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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류관에서는 매일 밤 특별공연이 펼쳐진다.
 옥류관에서는 매일 밤 특별공연이 펼쳐진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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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냉랭한 남북 관계를 반영이라도 한 것일까. 베이징올림픽 남북 공동응원단은 만들어 지지도 않았다. 어느새 익숙해진 한반도기는 자취를 감췄고, "우리는 하나다"는 구호도 사라졌다.

베이징올림픽에서 남한 취재진이 북한 선수와 관계자들을 취재하는 건 무척 어려운 일이 돼 버렸다. <오마이뉴스>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은 8·15 광복절을 맞아 베이징 한인타운 왕징에 있는 북한 식당 세 곳을 찾았다. '북한 사람 누구든 만나봐야 하지 않느냐'는 심정으로 말이다. 북쪽 사람들이 보는 베이징 올림픽과 광복절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평양 옥류관] "광복절, 조국이 해방된 날 아닙네까"

베이징 왕징에 있는 '평양 옥류관'. 북한 식당으로 널리 알려져 많은 한국사람들이 찾는 식당이다.
 베이징 왕징에 있는 '평양 옥류관'. 북한 식당으로 널리 알려져 많은 한국사람들이 찾는 식당이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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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베이징 왕징에 있는 '평양 옥류관'을 찾은 시각은 14일 저녁 7시 50분경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눈에 들어오는 풍경보다 귀에 낯익은 노래 '휘파람'이 들려왔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안내원이 몇 명이 왔냐고 물은 후 자리로 안내했다.

주문을 하면서 안내원의 이름을 물었더니 "현아"라고 짧게 대답했다. 성(姓)은 '홍'씨. 나이를 물었던 쉽게 대답했다. 스무살이란다. 바로 "내일(15일)이 어떤 날인지 아느냐?"라고 했더니, 곧이어 나온 대답은 "조국이 해방된 날이 아닙네까?"라고 반문한다.

현아씨는 평양에서 베이징에 온 지 반 년이 지났고, 2년 뒤에 돌아간다고 했다. 말문이 터진 김에 몇 가지 더 질문했다.

올림픽을 맞아 손님이 늘었는지 궁금했다. 현아씨는 하루에 대략 400∼500여 명이 찾으며, 크게 늘지는 않고 꾸준히 손님이 찾아온다고 한다. 덧붙여 옥류관에 대한 규모를 자랑(?)해준다. 300석 규모로 1층은 공연을 볼 수 있는 개별 자리 위주이고, 2층은 단체 손님이 앉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올림픽 9일째인 이날까지 '올림픽 경기를 관람했느냐'고 물었더니 "못 가봤다"면서 "며칠 전에 (직원) 몇 명이 톈진에서 열리는 여자 축구경기에 응원하러 다녀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북측 대표팀도 옥류관에 찾아왔냐'고 했더니, "아직까지 오지 않았으며, 찾아올 계획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끔 웃음짓기도 했지만, 서울말을 쓰는 우리를 향한 경계를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앞서 이야기를 나눈 다른 종업원과 다시 이야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은 했지만, 남측과 관련된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답하기를 꺼려했다. 추가로 음식이 나왔다. 마침 들려오는 노래가 '우리는 하나'였다. 이때다 싶어 8·15 광복절을 맞아 남측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옥류관 종업원 허성희씨는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 남북 선수들에게 "모두 힘내서 좋은 결과를 바랍네다, 힘내시라요!"라고 말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옥류관 종업원 허성희씨는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한 남북 선수들에게 "모두 힘내서 좋은 결과를 바랍네다, 힘내시라요!"라고 말했다.
ⓒ 김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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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오른쪽 가슴에는 인공기 명찰을 달고 있는 종업원이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나입네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3국에서 만나는데, 제가 진정 바라는 것은 통일된 한 나라에서 남과 북이 함께 만나는 것입네다."

"말을 잘 못한다"고 겸손해하면서도 힘주어 자신의 생각을 전한 종업원의 이름은 허성희(21)씨. 평양에서 베이징에 온 지 1년 반이 지났다고 한다. 나름대로 고참(?)이었다. 바로 이어 다른 질문을 이어가려고 하자 "그만 됐습네다"하며 밝은 웃음과 함께 손사래를 치며 자리를 피했다.

마지막 질문이라며 '남은 올림픽 동안 북측과 남측 선수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모두 힘을 내서 좋은 결과를 바랍네다, 힘내리시라요!" 돌아온 답변은 명쾌했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옥류관 종업원 중에 올림픽 응원 메시지를 요청했더니, 정중히 거절했다. 이날 여러 명의 북측 종업원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는데, 광복절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민족의 통일을 이야기했다.

[평양 대성산관] "계순희 선수를 제일 좋아합네다"

24시간 식당과 호프집으로 유명한 '평양 대성산관'.
 24시간 식당과 호프집으로 유명한 '평양 대성산관'.
ⓒ 이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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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9시 왕징신청 3구에 있는 북한 음식점 '대성산관'을 찾았다. 이곳은 다른 북한 식당들과 달리 한복 대신 세련된 유니폼을 차려 입은 북한 아가씨들이 우리를 맞이했다. 앞서 다른 식당과 달리 저녁시간에 손님들에게 특별 공연을 해주지는 않았다.

평양 출신의 남궁련(24)씨는 이곳 베이징에 온 지 3년이 되었단다. 남궁씨의 활짝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 사람마저 즐겁게 할 정도로 밝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남측에서 온 손님에 대한 긴장감은 유지했다. 우리의 질문에 "네" "아니오" 식의 단답형으로 대답했다.

그래서 '인민 누이' 계순희 선수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남궁씨는 "우리도 계순희 선수를 제일 좋아합네다"라며 "지난 번 경기는 너무 안타까웠습네다"라고 말했다. 남궁씨는 직접 경기장에 찾은 적은 없으며, 식당 일이 바빠 TV를 통해 가끔 경기를 본단다. 그리고 아직까지 올림픽 주경기장인 냐오차오에는 가보지 못했다고 한다.

벌써 3년째 가족과 떨어져 베이징에서 생활한다는 남궁씨는 "주변에 동료들과 함께 있어 외롭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다.

[해당화] "이거 미국산 쇠고기?" "모두 조국에서 왔습네다"

좀 늦은 시간이었지만, 가게에 손님드 없다. '올림픽 특수'를 노리는데 실패한 듯.
 좀 늦은 시간이었지만, 가게에 손님드 없다. '올림픽 특수'를 노리는데 실패한 듯.
ⓒ 이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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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왜 이렇게 손님이 없는 거야?'

광복절을 하루 앞둔 저녁, 북한 식당 '해당화'에 처음 들어섰을 때 들었던 의문이다. 한복을 차려입은 북한 여성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넓은 실내에 손님은 거의 없었다. 20개가 넘은 식탁 중 손님이 앉아 있는 곳은 3곳뿐.

중국 내 한인들에게 식당 해당화는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밥 먹기 힘든 곳"으로 통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과거 중국을 방문했을 때 해당화에서 식사를 한 바 있고, 북한 고위 인사들 역시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손님이 없는 것일까. 의문은 종업원 '리송이 동무'의 입을 통해서 풀렸다. 리송이(22)씨는 "올림픽이지 않습네까? 다들 경기 구경하며 응원하느라 손님이 별로 없습네다"며 "올림픽 기간이 아니면, 예약 없이 우리 해당화에서 밥 먹기 힘듭네다"고 말했다.

식탁에 앉으니 북한 여인이 분홍빛 한복을 입고 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혈전증과 심장병에 제일특효 혈궁불로정'. 북한의 건강식품을 홍보하는 전단지였다.

북한 식당 '해당화' 메뉴판에는 '싸우나한 조선왕새우'가 있다. 뜨거운 증기로 삶은 왕새우 요리다.
 북한 식당 '해당화' 메뉴판에는 '싸우나한 조선왕새우'가 있다. 뜨거운 증기로 삶은 왕새우 요리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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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업원이 가져온 메뉴판을 펼치니 아직 먹지도 않은 음식 사진이 군침을 돌게 한다. 그러나 눈을 확 잡아 끈 건 다름 아닌 '싸우나한 조선왕새우 98위안'. 엥? 이건 무슨 요리지? 뜨거운 증기로 삶은 왕새우였다. 사실 벌겋게 익은 채로 누워 있는 새우 세 마리보다 요리 이름 때문에 눈이 더 즐거웠다.

우리가 주문한 건 소꼬리탕 1인분, 가자미식해, 맛조개볶음, 쇠고기석쇠구이. 두 명이 먹기엔 많은 양이었지만, 종업원들에게 최대한 많은 말을 걸기 위해 이렇게 주문을 했다.

리송이씨가 내온 쇠고기구이를 한 점 먹으며 일부러 들으라고 "이거 미국산 쇠고기 아냐?"고 크게 말했다. 역시 '리송이 동무'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 해당화는 모두 조국(북한)에서 가져온 재료만 사용합네다"고 말했다. 이때다 싶어 몇 마디 물었다.

북한 식당 '해당화'에서 음악 공연을 하고 있는 북한 여성.
 북한 식당 '해당화'에서 음악 공연을 하고 있는 북한 여성.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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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자 양궁 봤어요? 한국 선수가 중국 선수한테 졌는데."
"보지는 못했지만 소식은 들었습네다. 같은 민족인데 안타깝습네다."
"계순희 선수 메달 못 따서 어떻게 해요? 여자 축구도 떨어지고."
"아쉽지만 나중에 승리할 기회가 있겠지요. 함께 힘주어 응원하면 꼭 승리할 겁네다."

저녁 8시께부터 식당 무대에서는 연분홍빛 한복을 입은 북한 여성들의 노래와 타령,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가 펼쳐졌다. 공연은 매일 열린다. 광복절에는 색다른 특별 공연이 펼쳐질까?

리송이씨는 "조국이 해방된 즐거운 날인데, 뭔가 있지 않겠습네까? 우리도 손님들에게 더 좋은 접대를 할 겁네다"고 말했다. 또 리씨는 "베이징에 온 지 3개월밖에 안됐지만, 남한 손님들의 태도는 모두 친절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광복절 특별 공연을 보러 내일(15일) 저녁에 꼭 오겠다'고 약속했다. 리씨는 "꼭 오시라요!"라며 웃어 보였다. 밤 9시, 남은 음식을 포장해 해당화를 나섰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SK텔레콤 T로밍이 공동 후원하는 '2008 베이징올림픽 특별취재팀' 기사입니다.



태그:#옥류관, #해당화, #대성산관, #베이징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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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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