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태권도 80kg이상급 경기 결승전에서 맞붙은 한국의 차동민(왼쪽)과 그리스의 알렌산드로 니콜라이디스.

남자 태권도 80kg이상급 경기 결승전에서 맞붙은 한국의 차동민(왼쪽)과 그리스의 알렌산드로 니콜라이디스. ⓒ 송주민


4년 전 아테네에서는 문대성의 '뒤돌려차기' 한방에 실신한 상태로 경기를 마감했다. 4년 뒤 베이징에서는 한국의 '차세대 스타' 차동민을 넘지 못하고 코트에 주저앉았다. 그리스의 태권도 영웅 알렉산드로 니콜라이디스(29). 그에게 '태극마크'는 이처럼 연이은 악몽이었다.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에 출전한 베이징 올림픽, 그로서는 고국 그리스 아테네에서 당한 뼈아픈 패배를 설욕할 수 있는 사실상의 마지막 기회였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도 결국 한국의 애국가 소리를 들으며 마감해야 했다. 은빛 메달을 목에 건 채로 입 꼬리를 살짝 올린 그의 표정에는 아쉬운 감정이 가득 서려있었다.    

또 '태극 마크'에 좌절된 '금빛 발차기' 꿈

 알렌산드로 니콜라이디스(그리스)를 열과 성을 다해 응원하고 있는 그리스 관중의 모습

알렌산드로 니콜라이디스(그리스)를 열과 성을 다해 응원하고 있는 그리스 관중의 모습 ⓒ 송주민


23일 베이징 과학기술대학 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 올림픽 남자 태권도 80kg이상급 경기에 출전한 니콜라이디스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은메달, 유럽선수권 84kg이상급 1위에 빛나는 '파란 눈'의 태권도 강자답게 큰 무리 없이 결승전에 진출했다. 

경기장에 모인 그리스 응원단도 그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컸다. 폐막을 하루 앞둔 23일까지 '노골드'에 그친 그리스로서는 마지막 남은 희망이 니콜라이디스의 '발'이었다. 그리스 응원단은 '배수의 진'을 친 것과 같은 모습으로 열과 성을 다해 응원전을 이어갔다.

심지어 올림픽 보안 요원들의 제재를 물리치고 관중석 맨 앞쪽까지 뛰쳐나와 그의 이름을 부르짖기도 했다. 때문에 경기 내내 체육관은 "알렉스! 알렉스!(그리스 팬들이 니콜라이디스를 부르는 애칭)"란 구호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그에게 '태극 마크'는 또다시 좌절로 다가왔다. 결승에서 한국의 신예 차동민을 만난 그는 경기 내내 숨 막히는 접전을 벌였으나 결국 5대4로 석패했다. 경기 직후 차동민은 손을 번쩍 들고 환호성을 지른 뒤, 관중석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그 순간 니콜라이디스는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아래로 푹 숙였다.

표정 굳은 니콜리아디스... 분개한 그리스 관중들

 알렌산드로 니콜라이디스(그리스)를 열과 성을 다해 응원하고 있는 그리스 관중의 모습

알렌산드로 니콜라이디스(그리스)를 열과 성을 다해 응원하고 있는 그리스 관중의 모습 ⓒ 송주민


이날 경기 내내 상대방 선수에게 좋은 매너를 보여 관중들에게 큰 박수를 받았던 그였다. 니콜라이디스는 매 경기 후 상대 선수와 코치진에게 항상 먼저 손을 내밀며 예의를 표했다. 

경기를 마치고는 상대에게 포옹을 청하는 '훈훈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상대 선수가 경기 도중 쓰러졌을 때는 상대 코치와 의료진에게 제일 먼저 사인을 보내는 '페어플레이'의 모습도 자주 보여줬다. 

하지만 결승이 끝난 후의 니콜리아디스는 이런 여유를 잃었다. 경기 종료 직후, 차동민과 간단한 악수만을 나눈 그는 계속해서 고개를 좌우로 가로 저으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곧바로 표정은 굳어버렸고,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쉬움이 큰 나머지 평소의 침착함과 평정심을 잃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경기 내내 "알렉스"를 부르짖으며 그를 응원했던 그리스 관중들도 할 말을 잃었다.

일부 그리스인들은 그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듯 경기장 내로 물병을 던지며 분노를 표출했다. 심지어 한국 관중들 바로 앞에서 심한 야유를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이 과정에서 자신들을 만류하려는 중국 보안 요원들과 크고 작은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알렉스'를 향한 염원이 좌절된 것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아쉬움은 이처럼 컸다.

'알렉스'에 큰 박수 보낸 관중들    

10분 정도가 흐른 뒤, 진행된 시상식 행사에 나온 니콜리아디스는 다시 평정심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다시 체육관 코트로 들어온 그는 평소와 같이 차동민에게 먼저 악수를 청했고, 곧이어 가벼운 포옹을 했다. 관중석을 향해서도 환한 미소를 보내며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리스 응원단은 감정을 추스르고 그를 향해 큰 박수를 보냈다. '알렉스'를 이긴 차동민에게도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내며 그의 승리를 축하했다.

한국 응원단도 '태극기' 앞에서 두 번을 무릎 꿇은 니콜리아디스를 향해 거듭 손뼉을 치며 큰 격려의 함성을 보냈다.

 은메달을 목에 걸고 관중들을 향해 손을 높이 들어보이는 알렌산드로 니콜라이디스 선수

은메달을 목에 걸고 관중들을 향해 손을 높이 들어보이는 알렌산드로 니콜라이디스 선수 ⓒ 송주민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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