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근대5종 경기가 열린 베이징 올림픽스포츠센터 스타디움.

21일 근대5종 경기가 열린 베이징 올림픽스포츠센터 스타디움. ⓒ 김경년


근대 5종과 철인 3종의 차이는?

"택시를 타면 기사님이 제 외모를 보고 운동선수냐고 물어요. '근대 5종'이라고 대답하면 아~ 이러면서 아는 척을 하시다가 곧 '그 자전거랑 수영하고 달리기 하는 거?'라면서 철인3종 경기 이야기를 하시면 맥이 풀리죠. 전 근대 5종을 한다는 자부심이 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자존심이 상해요. 그래서 요새는 그냥 수영한다고 둘러대요."

베이징 올림픽 근대 5종 경기가 열리기 약 한 달 전. 근대 5종과 철인 3종을 혼동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히 근대 5종을 각인시키겠다는 남동훈(25·상무)의 의지는 강했다. 더불어 지난 아테네올림픽에서 21위로 부진해 이번엔 메달을 노리겠다는 이춘헌(28·대한주택공사)의 각오 또한 남달랐다.

그러나 이들의 꿈과 의지는 말들의 투레질에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21일 오후 5시 베이징 올림픽스포츠센터 스타디움. 2명의 한국 선수들은 5개의 종목 중 사격, 펜싱, 수영에서 생각보다 부진한 성적으로 승마와 크로스컨트리에서 만회를 노려야만 했다.

그러나 승마에서 말과 호흡을 맞추는데 실패했다. 먼저 출전했던 남동훈은 540점, 뒤이어 경기에 나선 이춘헌은 경기를 채 마치지도 못하고 84점만 기록하고 말았다. 이날 상위권 선수들의 승마 점수가 1100점 이상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 것이다.

말이 말을 듣지 않으면 말도 안되는 성적 나와

근대 5종의 각 종목들은 전쟁의 유산을 담고 있다. 전신을 공격할 수 있는 에페 방식으로 단 1점만 나면 승부가 갈리는 펜싱은 전투에서 단 한 번의 공격이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다는 점을 담았다. 크로스컨트리 또한 이번 대회에서는 관람과 중계 편의를 위해 트랙종목으로 바뀌었지만 이전 대회에는 코스를 공개하지 않고 달리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승부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종목이 바로 승마다. 전쟁에 참가하는 많은 병사들은 자신의 말을 가지고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다. 말이나 사람이나 서로 처음 보는 사이지만 무조건 달려야 한다.

이러한 점을 따온 승마이기 때문에 근대 5종 선수들은 추첨을 통해 배정된 말을 타고 정해진 코스를 달려야 한다. 사전에 경기에 쓰일 말이 공개되고 시합 전에 선수들이 잠깐 호흡을 맞출 수 있다지만 언제 말이 기수를 떨어트리거나 장애물 넘기를 거부할지 모른다.

그런 불확실성의 악몽이 한국 대표팀 선수들을 덮친 것이다.

 경기 중 낙마한 뒤 다시 말에 오르고 있는 한 선수. 근대5종에서는 처음 보는 말과 시합을 하는 것이므로 호흡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기 중 낙마한 뒤 다시 말에 오르고 있는 한 선수. 근대5종에서는 처음 보는 말과 시합을 하는 것이므로 호흡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박상익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말의 투레질이 심했다. 남동훈은 말을 달래며 차근차근 경기를 풀어나가려 했지만 계속되는 말의 거부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말이 멈추면 다시 돌아가서 뛰느라 많은 시간을 지체할 수밖에 없었다.

남동훈은 끊임없이 자신의 말을 독려하고 채찍질까지 했다. 남동훈의 채찍 소리엔 다급함이 묻어났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경기장의 많은 관중들은 아쉬운 상황이 나올 때마다 박수로 격려했지만 그 박수소리가 말들에게까진 전해지지 못했다.

첫번째로 나간 남동훈이 부진했기 때문에 이춘헌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하지만 어렵사리 경기를 마무리한 남동훈의 성적이 더 나을 줄은 몰랐다. 이춘헌이 탄 말은 이미 앞 경기에서 다쳤기 때문에 신경이 매우 예민한 상태였다.

번번이 뛰어넘기를 거부했고 이춘헌은 낙마 위기에 몰리기까지 했다. 결국 이춘헌은 시간초과로 경기를 마무리하지 못했다. 두 선수가 품었던 메달의 꿈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결국 이춘헌은 최종합계 4316점으로 33위. 육상에서 1위를 기록하며 분전한 남동훈은 4968점으로 28위에 그치고 말았다. 메달을 기대하던 한국으로서는 너무나도 아쉬운 결과였다.

아쉬운 성적, 그러나 미래를 향해 도전한다

경기가 끝난 후 이춘헌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메달에 대한 부담과 욕심이 흐름을 망쳤다"고 자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춘헌과 남동훈의 미래는 밝다.

근대 5종 대표팀 강경효 감독은 대회 전 인터뷰에서 "근대 5종 종목은 여러 변수가 많기 때문에 시합 당일의 여러 조건들이 중요하다"며 "이춘헌은 이미 메달을 딸 실력이며 남동훈 또한 앞으로의 미래가 밝다"며 제자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었다.

이들은 2008년의 아쉬운 추억을 뒤로 하고 곧 다가오는 아시안게임을 대비해야 한다. 같은 날 2개의 금메달을 획득한 태권도에 비해서 언론의 관심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했다. 앞으로도 근대 5종과 철인 3종의 혼돈 속에서 살아가야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이기에 그들의 꿈은 여전히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베이징 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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