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세암 미역국입니다.
▲ 오세암 미역국 오세암 미역국입니다.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8월 23일 저녁, 절집 방 한 칸에는 50명이 모여들었습니다. 3평 남짓한 방에서 50명이 잠을 자야 합니다. 물론 다리조차 펼 수 없었지요. 생각하니 끔찍한 일이지만, 그나마 우리 일행은 비를 막을 방이라도 얻었으니 행운입니다.

밤 10시, 적막해야 할 설악의 산중 절집은 술렁였습니다. 관음전에서 들리는 스님의 독경소리, 계곡의 물소리, 그리고 빗소리에 설악의 밤이 깊어갑니다. 하지만 늦은 시간에도 손전등을 들고 오세암으로 몰려드는 길손들도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절집 처마 밑에서 밤을 지새우려는 중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동자전은 머리 조아리며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연꽃 위에 앉아 있는 5세의 동자는 길손의 목마름을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동자상
▲ 동자상 동자상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눈망울 총총한 동자, 관음보살 가피가 흐를까?

백담사 부속 암자인 오세암, 오세암의 주위 봉우리는 연꽃잎을 이뤘다 하지요. 하지만 이 절집에는 애틋한 전설이 흐르고 있지요.

4살의 어린아이가 겨울 동안 혼자 남아 관세음보살의 가피로 살아남아 5살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한 편의 동화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동자전에는 동자를 위로하는 초콜릿과 과자, 알사탕이 상단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상단을 둘러싸고 눈망울이 총총한 동자들이 서 있지요. 이날 밤, 깊은 산 심산유곡에는 관세음보살 외침이 하늘을 수놓습니다.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는 절집, 오세암. 한때 오세암은 관음암이었다 합니다. 조선초기까지 명맥을 이어왔던 이 작은 절집은 생육신 김시습의 출가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세암 절집
▲ 내설악 오세암 절집 오세암 절집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절집 계곡물에 냉수마찰 정수리가 번쩍

오세암 절집에서 보는 별은 참으로 아름답다지요. 하지만 산중에 내리는 비 때문에 별을 헤지 못함이 못내 아쉽습니다. 배낭을 베개삼아 쭈그리고 앉아 살포시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새벽 3시 50분, 스님의 목탁소리가 들려옵니다. 산중 절집의 새벽이 부시시 깨어납니다.

설악의 아침은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절집에 비치해 놓은 푸른색 고무 슬리퍼를 신고 더듬더듬 계곡으로 내려갔습니다. 비누가 있을까, 샴푸가 있을까, 그저 흐르는 계곡물에 머리를 감고 발도 씻어 봅니다. 절집 앞에 흐르는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차갑더군요. 새벽 녘 냉수마찰은 정수리를 번쩍하게 하더군요.

만약 호텔이나 집에서 세수를 했더라면 물 아까운 줄도 몰랐을 게고,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세안제는 물론 갖가지 향기 나는 것으로 온몸을 치장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나 자신 꽤나 지구를 오염 시킨 것 같군요.

관세음보살상
▲ 관세음보살상 관세음보살상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새벽 4시, 관음전에서는 새벽 예불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스님의 독경소리가 법당 뒤로 서 있는 관음봉과 동자봉에 메아리칩니다. 절집 마당에 서서 두 손을 모았습니다.

언제였던가요. 내 어머님도 그러하셨습니다. 초사흘만 되면 장독대에 시루떡을 해 놓고 촛불을 켜셨습니다. 어머님은 누구를 위해 어떤 기도를 했을까요? 어쩌면 내 모태 신앙은 토속신앙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굴러가는 돌에 의지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하늘에 떠가는 구름에 의지하며, 파도치는 바다를 믿는 그런 토속신앙 말입니다.

동자승 약수
▲ 동자승 약수 동자승 약수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그때 나는 그런 어머니가 무척 싫었습니다. '청승맞다'고 화를 내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는 인류 만물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 의지를 했던 것뿐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절집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있습니다.

한 끼니의 소중함 깨달았습니다.
▲ 아침공양 한 끼니의 소중함 깨달았습니다.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아침공양 줄
▲ 아침공양 줄 아침공양 줄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새벽 6시, 드디어 공양이 시작됩니다. 비를 맞으며 줄을 섰습니다. 아침 한 끼니가 이렇게 소중한지 몰랐습니다. 줄은 300m 정도 됐을까요. 절집 공양이라야 뭐 밥 두 숟가락 정도에 미역국, 그리고 국사발에 오이 무침 3조각이 전부입니다. 젓가락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서서 후룩후룩 떠먹으니 5분 만에 아침공양 끝입니다. 그러나 그 맛은 진국이었습니다.

알록달록 커피
▲ 알록달록 커피 잔 알록달록 커피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절집 한켠에 마련된 커피는 새우잠을 잤던 길손들의 스트레스를 녹여 주었습니다. 더욱이 커피를 담은 컵은 알록달록 했습니다. 마치 연꽃처럼 석가의 자비가 흐르는 것 같더군요. 산중에서 마시는 아침 커피는 눈물 나도록 달짝지근했습니다.

점안식 준비하는 스님
▲ 점안식 준비하는 스님 점안식 준비하는 스님
ⓒ 김강임

관련사진보기


오장육부 가벼움 안고 봉정암으로

좀 덜 먹고, 덜 자고, 덜 소유했던 24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무심했던 하루였습니다. 그랬더니 내 오장육부는 조금은 가벼워지더군요. 새벽 6시 30분, 우리는 오세암의 공룡릉과 관음봉, 동자봉을 뒤로 하고 다시 산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다음 기사는 <다람쥐와 함께 오른 봉정암 길>입니다.



태그:#오세암, #내설악, #절집에서 하루묵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