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을 한달 여 앞둔 지난 7월 중순, 중국 정부는 다음과 같은 '파격적인' 발표를 했다.
"중국에서도 집회 및 시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물론 중국 헌법조항에는 명목상 '집회 및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건국 이래 지금까지 사실상 이 헌법조항은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던 중국정부가 이번 베이징 올림픽을 맞아 중국 내외에 '집회 및 시위의 자유'를 허용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 기간중에만 한시적으로 적용되는 '자유'다.
중국 정부는 이를 위해 베이징올림픽 기간동안 베이징 시내에 위치한 세 곳의 공원(르탄, 쭈위안, 스지 공원)을 집회시위 장소로 개방했다. 시위와 집회를 원하는 개인들과 단체는 관련 당국에 신청서를 작성, 제출한 뒤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허가를 받은 집회 및 시위 참가자들은 이 세 공원에서 '자유롭게' 시위를 벌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발표 이후 지금까지 베이징에서는 단 한건도 '허가된 집회 및 시위'가 열리지 않았다. 다시 말해 중국정부는 단 한건의 집회 및 시위 신청도 '허가'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외신을 비롯해 국제 여론은 사실상 '집회 및 저항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은 베이징 올림픽 기간중 중국정부가 발표한 '자유시위'를 직접 체험해 보기로 했다. 과연 중국정부가 약속한대로 법에 의거해 합법적인 집회시위 신청을 하면 '허가된 장소'에서 '허가받은 시위'를 할수 있는 것일까?
애초 '정치적' 목적을 띤 집회시위는 불허한다고 알려졌기에 비정치적인 주제를 가지고 외국인 시위(1인 시위) 신청을 해보기로 했다.
"시위 신청하러 왔는데요?"
지난 19일, 집회 허가를 받기 위해 베이징 차오양구에 있는 베이징 출입국관리사무소를 찾았다. 내국인과 달리 외국인들은 소재지 파출소가 아닌 출입국 관리사무소에 집회 및 시위 신청을 해야 한다.
출입국관리사무소에 들어갔다. 그런데 '집회(시위)를 신청하려면 어디로 가라'는 안내판은 어디에도 없다. 무작정 2층에 올라가 안내 공안에게 물었다.
"시위를 신청하려고 하는데 어디에서 하나요?"
"뭐? 시위?"
공안 몇 명이 수군거리더니 한 번씩 다 쳐다본다. 어떤 공안은 창구 벽 때문에 잘 보이지 않는 듯 업무를 하다말고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 고개를 쑥 내밀어 얼굴을 확인한다.
잠시 후 중년의 남자 공안이 다가오더니 "무슨 일이시죠?"라고 묻는다.
"시위 신청을 하려고 왔어요. 어디에서 신청하나요?"
대답이 끝나자마자 줄 서있던 시민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쳐다본다. 시위 신청하는 것이 그렇게 신기한 일일까. 출입국관리사무소 내 시민들과 공안(경찰)들의 시선이 일제히 기자에게 집중되었다.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오르며 마치 동물원 원숭이라도 된 심정이다.
다행히 때마침 담당 공안이 왔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 후 다른 건물로 안내한다. 이동중 그는 "중화인민공화국 집회 시위법은 읽어보고 왔어요?"라고 묻는다.
"네? 집회 시위법이요? 아니요…."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다른 출입국 관리사무소 건물에 도착했다. 외국인들과 중국인들로 북적거리던 조금 전의 출입국 관리사무소와는 다르게 조용했다. 안내된 장소에는 다른 2명의 공안이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기자는 3명의 공안에 둘러싸여 '취조 아닌 취조'를 당했다.
담당 공안들은 우선 여권 제시를 요구했다. 여권을 꺼내자 1명의 공안이 재빨리 복사를 하러 간다. 이어 이름, 나이, 국적, 직업, 학교부터 시작해서 어디에 살고 있는지, 중국에 언제 들어왔고 언제 나갈 예정인지 등 이것저것 물어본다.
"도대체 무슨 시위를 할 예정이에요?"
"학기가 다 끝났는데 지금까지 뭐했습니까?"
"비자가 8월 30일까지라 그때까지 베이징에 남아 중국어 공부도 하고 올림픽 경기도 보고 있어요."
"여기에 혼자 왔나요?"
"네."
"여기를 어떻게 알고 온 겁니까?"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오는 걸요."
"아, 그나저나 도대체 무슨 시위를 할 예정이에요?"
"곰 보호에 관한 시위요."
(왜 '곰'이냐고? 그건 우리 취재팀이 정치적, 반중국 감정 하나 없는 주제를 고민하다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진지한 얼굴로 취조하던 공안들이 '곰 보호'란 말을 듣자마자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저는 '환경보호가'입니다. 원래부터 곰에 관심이 많았답니다."
최소 3명 이상이어야 시위할 수 있다?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곰 보호'를 강조하자 공안들도 방금전의 '폭소'를 거두고 다시 업무태도를 회복했다.
"1인 시위는 할 수 없어요. 최소 3명 이상이어야 합니다. 또한 시위자 중 중국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따로 시위 신청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중국인을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어 그는 "우선 오늘은 돌아가서 중화인민공화국 집회 시위법 규정을 읽어 보고 거기에 맞게 신청서를 작성하세요"라며 "그리고 나서 내일 시위 동행인 2명과 함께 다시 오세요"라고 말한다.
"시위신청서를 작성하고 동행인이 모아지면 시위가 가능한가요?"라고 묻자 질문 그는 "규정에 어긋나지 않다면 5일 이내에 시위 허가가 나옵니다"라고 답한다.
아쉽게도 우리 취재팀에는 시위 동행을 할 수 있는 '기자' 아닌 신분의 외국인이 없었다. 그리고 3명의 인원을 구성한다고 하더라도 '5일 이내'에 허가가 나온다니, 그때면 올림픽이 끝난 후다. 결국 취재는 여기까지만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중국 공안의 말대로 "중화인민공화국 집회 시위법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시위가 정말로 가능한 것일까?
지난 7월 23일부터 시위 전문 구역으로 개방했다던 베이징 내 3개의 공원 중 한군데인 '르탄공원'을 찾았다. '시위전문구역'이라는 말이 어색할 만큼 그곳은 너무나도 평화롭고 조용했다. 사정은 다른 두 곳의 공원도 비슷했다.
르탄공원 관계자는 "장애인 올림픽이 끝나는 9월 말까지 일시적으로 개방이 됐다"면서 "모든 사람이 마음대로 시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규정에 맞게 신청서를 작성하여 출입국 관리사무소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이곳에서 시위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올림픽 관례에 의거해서 시위전문구역을 개방하며 집회 시위의 자유를 보장한다던 중국. 하지만 실제로 '보장'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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