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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회원들이 28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국민청원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과정에서 발생한 경찰의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해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회원들이 28일 오전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국민청원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과정에서 발생한 경찰의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해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을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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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전 9시30분경, 국회 본청 앞에서는 어청수 경찰청장과 관련된 두 가지 풍경이 묘한 대조를 이뤘다.

[장면1] 굳은 표정의 한나라당, 불교계 마음 돌릴 길 없어 

이날부터 천안에서 열리는 '의원연찬회' 참석을 위해 150여 명의 소속 의원들과 함께 전세버스에 오르던 한나라당 지도부의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다.

전날(27일) 광화문 거리로 쏟아져나온 20여만 명의 '성난 불심'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지만, '반면석불(反面石佛; 돌아앉은 돌부처)'이 돼 버린 불교계의 마음을 되돌릴 묘책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계의 여권 지지층까지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더 했다.

여당 내에서는 불교계가 요구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직접 사과가 어렵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박희태 대표를 중심으로 '불교 차별' 갈등의 근원지인 어청수 경찰청장을 '희생양'으로 삼자는 의견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잘못한 게 있어야 경질을 할 것 아니냐"며 이 마저도 일축해버렸다.

[장면2] 야당의원들과 시민단체는 '어 청장 파면 촉구 청원서' 제출

비슷한 시각, 전세버스로부터 채 5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국회 본청 계단 위에서는 "당신이 불법이다, 어청수를 파면하라"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야당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주관한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 촉구 기자회견'이 열린 것. 늦여름 따가운 햇살 아래였지만 50여 명의 참석자들 표정은 비장했다. 현역의원 신분으로 경찰에 연행을 당한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나 경찰과 폭행 시비를 낳았던 안민석 민주당 의원은 더욱 그랬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에는 "촛불집회 진압과정에서 벌어진 경찰의 법률 위반 및 폭력,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어청수 경찰청장 해임결의안'을 발의하고, 이 대통령에게 어 청장의 파면을 촉구하는 공동행동에 나서달라"는 취지의 '어청수 경찰청장 파면에 관한 청원서'가 국회에 제출됐다.

무려 11만명이 넘는 시민이 이 청원서에 서명했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의원 14명이 청원을 '소개'했다. 성유보 범국민행동 집행위원장은 "11만명이라는 숫자는 실제 100만명, 1000만명일 수 있고, 온 국민의 다수 의견이라고 생각한다"며 "법을 지키지 않고 제멋대로 하고 있는 어청수 청장은 독재의 상징이기 때문에 파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경순 민가협 전 상임의장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여기에 있다면, 다음에 국회의원 또 하고 싶거든 국민들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며 "대통령 옆에 간신배밖에 없다"고 일갈했다. 앞서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산중 스님과 불자들까지 거리로 나와 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는 어청수 경찰청장의 파면 요구에 답해야 한다"며 어 청장의 사퇴를 요구했다.

27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주최로 열린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에 참가한 승려와 신도들이 태평로를 행진하고 있다.
 27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주최로 열린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에 참가한 승려와 신도들이 태평로를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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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여성·시민단체에 종교계·정치권까지 "어청수 물러나라!"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퇴 여부가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촛불정국부터 시작된 어 청장에 대한 각계의 사퇴 요구는 청와대와 불교계의 갈등 국면을 맞으면서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어 청장은 촛불집회에 대한 과잉·폭력 진압에 이어 동생의 성매매 업소 운영 개입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인권단체는 물론 여성계로부터도 사퇴 압력을 받아왔다. 경찰청이 일선 경찰관들에게 '전통적인 정부 지지 세력을 복원하기 위한 방안을 수집하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이 드러나면서는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야권으로부터 줄곧 표적이 돼 왔다.

어 청장의 사진이 조용기 목사와 함께 '경찰 복음화 금식 대성회' 광고지에 실리고 경찰이 조계종 지관 스님을 불법검문하는 등 불교계와의 갈등이 끊이지 않자, 결국 여권 일각에서도 어 청장에 대한 문책론이 나왔다. 오래전부터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을 비판해 온 불교계가 어 청장의 파면을 정면으로 요구하고 있는 이상, 여권으로서는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다.

박희태 대표는 지난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어 청장이 특정 종교에 편향적인 자세가 있는 것 아니냐, 이런 상황을 수습하려면 어 청장에 대한 책임있는 조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왜 이런 일이 자꾸 벌어지느냐, 이게 나라에 충성하는 일도 아닌데 왜 쓸데 없는 일을 해 말썽을 피우느냐"고 불쾌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까지만해도 어 청장의 경질이 불교계와의 관계개선을 위한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이날 회의 내용은 김장실, 신재민 문화부 1, 2 차관에 의해 청와대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는 어청수 청장에 대한 경질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박희태 대표의 어 청장 경질 요구에 대해 "전혀 논의된 바도, 거론된 바도 없다"며 "왜 그런 얘기가 당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결국 박 대표는 27일 KBS 라디오에 출연, 어 청장 경질론에 대해 "내가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가 어려우니 이해해달라"며 한발 물러섰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나서서 불교계에 사과입장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경찰청장이 불교계를 방문해 사과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이 마저도 없던 일이 되면서 오히려 불교계의 반감만 부풀린 꼴이 됐다.

청와대의 어청수 감싸기 왜?

어청수 경찰청장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동 기동본부에서 열린 '경찰관 기동대 창설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어청수 경찰청장이 30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동 기동본부에서 열린 '경찰관 기동대 창설식'에서 격려사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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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 쇠고기 파동의 책임을 지워 청와대 2기 개각을 단행하면서도 어청수 청장을 남긴 것이나 불교계와 정치권의 경질 요구를 외면한 채 '옹고집'을 부리고 있는 배경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우선 어 청장은 이 대통령과의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 청장은 1992년 서울 강남서 정보과장 재직 시절 당시 민자당 비례대표 의원이던 이 대통령을 처음 만난 교분을 쌓았다. 당시 어 청장은 이 대통령에게 비례대표 대신 서울 종로와 같은 큰 지역구에 가서 정치를 하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실제 이 대통령이 종로 지역구 의원으로 출마할 당시 어 청장은 종로서 정보과장으로 옮겨와 이 대통령과 인연을 이어갔다. 지난 2000년 서울 은평경찰서장 시절에는 이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전 의원(서울 은평 을)과도 친분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후 이재오 의원과 깊은 인연을 맺었고, 이 의원은 대선 직후 차기 경찰청장 인선 과정에서 어 청장을 강하게 추천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결국 참여정부에서 3차례에 걸쳐 지방청장을 지내는 등 소위 '잘 나가던' 어 청장은 새 정부의 경찰청장으로까지 발탁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 측은 그의 인선 배경에 대해 "엄정한 법 집행과 불법 집회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강조해온 이명박 당선인의 지론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측은 이 대통령의 사과는 물론 어 청장에 대한 경질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한 채 "시간을 좀 갖고 지켜보자"며 불교계와의 냉각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불교계 역시 20여만 명이 참여한 범불교도대회를 통해 정부 측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보고, 추석 전까지는 추가조치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정부의 조치가 미흡할 경우 시민단체와 연대투쟁에 나서는 것은 물론, 지역에서부터 순차 집회를 열어 대정부 압박의 강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게다가 야권은 정기국회를 앞두고 이명박 정부의 종교적 편향성을 문제 삼아 공세를 한층 강화할 태세다. 당장 다음주부터 본격적인 상임위 활동이 시작되는 가운데, 행정안전위원회에서는 어청수 청장 사퇴 문제 등을 둘러싸고 여야간 격돌이 예상된다.

인권·시민단체는 물론 불교계와 정치권 등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는 어청수 청장의 운명이 향후 국정 방향을 가늠할 중요 변수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태그:#어청수 경찰청장, #촛불시위 폭력진압, #종교편향 논란, #이명박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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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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