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연합뉴스 포토란에 이명박 대통령 손에 들려 있는 '거꾸로 태극기'가 모두 잘려나갔다.
 연합뉴스 포토란에 이명박 대통령 손에 들려 있는 '거꾸로 태극기'가 모두 잘려나갔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올림픽 관람 중 거꾸로 뒤집힌 태극기를 흔드는 사진이 보도됐다. 여기까지는 우스운 일이기는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이런 일은 과거에도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이상한 일은 이 다음에 벌어졌다.

누리꾼의 비난이 가중되던 9일 밤 관련 사진들이 해당 언론사와 포털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극기가 나오지 않는 구성으로 수정됐다. 대통령의 손에 있던 뒤집힌 태극기가 지워진 것이다.

애초 보도사진이 조작된 것이었다면 삭제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태극기 보도사진은 분명한 사실을 전하는 것이었다. 사실임이 명백한 보도사진을 삭제·수정하는 것이 말이 되나?

일반적인 상황에선 절대로 벌어지지 않을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보도사진의 특이사항은 대통령에게 망신스런 내용이란 데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망신당할 장면은 통제대상이라는 말인가?

우스운 장면, 이상한 사진

대통령도 실수를 할 수는  있다. 실수로 인해 국민의 비난을 받는다면 감수해야 할 일이다. 다음부터 잘 하면 된다. 실수 자체를 아예 감춘다면 그 때부터 문제가 심각해진다. 무엇보다도 투명해야 할 국가권력이 장막 뒤로 숨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눈과 귀로부터 가려진 채 실수, 약점은 거르고 위대한 점만을 골라 노출시키는 건 권위주의적 리더십의 전형적인 행태다. 지존이신 '주상마마'의 실수가 일반 백성에게 알려지는 일은 없다. 주상마마는 언제나 완벽한 모습만을 내보이기 때문이다.

우리 바로 위에 있는 시대착오적인 조선인민공화국도 이런 리더십의 나라다. 그곳에서 '경애하는 최고지도자'의 실수사진이 유포되는 걸 상상할 수 있나?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 '지도자 동무'는 실수하지 않는다.

우리 대통령도 비슷한 존재인가 보다. 실수하지 않는 위대한 대통령, 실수가 국민들에게 알려져선 안 되는 '경애하는 대통령 마마'? 투명성과 개방성이 있던 자리를 어두운 권위가 차지했다. 이렇게 언론이 대통령 보호에 열을 올리는 나라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민주공화국에서 대통령은 국민과 똑같은 사람이다. 실수할 수 있고 욕먹을 수 있다. 언론은 실수건 잘못이건 있는 그대로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반면 '위대한 지도자'들이 다스리는 나라에서 지도자는 국민과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실수할 수 없고 욕먹어서도 안 된다. 그런 나라에서 언론은 지도자의 실수를 국민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체제에서 권력은 썩는다. 고인물이 썩는 이치와 같다. 어떤 경우에도 권력이 장막 뒤로 숨어선 안 된다. 언론이 그런 장막의 역할을 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되는 일이다. 대통령의 실수도 국민이 알아야 한다. 이 알권리가 박탈되어선 안 된다.

방송장악, 촛불집회 탄압 등 공안몰이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 시민사회는 공포로 위축된 상태다. 거리에서도 인터넷에서도 경찰을 두려워하는 사회풍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KBS에 경찰이 진주하는 상황에서 언론이 체감하는 위협은 더 클 것이다.

우린 '대통령마마' 모시는 신민인가

이번에 대통령 태극기 사진 삭제·수정 사건이 청와대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언론사가 알아서 한 것일 텐데, 그것이 지금까지의 공포 분위기와 무관할까? 권력기관과 시민사회영역의 기관들이 모두 무언의 위협 속에서 알아서 기게 되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될까?

철저한 보호 속에서 대통령의 권위는 올라갈 수도 있다. 대신에 민주주의가 보호 바깥에 버려지게 된다. 권력자가 보호 받는 나라의 민주주의는 정상적일 수 없다. 태극기를 거꾸로 드는 인간적인 실수 정도도 곧바로 삭제·수정되는 풍토에서 감히 누가 최고 권력자의 뜻을 거스를 수 있단 말인가?

보도사진 삭제-수정 사건은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우리는 '경애하는 대통령 마마'를 모시고 살아가는 신민으로 퇴화하나보다.


태그:#태극기, #언론통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