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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밥거리
▲ 마다가스카르 무릉다바 바오밥거리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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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 나는 35살의 나이에 만 5년 동안 해오던 직장생활을 그만두었다.

당시 나는 비교적 잘나가던 이동통신관련 벤처기업의 선임연구원이었다. 휴대폰 안에 들어가는 통화제어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테스트 하는 것이 나의 업무였다. 업무도 적성에 맞는 편이었고, 연봉도 괜찮은 편이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직장생활 자체만 놓고 보자면 그만둘 아무런 이유가 없는 상태였다.

회사생활을 접은 표면적인 이유는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였다. 회사를 그만둔다고 하자 동료들은 하나같이 의아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그 안에는 두가지 질문이 담겨있었다. '잘 다니던 회사를 왜 그만두고 여행을 가냐'와 '여행 다녀와서 어떻게 먹고 살 거냐' 라는 것이다.

여행 다녀와서 어떻게 먹고 살 거냐?

첫번째 질문이 다소 철학적이라면 두번째 질문은 보다 실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철학적인 물음에 대한 답은 항상 쉽지가 않다.

회사를 그만둔 이유에는 단순히 '여행' 이외에 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아니 여행은 하나의 탈출구였고, 어찌보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더 이상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당시 나의 생활은 아침에 출근해서 주어진 일들을 처리하고, 퇴근 후에는 술집을 전전하는 형태였다. 떡이 되도록 술을 퍼마셔도 다음날 아침 일찍 출근해서 나에게 맡겨진 업무를 처리하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그것은 나의 업무능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5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일처리에 필요한 '노하우'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문제를 피해가고, 어떻게 하면 복잡한 일을 떠맡지 않을 수 있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데, 5년간 같은 일을 하다보면 온갖 종류의 '잔머리'가 생기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익숙해지다 보니까 '익숙한 것에 대한 거부반응'이 생겼다. 계속 직장생활을 할 경우에 1년 후, 5년 후의 나의 모습이 눈에 훤히 떠올랐다. 좋고 나쁘고에 관계없이, 너무 뻔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술이 덜 깬 채로 사무실에 앉아있던 아침이면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하는 질문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때면 안정적이지만 단조로운 곳을 떠나서, 모든 것이 낯선 장소로 나를 던져넣고 싶었다. 나는 조용한 사무실에서의 틀에 박힌 생활보다는 동떨어진 여행지에서 아드레날린을 발산하는 삶을 더 동경했던 것이다.

이식쿨 호수
▲ 키르키즈스탄 이식쿨 호수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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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다시는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일상적인 생활에 파묻혀갈수록,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욕구는 더 강해졌다. 구체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꿈꾸어왔던 여행지, 중앙아시아에 가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몇 개월 동안 중앙아시아로 훌쩍 떠나서 광활한 평원과 사막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휴대폰도 없고 메신저도 없고 이메일도 안 되는 곳에서, 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외롭고 쓸쓸하고 위험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인간은 외로운 존재 아닌가. 중앙아시아가 얼마나 위험할지는 모르지만, 술 퍼마시고 돌아다니는 서울의 밤거리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우스갯소리로 이런 얘기를 했다. 외국에서 여행 중에 봉변당할 가능성과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 당할 가능성이 비슷하다고. 위험이야 상대적인 것이고, 혼자서 먼길을 가려면 그 정도는 각오해야만 한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라고 했던가.

언제 떠날 것인가 하는 것도 문제였다. 2005년도에 나는 정확하게 '꺾어진 70'이 되는 때였고, 35살의 여름은 떠나기에 적당한 시기라고 느꼈다. 다시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르고, 남겨두고 떠나는 많은 것들이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그 때는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밀어붙였다. 내가 뒤에 남겨둔 것들이 언젠가는 짐이 돼서 나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청구서가 뒤늦게 날아드는 것 처럼.

그리고 나는 그 때 이후로 다시는 직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냐' 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지는 못한다. 운이 좋아서 두 편의 여행서적 <실크로드의 땅, 중앙아시아의 평원에서>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를 출간했고 8월에 기업에서 후원을 받아서 또다른 여행을 떠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은 회사를 그만두던 그 시절을 생각해본다. 계속 회사생활을 했다면 지금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할때도 있다. 진급도 했을테고 연봉도 그에 맞게 올랐을 것이다. 대신에 나는 점점 현실에 파묻히면서 여행과 모험에 대한 꿈도 작아졌을 것이다.

운동부족과 음주습관으로 배도 나왔을 거고, 가끔씩은 술마신 밤에 거울을 바라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 때 떠나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시간은 남아있다고. 여행의 꿈을 이룰 기회도 아직은 지나가지 않았다고. 불혹의 나이를 넘겨서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분명 있을테니까. 어쩌면 많을테니까.

2권의 여행서를 내고... 또 다시 여행길에 오르다

나의 두번째 여행서적
▲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나의 두번째 여행서적
ⓒ 솔지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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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은 술자리에서 가끔 '여행하면서 먹고사는 방법'을 묻기도 한다. 이건 그야말로 실용적인 질문이다.

자신의 여행 경험을 돈벌이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그것을 글과 사진의 형태로 타인에게 판매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여름철이면 쏟아지는 수많은 여행서적들이 있다. 그 위에 자신의 책을 한권 더 얹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자신의 원고를 홍보할 수 있는 상세한 기획안을 만들어서 많은 출판사와 접촉해야 한다. 개중에는 냉정하게 거절하는 곳도 있을테고 구체적인 논의를 해보자고 제안하는 곳도 있을 것이다.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운이 따를수도 있다. 단행본이 아니라도 국내의 많은 여행잡지나 월간지에 글과 사진을 기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 어느쪽이건 자신의 경험을 타인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마케팅'하는 것이 필요하다.

남들과는 다른 독특한 여행계획을 세워서 경비를 후원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 경우에도 자세한 기획안이 필요하다.

여행의 콘셉트를 세우고 거기에 맞는 기업체와 접촉해서 자신의 여행계획, 후원효과 등을 알려나간다면 많은 곳에서 성의있게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다.

여행하면서 먹고사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니지만, 찾아보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이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서 그 길은 얼마든지 넓어질 수 있다. 가슴 뛰는 여행과 낯선 장소에 대한 도전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사무실에서 전화나 인터넷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세상의 모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왜 그 때 떠나지 못했을까'라고 후회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태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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