 노인분들에게 보내지는 것입니다.

이불을 빨고 짜고 널고 있는 이들 봉사자들에게 쉬는날 이렇게 나와서 힘든 일을 하는데 짜증나지는 않느냐고 묻자 한 자원봉사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우리가 하는 봉사활동중 가장 즐겁게 하는게 빨래데이 행사래요. 얼마나 재미있는데요. 기자님도 바지 걷고 이렇게 한번 밟아 보실래요!"

한껏 신이 나 있는 듯 큼지막한 물통 안에서 그의 발짓이 조금은 과장되게 율동을 맞춥니다. 그의 힘찬 발짓에 이불의 묵은 때가 보기에도 시원하게 쏙쏙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빨래들이 줄에서 보송보송하게 말려지고 있습니다.
 빨래들이 줄에서 보송보송하게 말려지고 있습니다.
ⓒ 추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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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 때가 벗겨지고 물기를 짜낸 이불은 한채씩 복지관 마당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줄에 차례대로 널리고 있습니다. 제법 넓직한 복지관 앞마당에는 이불꽃이 한송이씩 피어나고 있는 것이지요.

보기에도 아름다운 '이불꽃'입니다. 몇 년씩 각종 때를 입은 채 제 역할만 해야만 했던 이불도 기분이 무척이나 좋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햇볕에 몸을 내맡긴 이불들이 바람에 몸을 맡긴 채 기분이 좋은 듯 가볍게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대야사회종합복지관, #삼천리봉사단, #이불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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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는 굴러가는게 아니라 뛰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물론 화물칸도 없을 수 있습니다. <신문고 뉴스> 편집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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