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최고의 멜로 영화감독으로 손꼽히는 허진호 감독의 데뷔 10주년을 기념해 씨너스 이수가 마련한 '허진호 감독 특별전-십년지애>가 꾸준히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AT9 미니씨어터'(예술·독립영화 중심의 월례 프로그램)의 8월 프로그램이다.

 

한국멜로영화에서 큰 획을 그은 허 감독의 데뷔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부터 <봄날은 간다>, <외출>, <행복>까지 장편 4작품과 단편 <따로 또 같이>와 <나의 내 남자친구>까지 10년간의 작품 세계를 돌아보며 재조명한다. 8층 '8월의 초원 사진관' 전시회에선 허진호 감독의 작품들을 꼼꼼히 분석한 풍성한 볼거리로 또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허진호 감독의 대표작이자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란 명대사를 남긴 영화 <봄날은 간다>가 지난 13일 상영 후 '상우' 역의 유지태와 허진호 감독이 함께 씨네토크(GV)를 가졌다.

 

여기 그 진솔한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닮은듯 다른 두 사람 <봄날은 간다>를 보다보면 배우 유지태의 모습에서 허진호 감독의 느낌이 뭍어나는데 실제로도 둘은 닮았단 소릴 많이 들었다고

▲ 닮은듯 다른 두 사람 <봄날은 간다>를 보다보면 배우 유지태의 모습에서 허진호 감독의 느낌이 뭍어나는데 실제로도 둘은 닮았단 소릴 많이 들었다고 ⓒ 박병우

           

-영화를 보고 나니 두분이 많이 닮으신거 같다.평소에도 그런 소리 많이 들으시는 편인가?

유지태 : "실제로도 그런 얘길 많이 듣는다. 감독님하곤 워낙 친하고 잘 맞아서 평상시에도 상의할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연락해서 상담하고 그러는 편이다."

 

허진호 : "닮았단 얘기 들으면 기분이 좋다. 촬영 전에도 김성수 감독이 둘이 많이 닮았다고 했었다. 작업하면서 여러 테이크를 가면서 닮아가는구나 싶었다(웃음)."

 

-함께 작업하시면서 생긴 에피소드나 느낌에 대해 들려달라.

유지태 : "테이크가 많은 편이신데 보통 영화의 2~3배 정도를 가시는 것 같다. 대신 컷이 적은 편이라 조명을 들고 조시는 스태프들도 있었다(웃음). 감독님은 연기하는 걸 싫어하시는 편이시다. 꾸며진 듯한 연기를 싫어하시는 편이다. 대신 사전에 얘기를 많이 하고 눈빛만 봐도 뭘 원하는지 알 정도로 대화를 나누는 편이다. OK도 시원시원하게 안 하셔서 스태프들이 흥이 나도록 내가 대신 크게 OK를 불러준 적도 있다."

 

허진호 : "<봄날은 간다> 때가 가장 흥이 나게 작업했던 것 같다. 상우와 은수가 처음 만나는 장면은 시나리오에 없는, 현장에서 만든 장면이다. 두 컷인데 30~40번 넘게 갔었는데 다행히 안 지치고 해주었다. <행복>도 함께 작업한 김형구 촬영감독이나 유지태, 이영애 모두 무리하게 갔는데도 잘 들어줘서 고마웠다."

 

-<봄날은 간다>를 어렸을때 봤을 땐 은수가 너무 얄밉고 그랬었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다르게 느껴졌다. 상우가 때가 더 묻었던게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허진호 : "오늘은 극장 사운드가 너무 좋다고 해서 (오랜만에) 다시 봤는데 유지태가 소년 같았다.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웠다."

 

유지태 : "그때와 달리 지금은 세상에 때가 많이 묻은 거 같다. 테이크를 많이 가고 버전을 달리 하고 <봄날은 간다>를 하면서 영화 속 리얼리티에 대해 연구하게 됐고 여러가지로 배운 게 많다."

 

-유지태씨는 <봄날은 간다> 이외에도 <올드보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뚝방전설> 등 다양한 작품들을 하면서 이미지를 깨는 작업을 많이 시도한 것 같다.

유지태 : "<뚝방전설> 같은 경우엔 조범구 감독과 친구 사이라 하게 됐고, 최근 작업했던 <순정만화>는 류장하 감독이 <봄날은 간다> 때 조감독이었고 조성우 음악감독이 제작자라서 친분이 많이 작용했다(웃음). 많은 작품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연기를 하는것이 배우 같다."

 

-유지태씨는 미쟝센 영화제에 단편 <나도 모르게>를 춤품하기도 하고 단편영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허진호 감독은 감독으로서 유지태 감독의 영화를 어떻게 보셨나?

허진호 : "다른 단편 <자전거 소녀> 때부터 자기가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게 있다고 생각됐다. 장편이 기대되게 하는 작품이었고 기대되는 감독이다."

 

유지태 : "현재는 시나리오를 탈고한 <초대>라는 작품을 준비중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단편 작업을 계속해 갈 생각이다. 물론 배우 활동도 계속할 예정이다."

 

씨네토크가 끝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와 허진호 감독

▲ 씨네토크가 끝나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봄날은 간다>의 유지태와 허진호 감독 ⓒ 박병우

-이번에 두분이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심사위원을 맡게 되신 걸 축하드린다. <봄날은 간다>가 170컷트로 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이영애씨와 작업하면서 매직 계기를 느낀 적은 없는지?

유지태 : "순간순간마다 그런 감정들을 느꼈던 것 같다. 감독님께서 정말 집요하시다. 그런 감정들이 나오지 않으면 OK를 안 하신다. 저렇게 선한 얼굴로 얼마나 독하신지(웃음)."

 

-영화속에서 상우(유지태)와 은수(이영애)의 첫만남에서 "근데 조금 늦으셨네요"는 시간의 늦음도 있겠지만 두 사람 사이 늦게 찾아온 사랑의 타이밍을 말하는 듯하다. 한국 멜로영화의 명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는 영화 장면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 장면을 찍을 당시 어떤 감정이 들었는가?

허진호 : "첫만남에 대한 좋은 지적 감사한다. 진작 얘기해 줬다면 인터뷰할 때 그렇게 대답했을 텐데(웃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란 대사는 논리적인 얘기는 아니지만 사랑하고 헤어지고 나면 정신적으로 힘들 것 같았다. 그 장면을 찍을 당시에도 상당히 어려운 대사였다. 어색하기도 하고 해서 찍지 말까도 했었다. 4~5번 정도의 테이크를 갔는데 유지태의 미소가 좋았다. 대사와 (상우의) 마음이 잘 어울렸고 표정이나 동선 손의 움직임들도 좋았다."

 

유지태 :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는 원래 시나리오 중 유일하게 남은 대사이다. 나머지는 거의 현장에서 다 바뀌었다. "내가 라면으로 보여?"는 내가 애드립으로 만든 대사다(웃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는 김선아 PD와 내가 우겨서 남게 됐는데 이 영화의 키워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를 찍을 당시의 20대 유지태와 30대인 지금의 유지태는 많이 달라진 것 같다. 앞으로 <봄날은 간다> 같은 맑고 순수한 느낌의 연기는 안 나올 것 같다. <봄날은 간다>가 마지막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가을로>나 이번에 <순정만화>같은 멜로영화를 하면서 그런 느낌이 들지 않고 연기를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내가 때가 많이 묻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를 붙잡지는 않겠다."

 

-허진호 감독의 영화에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와 감독님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무엇인가?

허진호 : "계속 영화를 만들면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슬픔이나 감정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지나간 그런 것들이 재미가 있다. 지나간 감정들이나 슬픔을 생각할 수 있고. 그런데서 이야기를 찾고 선택하는 것 같다. '사랑'이라는 건 정의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사랑'이 무엇인가는 계속 질문을 해야 할 것 같다."

 

유지태 :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의 질문을 당시에 많이 받았었다. 그 (순간) 순간이 사랑의 진실인 것 같다."

 

사자자리 허진호 감독의 생일 축하 <8월의 크리스마스> 대사에도 나오는 허진호 감독의 깜짝 생일 파티도 이어져 허진호 감독과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 사자자리 허진호 감독의 생일 축하 <8월의 크리스마스> 대사에도 나오는 허진호 감독의 깜짝 생일 파티도 이어져 허진호 감독과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 박병우

사랑의 아픔으로 아파하던 소년 '상우'(유지태)와 허진호 감독은 그렇게 짧은 아쉬운 만남을 뒤로 했다.<봄날은 간다>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리밭에서 소리를 채집하며 미소를 지었던 상우도 이제는 훌쩍 커버린 마음처럼 어른이 되어 있었다.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즐거운 씨네토크 현장이 끝날 무렵 얼마전 생일(8월 8일)을 맞이했던 허진호 감독을 위한 깜짝 이벤트가 열려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깜짝 생일축하가 이어진 후 허진호 감독과 유지태가 오랜 우정을 포웅으로 함께하고 있다

▲ 깜짝 생일축하가 이어진 후 허진호 감독과 유지태가 오랜 우정을 포웅으로 함께하고 있다 ⓒ 박병우

8월14일부터 열리는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도 나란히 심사위원을 맡은 허진호 감독과 유지태, 두 사람은 오랜기간 동안 감독과 배우의 관계를 뛰어넘어 우정을 이어갈 것이다.

2008.08.16 15:27 ⓒ 2008 OhmyNews
봄날은 간다 허진호 유지태 이영애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쪽 분야에서 인터넷으로 자유기고가로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에 대한 생생한 소식과 리뷰를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