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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연주 KBS 사장에 대한 대통령의 해임과 경찰의 체포'규탄성명 발표한 손관수 KBS차장
ⓒ 문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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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나 그 밑에 사람들의 배짱이 큰 건지 아니면 무지한 건지···. 이 참담한 심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TV로 박태환 선수의 금메달 소식을 접하고 두 손 높이들어 환호하고 있을 때, 정작 베이징에서 그 소식을 전하고 있던 손관수 KBS 1TV 뉴스제작팀 차장은 답답한 가슴을 쳤다.

 

그럴 만했다. 제29회 베이징 올림픽 개막 축포가 화려하게 터진 8일, 공영방송 KBS는 공권력에 의해 무참히 유린 당했다. 그날 친정부 인사로 채워진 KBS 이사진의 정연주 사장 해임 건의를 결정했다. 그 뒤 바로 이명박 대통령은 정 사장을 해임했고, 검찰은 정 사장을 긴급체포했다.

 

"개막식에 맞춰 KBS 침탈, 당장 돌아가고 싶었다"

 

마치 올림픽이 열리고 국민들의 관심이 베이징으로 향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모든 상황이 박태환 선수의 역주만큼 빠르고 거침없이 진행됐다.

 

많은 KBS 올림픽 취재팀은 당장이라도 올림픽 중계를 접고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 거리에서 "이명박 정권의 KBS 장악 음모를 폭로하고 KBS를 목졸라 죽이려는 만행에 맞서 싸우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올림픽 소식을 전하는 것도 공영방송사에 몸담고 있는 그들의 책임이었다.

 

대신 다른 걸 준비했다. 많은 사람들이 박태환 선수의 금메달 소식에 환호하고, 왕기춘 선수의 은메달에 아쉬운 탄성을 뱉고 있던 그 때. KBS 올림픽 취재단의 어떤 이는 기사가 아닌 성명서를 쓰고 있었다. 이 성명서는 13일 오전 발표됐다. 격문이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천명한다. KBS는 정권의 노리개가 아니다. 우리는 결코 정연주 사장 해임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출범 6개월 만에 노망한 정권의 KBS 장악 음모에 맞서 가열차게 싸워나갈 것이다."

 

KBS 올림픽 취재팀은 올림픽 현장에서 왜 이런 분노의 성명서를 썼을까. 손관수 KBS 1TV 뉴스제작팀 차장을 13일 오후 베이징올림픽 국제방송센터(IBC) 앞에서 만났다.

 

손 차장은 이번 성명서 발표를 주도적으로 준비한 인물. 그는 숨가쁘게 돌아가는 올림픽 현장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에 대해서 격한 심정을 토로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난 뒤 손 차장은 "사장이 바뀌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며 쓰게 웃었다. 그의 첫 웃음이었다.

 

 

아래는 손관수 차장과 나눈 일문 일답이다.

 

- 성명서는 왜 발표했나?

"베이징에 오기 전부터 KBS 사태에 많은 우려를 갖고 있었다. KBS 올림픽 취재팀이 약 150명 정도 되는데, 의견을 들어보니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공동의 행동이 필요한 사태라고 판단해 사나흘 전부터 논의를 시작해 오늘(13일) 발표했다."

 

- 취재팀이 150명이 넘어 의견 모으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이곳에는 스포츠취재, 외곽취재, 영상제작, 아나운서 등 여러 팀이 와 있다. 어떤 팀은 다 찬성인데 한 사람만 반대하고, 어떤 팀의 누구는 (성명서 견해에는) 찬성하지만 발표에는 반대했다. 그래서 성명서는 취재팀 전원이 아닌 ‘KBS 올림픽 방송단원 중 정권의 KBS 유린을 용납할 수 없다는 데 뜻을 같이하는 KBS인 일동’으로 나갔다."

 

- 베이징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날 KBS에 공권력이 들어왔다. 

"개막식이면 축포가 터지는 순간이지 않나. 그걸 기다렸다는 듯 국내에서는 KBS 침탈을 노골화했다. 정말 국제 사회의 냉엄함과 권력의 오만함을 동시에 느꼈다. 착잡했다. 우리가 떠나온 상황에서 KBS 내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특히나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자괴감이 들었다. 일이 손에 잘 안 잡혔다. 스포츠는 그날 바로 발생하는 걸 전달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허탈해 하면서 일을 했다."

 

"사장 교체 예상했지만 이렇게 무도할 줄이야"

 

- 이명박 정부가 올림픽 개막을 기다렸다가 일을 진행한 것으로 보나.

"그렇다. 올림픽 개막에 맞췄고 KBS 이사회가 수족 노릇을 했다고 본다. 지금의 정부는 KBS 장악, 언론 장악의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고 본다. 시나리오대로 여론을 봐가면서 '어떤 때 후퇴하고 어느 때 전진한다' 식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본다."

 

- 손 차장은 정부가 고대했던 그 올림픽을 취재 보도해야 하는 당사자 아닌가.

"여기 있는 사람들 마음이 좋지 않다. KBS가 저 지경이 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내부적으로 분열된 모습 극복 못하고 있어서 참담함이 느껴진다."

 

- 그럼 정부의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었나.

"그동안 한나라당이 정연주 사장을 빨갱이로 몰고, 걸핏하면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하는 등 KBS에 보인 행태를 보면 분명 권력을 이용해 사장을 교체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이렇게까지 비민주적이고 탈법적으로 무도하게 할 줄은 전혀 예상 못했다.

 

지금 상황은 'KBS 사태'가 아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엄청난 사태가 일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무엇을 노리고 이렇게까지 무리하는가. 정치라는 게 대의민주주의인데, 지금 20% 안팎의 지지를 받고 있는 정부가 마치 완벽하게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처럼 한다."

 

-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나. 

"불법적인 행태로 앞으로 여론 조작하려 하지 않겠나. 자신들의 주장 유지하기 위해서 여론 조작할 것이다. 언론 자유, 인권, 민주주의 등 지금까지 조금씩 넓혀 왔던 제도들의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여러 방법으로 언론을 통제하고 국민 사상을 통제하려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을 70년대 긴급조치와 같은 상황으로 보고 있다.

 

압도적인 의회 의석으로 법률과 제도를 바꿀 것이다. 예를 들어 대운하도 여론 조작을 통해 추진할 것이다. 정말 이건 엄청난 사태다. KBS만이 아닌 한국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엄중한 사태라고 본다."

 

- 정부에서는 방송 장악이 아니라 선진화라고 이야기하는데.

"지금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 너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니까, 논리싸움도 논쟁도 할 수가 없다. 뻔한 거짓말이니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 아닌가. 명백한 언론 장악이다. 명명백백한 일이다."

 

- 그런 정부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지금의 정부가 국민들을 피곤하게 하고,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다. 국민들은 (KBS 장악) 시나리오가 초등학생이 쓴 시나리오보다 못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 하는가.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이나 그 밑에 사람들이 배짱이 큰 건지 무식한…. 국민들에게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이면 정책을 펴나가는 데 엄청난 부담이 될 거다. 국민들은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신시대처럼 독재를 하고 있는데, 겉으로는 '이게 민주고, KBS를 국민의 방송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앞으로 정치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재밌는 오락 프로그램만 만들라고?"

 

 

- 그동안 정연주 사장에 대해 KBS 내부의 평가는 복잡하지 않았나.

"최근 방송 중립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 것처럼, 노조와의 갈등을 풀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경영이나 포용성 등에서 문제가 없지 않았지만, 나가면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한 건 의미가 있다고 본다."

 

- 앞으로 어떻게 싸워갈 생각인가.

"지금의 사태는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우린 방송사지만 언론사다. 지금 정권에서는 '너희는 방송이다. 국민들 피곤한데 즐거운 오락 프로그램 많이 만들어서 달래줘야 하지 않냐. 보도는 무슨 보도냐. 재미있는 것으로 오락프로나 잘 만들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이 아닌 것과 싸우면서 무엇이 진실인지 조명해야 사람이다. 한국사회는 양극화가 엄청 심한데, 이런 상황에서 공영방송의 중요성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 KBS처럼 한 사람의 주장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의견 다 녹여내서 국민들에게 객관적으로 전달해 줄 수 있는 그런 방송사가 필요하다.

 

방송사의 공공성이 무너지면 우리 사회는 천박해진다. 방송사는 결코 기업이 될 수 없다. 생산성을 최고로 하는 기업 마인드로 재단할 수 없는 조직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간곡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권력이 왜 방송을 장악하려 하는지 그 배경을 알아줬으면 한다. 방송이 정권의 홍보 선전 수단이 되면 국민에게 피해가 간다. 쉽지 않겠지만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태그:#베이징 올림픽,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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