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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산책로
 반포산책로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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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천둥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이런, 비가 쏟아지고 있군요. 활짝 열린 베란다가 생각나 벌떡 일어납니다. 베란다로 들이치는 비가 빨래건조대의 빨래를 적시고 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열린 베란다로 비가 사정없이 들이치고 있었습니다.

번개가 번쩍하더니 이어서 우르릉 쾅, 하면서 천둥소리 울립니다. 비는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도보여행 하는 날인데 비가 너무 많이 내리는군. 비가 아무리 많이 내려도 도보여행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비가 내리면 비옷 입고 걸으면 되고, 이러면서 도보여행은 출발한답니다.

13일 도보여행 출발지인 동작역에 내릴 때만 해도 시커먼 구름은 비를 잔뜩 머금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걷다보면 비를 머금은 구름이 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비를 쏟아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제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비를 머금은 구름은 어디론가 마실을 가 버리고, 대신 태양이 활짝 웃으면서 얼굴을 내밀었으니까요. 덕분에 하루 종일 땀을 엄청 많이 흘렸습니다.

자, 그러면 도보여행 출발합니다. 출발지는 동작역 1번 출구입니다. 이번 도보여행도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인도행)'과 함께 했습니다. 동작역에서 1번 출구로 나오면 곧바로 양쪽에 나무들이 즐비하게 심어진 보도가 나옵니다. 초록빛 벽돌이 깔린 길입니다. 사뿐하게 걷기 좋은 길이지요.

비 내리면 비옷 입고 걸으면 되고...

서래공원의 말
 서래공원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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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이대고 사진을 찍으려는데 앞이 뿌옇습니다. 새벽에 내린 비로 길과 나무가 습기를 머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길이 끝나는 곳에 횡단보도가 있습니다. 길을 건너면 반포아파트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표지판 옆길로 들어갑니다.

자전거도로와 보도가 나란히 붙어 있는 길입니다. 길옆의 나무들과 길만 보면 호젓한 산길 같습니다. 하지만 바로 옆에서 아파트 건축공사가 한창입니다. 그걸 보니 도시 한가운데라는 실감이 납니다.

그 길이 끝나는 곳에서 전철역을 만납니다. 고속터미널 역입니다. 역 앞에는 여러 대의 자전거가 나란히 묶여 있는 자전거 주차대가 있습니다. 오토바이도 한 대 끼어 있네요.

여기서 길을 건너니 서래공원입니다. 작은 규모의 공원인데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습니다. 인공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 싶기는 하지만, 분수대 아래에서 분수의 물줄기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다섯 마리의 말들이 눈길을 끕니다. 더운 여름날 이 공원에 오면 말들 옆에서 분수의 물줄기를 시원스럽게 맞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물줄기 아래의 어린 말이 무척이나 즐거워 보입니다.

공원의 한쪽에 벌개미취가 수줍게 피어나 있습니다. 연보랏빛 꽃잎이 무척이나 곱습니다. 이미 지기 시작한 꽃들도 있습니다. 피어난 꽃은 지게 마련이지요. 대신 씨를 머금어 자손을 널리 퍼뜨리겠지요.

길을 건너 몽마르뜨 공원으로 갑니다. 몽마르뜨 공원이라니 프랑스가 생각나지요? 가까이에 래마을이 있습니다. 서래마을에 프랑스인들이 사는 건 아실 테고, 그 마을 진입로가 몽마르뜨 길이랍니다. 해서 공원 이름을 몽마르뜨 공원이라고 붙였다는군요. 이 공원의 다른 이름은 반포배수지 공원입니다.

이 공원은 산책하기에 아주 좋은 곳입니다. 풀 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이 있고, 쉬어가기 좋은 파고라도 있고, 잘 만들어진 산책로도 있습니다. 산책로 끝에서 우산을 쓰고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가 내리느냐고요? 비를 가린 것이 아니라 햇볕을 가린 것이지요.

산책하기 좋은 몽마르뜨 공원

몽마르뜨 공원 산책로
 몽마르뜨 공원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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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뜨 공원을 지나니 이번에는 서리풀 공원이 나타납니다. 공원을 지나니 공원이 꼬리를 문 듯 이어지네요. 서리풀 공원은 공원이라기보다는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는 낮은 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숲이 우거져 있고, 걷기 좋은 흙길이 이어져 있습니다. 숲으로 들어가니 싱그러운 자연의 냄새가 물씬물씬 풍겨납니다. 시원한 숲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새벽에 내린 비로 그다지 덥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생각과 달리 상당히 더운 날입니다. 걸으면서 어찌나 땀을 많이 흘렸는지, 온 몸이 흠뻑 젖었습니다. 습도가 높은 탓에 더 후텁지근하게 느껴지고 있던 차에 숲으로 들어오니 기분이 저절로 좋아집니다.

청권사 가는 길로 접어듭니다. 나무의 푸른 잎들이 눈길을 끕니다. 자연의 색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습니다. 걷기 좋은 오솔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습니다. 시가 써 있는 아크릴판이 보입니다. 잠깐 멈춰 서서 시를 읽습니다.

만남이건 이별이건
운명 같은 바람이어라 (정찬우의 '바람이어라'의 일부)

돌이나 나무에 시가 새겨져 있었더라면 더 운치가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잠깐 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지요. 잠깐이라도 마음을 가다듬을 여유를 갖게 하니까요.

서리풀 공원을 벗어나니 이런, 도심지입니다. 숲길을 걷다 니 도시에서 뚝 떨어진 곳이라는 착각을 한 것이지요. 청권사 앞을 지납니다.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과 그의 부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묘가 있는 곳이랍니다.

지나다 보니 문이 약간 열려 있습니다. 그 문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들여다보고 싶지만 역사탐방을 나선 것이 아니라 다음 기회를 기약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문득 죽은 자들에게 흐르는 세월은 어떤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세월의 흐름은 산 자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서리풀 공원에서는 시를 읽을  수 있다

서리풀 공원의 나무들
 서리풀 공원의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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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배역 4번 출구 앞에서 우리 농산물을 주재료로 쓰는 국수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습니다. 우리 콩으로 만들었다는 시원한 콩국수를 먹었더니 더위가 말끔히 사라집니다. 콩국수 국물에 얼음이 동동 띄워져 있었거든요.

점심 식사를 마치고 간 곳은 방배근린공원입니다. 이곳 역시 낮은 산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걷기 좋은 숲길이 있고, 파고라도 있고, 운동기구도 있습니다. 긴 나무의자가 여러 개 놓여 있어 쉬어가기 좋습니다. 운동기구 위에 한 남자가 누워 있습니다. 그렇게 가만히 누워 있으면 시원하겠지요?

잘 자란 나무들이 빽빽한 숲입니다. 나무를 타고 올라간 담쟁이넝쿨이 보입니다. 잎이 잔뜩 달린 넝쿨들이 나무줄기를 감싸 안아 나무줄기에 잎이 돋아난 것 같습니다. 참 보기 좋아 보고 또 봅니다.

이번에는 우면산 공원으로 갑니다. 가고 또 가도 공원이 있다니 신기하지요? 예전에는 도시, 하면 삭막하다는 생각을 먼저 했는데 요즘은 잘 가꾼 공원 덕분에 삭막함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면산 역시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을 뿐 이름 그대로 산입니다.

방배근린공원을 벗어나 길을 건너 관음정사로 가는 길로 들어섭니다. 조금 걸으니 관음정사가 나타납니다. 절 마당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한 무리의 사람들 때문에 절에 있는 개들이 바싹 긴장을 했나 봅니다. 우렁찬 목소리로 짖어대기 시작합니다.

이런, 개줄에 묶여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닙니다. 짖는 기세로 보아서는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데, 절에서 사는 개답게 '도'를 지킬 줄 아네요. 그 자리에 붙박인 것처럼 서서 짖어댈 따름이지요.

컹컹거리는 개 소리에 놀란 듯 스님 한 분이 나오십니다. 우리 일행을 본 스님은 가야할 길을 일러주시네요. 절 마당을 지나 우면산으로 가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나 봅니다. 눈길이 마주친 스님께 감사하다는 표시로 합장을 했습니다. 스님, 살포시 웃으십니다. 여스님이었습니다.

새를 잡으려면 우면산 공원으로 가라고요?

우면산의 나무들
 우면산의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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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곧게 잘 자란 나무가 빽빽합니다. 그 나무들 사이로 산책로가 있습니다. 나무 사이에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산림욕이 되겠지요.

범바위 약수터로 가는 길에 쉼터가 있습니다. 등산복 차림의 여인네 셋이 둘러 앉아 있군요. 가까이 가지 않아도 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새를 잡고 있군요. 새라니, 반문하실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용어로 '고스톱'이라고 한다지요. 시원한 산 속에서 '잡기(雜技)'를 즐기는 건 좋지만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더군요. 우면산은 풍수학적으로 새를 잡기 좋은 곳인가 봅니다. 조금 더 올라간 곳에 있는 쉼터에서도 '새 잡기'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또 있었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새 잡기'를 국민 스포츠라고도 부르던데, 맞나요?

범바위 약수터를 지나 유점사 약수터까지 갑니다. 어, 덮개가 있는 평상 위에 누군가 누워서 오수를 즐기고 있군요. 엄청나게 시원하겠다. 덩달아 같이 누워 낮잠을 자고 싶어집니다.

소망탑 가는 길로 올라갔다가 옆길로 빠져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물줄기가 가는 작은 폭포를 만났습니다. 그 아래서 발을 적시면서 잠깐 쉬었답니다. 물은 생각만큼 시원하지 않았지만 걷느라고 지친 발을 담그니 피로가 풀리는 듯했답니다.

이 곳에서 가장 가까운 전철역은 남부터미널 역입니다. 전철역에서 시작된 도보여행이 전철역에서 다시 마무리됩니다. 이날 걸은 거리는 13km입니다. 그리 긴 거리는 아니지만 도보여행의 맛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거리지요.

반포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한 번쯤 반포지역의 공원 순례를 떠나보시면 어떨까요?

범바위 약수터
 범바위 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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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도보여행, #서래공원, #서리풀공원, #몽마르뜨공원, #우면산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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