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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러두기]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에서 헌책방을 꾸려 나가는 아주머니 한 분은, 헌책방 살림 꾸리기로도 일손이 모자라지만, 아침마다 시청에 나가서 1인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먹고사는 일을 넘어서, 사람사는 일이 걱정스럽기 때문입니다. 먹고살아야 한다는 숫자놀음에 파묻혀서 사람이 살아가는 마음자리를 잃고 있는 도시정책을 여린 몸뚱이 하나로 돌려세우고 싶은 마음을 함께 느끼고자, 헌책방 아주머니와 1인시위를 함께하면서 이야기를 여쭙고 말씀을 듣고 제 생각과 느낌을 간추려 봅니다.

 

 - 1 -

 

 아침 일곱 시 오 분. 배다리 헌책방골목 〈아벨서점〉 아주머니 곽현숙(59) 님이 가게로 나옵니다. 가게문은 아홉 시가 넘어서 열지만, 이렇게 일찍 나오는 까닭은 따로 있습니다. 지난 7월 14일부터, 인천시장 앞문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기에, 부지런히 길을 나서려면 이제부터 자전거에 푯말을 묶어서 나가야 합니다.

 

 헌책방 아주머니가 1인시위를 한 지는 꽤 오래되었습니다. 인천시장과 인천종합건설본부에서 ‘송도 새도시와 청라 새도시를 1자로 잇는 구실’을 하는 한편, ‘수출입 물동량 짐차가 다니는 구실’을 할 ‘길이 2.51km, 너비 50∼70m에 이르는 산업도로’를 놓기로 했던 일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깨달은 뒤부터입니다.

 

 주민들은 ‘산업도로’라 하고 시청 공무원과 개발업자들은 ‘도로’라 하는 이 길닦기 공사는 자그마치 열 해 앞서부터 꽤했던 일입니다. 동네사람들한테는 ‘새길을 하나 내야 하니 보상금 받고 나가라’고 하면서 차근차근 밀어나갔는데, 이 길이 어떤 성격으로 닦일 길인가는, 개발업체 일꾼들이 창영동과 금곡동 한복판에 너비 100미터에 이르는 집을 싹 몰아내고 나서야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집을 어마어마하게 허물고 깊이도 깊게 파헤쳐 놓고 보니, 이 길이 ‘그냥 차가 다니는 길’이 아니라 ‘산업 물동량을 실어나르는 길’임이 드러났습니다. 산업 물동량을, 초등학교 네 군데, 고등학교 두 군데를 바로 옆으로 끼게 하는 길이며, 동네를 두 동강으로 쪼개는 길임을, 주민들은 ‘공사가 여덟 해째 접어든 뒤’에 알았습니다. 그러나, 공사 여덟 해는 ‘허물어낸 집 보상’을 하는 데에 쓰여진 시간이었고, 길닦이 공사는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길이 날 자리에 있던 집만 허물고’ 난 뒤 주민들이 반대를 해서 공사를 막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뾰족한 대책 없이 주민과 시청 공무원은 나란한 금을 달립니다. 그도 그럴 까닭이, 주민들한테는 생존권이 걸린 길입니다. 공무원들한테는 오랫동안 꾀한 사업이 물거품이 되면 목아지가 날아간다고 하는 길입니다. 생각해 보면, 공무원들이 문책받는 걱정 때문에 주민 생존권을 깔아뭉갤 수는 없는 법인데, 주민들은 공무원들 일자리를 근심하면서 ‘이 산업도로 공사가 잘못된 계획’으로 집행되어 예산을 크게 버리게 되었다고 해도 관련 공무원 책임은 묻지 않겠다고 요구조건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 2 -

 

 헌책방 〈아벨서점〉 아주머니는 짐자전거 짐받이에 푯말을 끈으로 친친 묶습니다. 앞바구니에는 비옷과 모자를 챙겨 놓고 있습니다. 갑작스레 비가 내려도 1인시위는 아직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푯말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아주머니가 달리는 길은 골목입니다. 금곡동 쇠뿔고개 골목을 지나 동산고등학교 앞을 지나고, 제물포역 뒤쪽으로 나오는 골목을 거쳐서 도화동으로 빠져나옵니다. 도화동에서 옛 중앙극장 앞길을 지납니다. 그런 뒤 옛 시민회관 옆을 스치고 간석동으로 접어들고, 곧이어 구월동에 닿아 인천시청 뒷문.

 

 달리는 동안 비가 쏟아져서, 헌책방 아주머니와 저는 비옷을 챙겨입습니다. 빗줄기가 꽤 굵습니다.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온몸이 젖습니다. 비옷을 입었으나 빗물과 땀이 범벅이 되어 후끈후끈합니다.

 

 

 아침나절 학생과 회사원을 실어나르는 버스는 비 맞는 자전거 두 대를 곱게 지나쳐 보내지 않습니다. 아슬아슬하게 옆으로 비껴 달리거나 빵빵질을 합니다. 그래도 조용히 버스를 흘려보내면서 달립니다.

 

 비알진 인천시청 뒷문에 닿은 뒤, 짐받이를 끌러 큰 푯말 하나를 길가에 세워 놓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서 시청지킴이한테 인사를 하고 앞문으로 가서 문간에 자전거를 세우고 푯말을 세웁니다.

 

 인천시청은 앞마당에 주차장을 마련하면서, 건물 앞에는 사람들이 다니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 시청에서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건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 주차장 둘레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주차장 앞 뒷간에서 낯과 손을 씻으면서 ‘인천 동구 골목동네 가운데에는 여태까지 공용화장실을 쓰는 집이 많은데, 그곳에는 새 공용화장실 한 칸도 더 지어 놓지 않으면서 시청 뒷간은 이렇게 으리으리하게 지어 놓기만 하면 뭐하는가’ 싶은 생각.

 

 

 “광복절을 앞두고 이런 글을 쓰고 저런 글을 써 보려고 하는데, 그게, 내가 ‘인천시민’이 되는 거예요. 일인시위를 7월 14일부터 다시 했는데, 내 마음에서 싹터 나오는 건, 내가 인천사람이라는 것이에요. 그 마음이 가장 크게 돌더라고요. 인천은 어진 仁, 내 川이거든요. 오늘도 자전거 타고 오면서 느끼는데, 인천 안에서 내가 컸다는 게, 인천에서 살았고, 살고 있는 게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몰라요. 내가 진짜 어진내에서 살고 있다는 게 얼마나 나다운 것인지를.”

 

 무거워 보이는 나무 푯말을 긴막대기 하나로 받쳐서 들고 있는 헌책방 아주머니는, 차근차근 숨을 고르면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처음에는 ‘산업도로 반대’를 내걸면서 ‘(인천) 동구는 살아 있다’고 외쳤고, 이제는 ‘배다리, 우리가 지켜야 할 인천의 역사입니다’를 내걸면서, ‘서민이 살아가는 땅’이 어떻게 아름답고 중요한가를 외칩니다.

 

 “이 푯말을 잡고 서 있는 건, 나를, 인천사람이라는 나를 자랑하기 위함이라는 거지요. 인천은 끊임없이 내주면서 서울을 키워요. 어진내 그대로야. 어머니는 늘 시리고 추워요. 끊임없이 끊임없이 내주기 때문에. 숫자 계산은 (해 보면) 억울하지요. 그렇지만, 어진내는 이 나라를 그만큼 품어서 키웠다는 거고. 얼마나 인천이 자랑스러운 땅인지를 발견하는 거죠. 그것은 즉, 나 하나 사람으로서의 발견이고, 사람의 생태계의 발견이고, 생명의 발견이고.”

 

 인천시 공무원들은 ‘땅값 보상으로 돈이 얼마가 쓰였는데, 그 돈을 허투루 날리지 않으려면 공사를 빨리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스스로도 잘못된 정책이었다고 받아들이고, 주민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공사는 해서 길을 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동안 얼마나 큰돈을 쏟아부었는지 아직도 밝히지 않아서 알 길이 없는데, 아직 터닦이 공사도 하지 않고, 살림집만 허문 공사임을 헤아린다면 앞으로 들어갈 돈이 훨씬 클 텐데, 그 돈이야말로 예산을 허투루 쓰는 셈이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헐려버린 집은 어찌할 수 없다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퍽 넓은 자리가 헐리게 되면서 그 자리를 ‘도심지 한복판에 싱싱하게 살아숨쉬는 숲’으로 가꿀 길이 트인 셈이기도 합니다. ‘차가 다니는 길’로 뚫었으나, ‘사람이 사는 숲’으로 돌릴 새로움이 열렸다고 할까요.

 

 공무원으로서도 더 나은 정책을 새로 엮으면 되고, 더 나은 정책으로 예전 아쉽거나 모자랐던 정책을 채우면 됩니다.

 

 

 - 3 -

 

 여덟 시 십이 분. 시장님 까만 차가 들어섭니다.

 

 “시장 차 말고 좋은 차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요. …… 우리가 살아가는 제도도 정비가 되어야 할 것 같아. 기숙사 짓고 뭐 하는 대안학교가 아니고, 다듬어 내는 대안학교가 아니고, 자유롭게 키워 가는 대안학교가 되어야 해. …… 애들이 실력은 엄청나게 늘어나는데, 그게 진리냐고. 그게(실력이나 지식) 어느 정도 필요해서 그런 시대로 왔겠지. 그러나 이제는 ‘삶의 시대’로 가야 해. 거창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 가야 돼. 내가 살면서 전율을 하는 게, 어진내라는 이름이 대단하단 말이야. 섬기는, 어질다는 게, 대단히 높은 정신의 소리예요. 그것을 통해서 사람이 사람을 알아가는 힘이거든요. 그게 어질다인데.”

 

 헌책방 〈아벨서점〉 아주머니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배다리 골목길에서 인천시청까지 오는 동안, 저는 저 혼자서 꿈을 꾸었습니다. 시청 공무원들은 ‘어떻게든 그 길은 꼭 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 그렇게까지 그 길을 꼭 내고 싶다면, 그리고 시청 공무원들 말마따나 ‘산업 물동량 나르는 큰 짐차가 못 다니고 자가용만 다니는 길로, 그것도 4차선으로 줄여서, 또는 2차선까지 줄여서 동네길로 삼겠다’고 우리 앞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거짓이 아니라 참말이라고 한다면(입으로만 다짐을 하고 문서로는 다짐을 안 해 주고 있습니다), 아예 그 ‘산업도로 구간’을 모두 ‘자전거만 다니는 길’로 내자고. 안상수 인천시장이 그토록 엄청난 돈과 사람과 시간을 들여서 짓고 있는 ‘송도 새도시’와 ‘청라 새도시’를 1자로 잇는 길은 ‘자동차 전용도로’가 아닌 ‘자전거 전용도로’로 하면 좋겠다고.

 

 이렇게 하면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도심지 관통 자전거 전용도로’가 되어서, 이웃나라 일본이며 미국이며 유럽이며 중남미며 아시아며 아프리카며, ‘도심지를 잇는 훌륭한 자전거 전용도로’를 구경하고 알아보고 배우겠다며 찾아오지 않을까 싶어요. 가만히 보면, 우리 나라 적잖은 공무원들은 ‘유럽 자전거 문화와 정책’을 배운다면서 비싼돈 들여서 나들이를 합니다. 이제는 거꾸로 유럽에서 우리 나라로 ‘자전거 정책과 문화’를 배우도록 돌려놓는다면, 인천시로서는 인천시장님 스스로 내세우는 ‘명품도시’ 품격을 높이는 한편, 세계 여러 나라에서 관광객이 끊이지 않을 테니 저절로 ‘외국돈 벌이’가 되고, 이에 따라서 지역살림도 저절로 북돋게 됩니다. 찻길이 아닌 자전거길을 놓으면서 사람들이 자전거를 더 즐겨 타게 되면, 자동차 움직임이 줄어드니 공기는 한결 맑아지고 사람들 몸도 한껏 튼튼해지면서, 인천이라는 도시는 차츰차츰 아름다운 곳으로 새로워질 수 있어요.

 

 “부지런할 일에 부지런하지 않으니까, 생명의 돌기가 자기를 키우지 못하고, 머리로 결론을 내리고 맹기적거리면, 자기 스스로 생명의 길을 포기하는 거니까, 파괴라고. …… 어제 그렇게 자동차마다 태극기를 달아 줬는데, 한 대밖에 없네. 저기 또 한 대 있구나.”

 

 사람들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기 어려워하는 까닭은 딱 한 가지입니다. ‘자전거로 다닐 만한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전거가 자동차에 치일 걱정이 없이 다닐 수 있도록(거님길을 둘로 쪼개는 시늉뿐인 자전거길이 아닌) 터전이 마련된다면, 사람들은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자전거로 오갑니다. 왜냐하면, 비오면 비를 맞으며 다니는 즐거움이 남다르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다니는 기쁨이 새삼스럽거든요. 땡볕이든 시원한 바람이든 다 다른 재미입니다. 그러나, 자전거로 느긋하게 다닐 만한 길이 없으면, 자전거 출퇴근이란 한낱 꿈이야기입니다.

 

 “내가 인천시민으로서 모든 것을 다 들여다보았을 때, 어느 쪽으로 나가야 하느냐를 봐야 한다고. 2차선 길을 놓게 되면, 이 길은 (우리가 지역문화잔치를 한다고 하면) 공연장으로 넓게 쓸 수도 있고, 2차선은 그냥 동네길이니까, 어찌 보면 동구는 큰 수확이에요.”

 

 좀더 길게 본다면, 조금 더 멀리 내다본다면, ‘찻길’이 아닌 ‘자전거길’을 내는 데에 마음을 쏟는 정책이 교통흐름을 부드럽게 뚫는 데에도 크게 이바지를 합니다. 걸어서 다니면 더 나은 길이라면 스스로 자동차를 놓게 됩니다. 자전거로 오가면 훨씬 즐겁고 시원하다고 하다면, 일부러라도 송도와 청라 새도시 사이를 자전거로 오가면서 운동을 하게 됩니다. 하루하루 자전거 나들이에 익숙하게 되면, 다른 곳을 다닐 때에도 자가용보다 자전거를 타게 되고, 웬만한 짐은 자전거에 실어서 나를 때가 낫다고 느끼게 되면서 굳이 자동차에 짐 싣고 다니기보다 자전거에 짐 싣고 다니며 돈도 아끼고 몸도 키울 수 있습니다.

 

 

 - 4 -

 

 “인천은 서울을 키워낸 곳이기 때문에 예우를 받아야 하고, 서울에서도 지원해 줄 만한 일이고. 서울사람도 인천사람이 많다고. 인천에서 키워졌고. 여기서 벌어서 서울로 들어갔고. 지방에서 인천으로 와서 머물며 힘을 쌓은 다음 서울로 갔고. 이보다 큰 품이 어디 있어? 다 늙은 어미의 가죽이 낡았다고 그런 시선으로 보면, 역사는 제대로 편집되지 않아요.”

 

 어느새 아침 아홉 시. 시청에 출근할 사람은 거의 다 들어온 듯합니다. 이제 헌책방 아주머니도 당신 일터로 돌아가서 당신 하루 삶을 꾸려 나가야 할 무렵입니다.

 

 들고 있던 푯말을 뜯어서 자전거 짐받이에 도로 묶습니다. 앞문 지킴이한테 인사를 하고 뒷문으로 가서 그곳에 세워 놓은 짐받이도 함께 묶습니다.

 

 곧 예순을 앞둔 헌책방 아주머니. 내내 서 있었기에 무릎이 아픕니다. 몇 분쯤 다리풀기와 몸풀기를 합니다. 비옷은 잘 개어 앞바구니에 담습니다.

 

 

 “우리 나라 역사는 아무도 만들어 주지 않아요. 우리가 하루하루 사는 게 역사지. 이렇게 쓸려가면, 인천은 (고유하고 자립할 여건은) 하나도 없고 (사람들한테) 나라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나라가 이렇게 (자리잡히게) 되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고매한 일을 다 하고 겪으면서 세워진 나라인데.”

 

 가게로 돌아가는 길은 홀가분합니다. 푯말을 들고 나올 때에는 마음이 무겁지만, 자전거를 타고 움직이는 동안 홀로 깊은생각에 잠기면서 길바람을 느낍니다. 한 가지 아침일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는 묵은 응어리를 털어내고 다시금 길바람을 느끼면서 오늘 하루도 내 나름대로 내 역사를, 내가 발딛고 있는 이 땅 역사를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길은 사람이 살아야 할 길이어야 하고, 사람이 다녀야 할 길이어야 합니다. 바로 지금 다닐 길이면서 앞으로 우리 아이들도 다닐 길이어야 합니다. 돈으로 닦는 길이 아니라 온몸으로 닦는 길이어야 합니다. 이 논리 저 논리 앞세워서 지식으로 걸고 넘어지는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을 부비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마음자리 길이어야 합니다.

 

 곰곰이 헤아려 보면, 쉰아홉 곽현숙 아주머님은, 당신 삶을 헌책방 일손을 붙잡으면서 꾸려 왔기 때문에, ‘겉은 낡아 보이지만 속살이 빛나는 아름다움’을 오래도록 몸으로 부대껴 왔고, 이 부대낌을 스스로 삭여내어 인천시 공무원들한테, 또 인천시장한테, 또 ‘배다리 산업도로’를 막으려는 도움이들한테 이야기 한 자락을 건네고 싶어하는구나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태그:#1인시위, #산업도로, #인천, #안상수, #배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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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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