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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주 KBS 사장의 해임제청안이 이사회에서 통과된 8일 오후. KBS 내부는 정 사장 해임 안 결의로 뜨거웠던 오전의 열기를 잊은 듯 어느새 냉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삭발을 감행한 노조는 청와대로 떠났고, 직원들은 업무에 복귀한 듯 했다. 

 

<오마이뉴스> 인턴기자 2명은 퇴근시간이 가까운 오후 5시부터 저녁 8시까지 세 시간 동안 총 89명의 KBS 직원을 무작위로 만났다(단순방문자·방청객 등 제외한 순수 직원만 만나기 위해 직원증을 찍는 게이트에서 기다렸다).

 

우리는 그들에게 ▲정연주 사장의 이사회 해임 결의에 대한 생각 ▲사복경찰에 대한 내부의 반응▲KBS의 향후 방향 예측 등 크게 세 가지의 질문을 던졌다. 질문을 받은 대부분의 직원들은 말을 아꼈다. 질문을 거절하는 방법도 다양했다.

 

"할 말 없다", "의상팀에 있어서 저는 잘 몰라요", "지금 바빠요", "직원 아닌데요(직원증 있는데)", "다음에 하시죠", "바쁩니다", "학원가야 하는데", "전 됐어요", "민감한 사항이라", "<오마이뉴스>면 안 해요" 등.

 

어떤 이들은 짧은 말조차도 귀찮은 듯 손짓과 눈짓만으로 인턴기자를 제압했다. 또 "저는 오마이뉴스 인턴 ○○○입니다"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감한 표정으로 답변을 대신하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사복 경찰이 회사에 침입하다니..." 직원들 격분

 

본관 앞에서 만난 한 여성 직원은 기자의 질문에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 "당연히 잘못한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이사회는 해임 권한이 없으며, 이사회의 절차도 무시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사회 장소와 날짜를 미리 정해서 사장에게 통보해야 하는데, 이번 임시 이사회는 그런 과정이 없었다는 것.

 

무엇보다 그는 '사복경찰의 회사 침입'에 대해 격분하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부분만큼은 대부분 직원들이 분노할 것"이라며, "경찰이 무단침입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이어 "직원들이 많은 부상을 입었다"고 걱정했다.

 

이사회를 저지하려고 막아섰던 직원들의 부상은 예상 외로 심각했다. 한 보도국 직원은 "한 기자는 갈비뼈가 나가 병원에 후송됐으며 나도 손가락이 찢어졌다"고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보여줬다. 그는 "직원들이 많이 다치고도 다쳤다고 말을 못한다"고 말하며 "KBS를 지키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자괴감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퇴근길을 서두르던 희끗희끗한 머리의 노기자는 "이 정부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며 "정연주 사장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런 식의 진압은 불만"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누가 사장이 되든지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또 대부분 나이든 기자들이 말은 안하지만 굉장히 분개하고 있다"고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던 한 기자는 "당신도 아까 현장에 있었는가"되묻더니 "당신이 본 그대로다"라고 대답하며 다시 뜸을 들였다. 그는 "5공 시절에 나도 데모하고 최루탄 맞아봤지만 지금의 이런 식은 아니다"라며 착잡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이사장이 경찰을 요구했다고 들었다"며,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심각하게 오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잘못된 대통령인 줄은 알았는데,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것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앞으로 적합한 사장, 혹은 일부가 주장하는 낙하산이 아닌 사장이 온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몰아낸 선례가 있으면 어느 누가 소신껏 말하고 운영하겠는가"라고 성토하며 "누가 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해임 요구와 정부가 선택한 불법은 명백히 다른 것"이라고 말하며 "정 사장을 반대했던 직원들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해임 찬성 이사는 대부분 불법적인 사람들"

 

또 다른 직원은 "그냥 내버려뒀으면 KBS 스스로 해결했을 것"이라며 "법을 쉽게 무시하는 이 정부를 이대로 놔두면 남아날 조직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사회 참석자 중 유재천 이사장은 전두환 정부 시절 국보위 활동을 했던 사람"이라며 "해임을 찬성한 이사들의 면면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불법적인 사람들"이라고 규탄했다.

 

신관 로비에서 만난 한 기자도 "엄청난 공권력 투입은 자기들 스스로도 이 일에 대한 정당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KBS 직원들은 긴 싸움을 해낼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한 직원은 "정 사장의 퇴임이 안타깝고 마음 아프다"면서도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사장이 들어오는 수순으로 일이 진행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돌아가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라며 체념하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한 PD 또한 "이 사태의 진행방향을 예감하면서도 심정적으로 반감이 든다"고 말하며 "앞으로 KBS가 국민적 합의를 모으는 일보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내보내는 일만 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어 사복경찰에 대해 "이 정권이 얼마나 야만적인지 잘 보여줬다"며 "직원과 시민들의 끈질기고 긴 투쟁으로 결국 승리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바람을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장일호, 박유미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KBS, #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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