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쫄깃 쫄깃 고소하고 맛있는 감자옹심이
 쫄깃 쫄깃 고소하고 맛있는 감자옹심이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두 쌍은 청량리에서 출발하고 두 쌍은 방화동에서 출발하여 양평에서 만나는겨."
"어디로 갈 건데? 그리고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또 유랑하는 거야?"
"어디긴? 이번엔 동해바다지. 작년에는 남해였고 재작년엔 서해바다였으니까 올해는 당연히 동해바다지. 속초에서부터 남쪽으로 달려보자고."

해마다 함께하는 여름휴가 동지들인데 올여름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었다. 벌써 10여 년째 계속되는 여름행사다. 지난번 서해바다의 선유도 여행 때 다시 찾자던 올여름 피서지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뤄졌다.

늙수그레한 네 쌍의 부부, 정처없이 동해로 떠나다

7월 31일 아침, 그렇게 떠난 4쌍의 늙수그레한 커플은 경기도 양평 읍내가 가까운 휴게소에서 합류했다. 두 대의 승용차에 두 커플씩 나눠 타고 이곳까지 왔는데 이곳부터는 남녀 팀으로 갈렸다. 승용차 한 대에는 남편들이, 또 다른 승용차엔 아내들이 함께 탄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아내들이 회포도 풀고 수다도 떨기 위해 같은 차를 타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에는 설악산 한계령 휴게소에서 만나는 겁니다."

이번 여름휴가의 일정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책임진 일행이 아내들 팀에게 다음 만날 휴게소를 약속했다. 두 대의 승용차가 계속 같이 달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도로를 달리다 보면 신호에 막히고 중간에 끼어드는 차들 때문이다.

길가의 콩밭과 마을풍경
 길가의 콩밭과 마을풍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옥수수밭 풍경
 옥수수밭 풍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양평에서 홍천까지 가는 도로는 거의 막힘없이 달렸다. 시원하게 잘 닦인 도로는 신호등도 별로 없어서 웬만한 고속도로 수준이었다. 도로를 달리는 차량들도 예상보다 적었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 몰려든다.

"쉬지 않고 설악산까지 달리는 건 너무 무리하는 것 아냐? 중간에 한 번 쉬고 가자. 우리가 무슨 급한 볼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조금 달리다가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지 일행 한 사람이 제안을 한다. 정말 그랬다. 환갑 지난 백수 부부들이 특별한 계획도 없이 무작정 떠난 여행길인데 강행군할 이유가 없었다.

"홍천 지나서 조금 달리다 보면 터널이 나오는데 그 터널 지나 화양강 휴게소에서 잠깐 쉬었다 갑시다."

뒤따라 오고 있는 아내들의 승용차에 메시지를 날렸다.

"알았슴다. 오버!"

답신은 매우 간단했다. 잠깐 달려 화양강 휴게소로 들어섰다. 그런데 휴게소 안으로 들어서다 보니 낯익은 얼굴들이 우리를 맞아준다. 뒤따라 오고 있는 줄 알았던 아내들의 승용차가 어느새 우리들을 앞질러 달렸던 모양이었다.

홍천강 계곡 풍경
 홍천강 계곡 풍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휴게소에서 잠깐 쉬며 옥수수 몇 개로 간식을 들고 커피를 마셨다. 휴게소를 거쳐가는 차량들은 대부분 가족 단위 휴가객들이었다. 아이들 둘과 함께 떠나는 부부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있었다. 아이들은 매우 즐거운 표정이었지만 부모들은 어딘가 어두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휴게소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

"요즘도 늙어가는 부모님 모시고 휴가 떠나는 젊은 부부가 있네 그려."

우리들이 일어나려 할 즈음 도착한 젊은 부부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딸아이 하나와 우리 또래의 늙수그레한 부모님을 모시고 설악산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들 부부가 대견스러운지 일행 한 사람의 정겨운 시선이 그들을 뒤쫓고 있었다.

휴게소를 출발한 일행들은 설악산 입구 한계리에서 오른편 길로 접어들었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설악산 길은 언제 달려도 기분 좋다. 시선을 현란케 하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의 수해로 어수선했던 골짜기도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손길로 다듬어 놓은 골짜기 풍경은 예스럽지 못하고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오래되고 낡은 한계령의 설악루
 오래되고 낡은 한계령의 설악루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한계령 휴게소는 차량들로 가득했다. 어렵사리 주차공간을 찾아 차를 세우고 화장실에 다녀온 일행들은 휴게소 위쪽의 등산로 입구로 올라갔다. 계단을 밟고 올라간 등산로 입구에는 제법 넓은 공터에 조금은 흉물스러운 낡은 건물 한 채가 서 있었다. 설악루였다. 세워진 지가 오래인 이 낡은 건물은 지붕 위에 얹혀 있던 기와들이 공터 한 쪽에 쌓여 있어서 옛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설악루 오른편으로는 위령비가 세워져 있고 한계령 탐방지원센터가 서 있었다. 마침 탐방로 안쪽에서 내려오는 몇 사람의 등산객들이 있어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물으니 대청봉에서 내려오는 길이라고 한다. 올 가을쯤 우리 일행들이 밟아야 할 코스였다.

설악산과 한계령의 멋지고 아쉬운 풍경

한계령을 출발한 일행들은 다시 구불구불 고갯길을 달려 흘림골 입구와 주전골 입구를 거쳐 오색약수를 지나쳤다. 목표는 양양 낙산사였다. 그런데 앞장서 달리는 차가 오른 편으로 길을 잡고 달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낙산사와는 반대 방향이었다.

"지금 가는 곳이 어딥니까? 낙산사와는 반대방향인 것 같은데."
"그런 것 같네요. 낙산사로 간다는 것이 그만 반대 방향으로 길을 잘못 든 것 같아요. 되돌아 가려면 길이 만만치 않으니까 그냥 주문진으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하죠."

한계령 등산로 입구의 탐방지원센터와 위령비
 한계령 등산로 입구의 탐방지원센터와 위령비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달리는 길은 이미 해안도로가 아닌 고속도로처럼 뚫린 새 길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낙산사에 특별한 볼일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화재로 불탄 후 새로 복원된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이미 지나쳤다니 아쉬웠지만 그냥 갈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 계획 없이 내 멋대로 여행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방향을 잘못 잡은 길이었지만 차는 신나게 달렸다. 한여름 피서객들이 가장 많이 몰린다는 동해안 길인데도 도로는 시원하게 열려 있었다. 하조대와 남애리를 지나친 일행들은 곧 주문진으로 들어섰다.

"오늘 점심은 시원한 막국수로 하는 게 어때?"

누군가 점심 메뉴는 막국수가 좋겠다고 하자 모두들 좋다고 한다. 그런데 시내에 들어섰지만 막국수 집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아 참! 이 주문진에 감자옹심이 잘 하는 집 있는데 오늘 점심은 옹심이로 하는 게 어때요?"

일행의 부인이었다. 몇 년 전 이곳에 왔다가 감자옹심이를 맛있게 잘 한다는 소문을 듣고 먹어봤는데 정말 맛이 좋았다는 것이었다.

지붕 위로 크게 자란 감자옹심이 집 감나무
 지붕 위로 크게 자란 감자옹심이 집 감나무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여보! 전에 당신도 함께 한 번 같이 왔었잖아요?"
"어, 그 집 그래. 기억이 나는 군, 그 감자옹심이 맛있게 하는 집."

부부가 기억을 더듬어 감자옹심이 집을 찾아들어 갔다. 그러나 유명하다는 주문진 감자옹심이집은 너무 초라한 모습이었다. 낮은 천막지붕에 벽도 창문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모습이라면 지붕 위로 솟아 오른 커다란 감나무였다.

주차장 근처에 세워져 있는 '감나무집 감자옹심이'라는 간판의 '감나무집'의 주인공 감나무였다. 허술한 미닫이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눈앞을 막아선 것은 상당히 굵은 감나무 줄기였다. 지붕 위로 뻗어 올라간 줄기에 잎과 열매가 무성했다.

동해바닷가 작은 도시 주문진의 별미 '감자옹심이'

식탁이 놓여 있는 두 개의 방안에는 노인 손님 두 사람밖에 없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나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감자옹심이를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자 노인들의 가족인 며느리와 두 명의 손녀들이 들어왔다.

감자옹심이는 그들 먼저 와서 기다리던 손님들의 음식과 함께 나왔다. 그런데 음식 그릇과 반찬이 특이하다. 옹심이는 손님 수에 맞춰 따로 나온 것이 아니라 작은 항아리처럼 생긴 뚝배기에 2~4인분씩 함께 나온 것이다. 반찬은 깍두기와 열무김치 딱 두 가지였다.

집안에서 천막지붕을 뚤고 자란 커다란 감나무
 집안에서 천막지붕을 뚤고 자란 커다란 감나무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에게게, 옹심이가 뭐 이래? 옹심이는 새알심을 말하는 건데 이건 새알심이 아니라 수제비잖아?"

반찬 두 가지에 항아리 모양의 뚝배기에 담겨 나온 음식을 보던 아내들이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지 실망스런 표정을 짓는다.

"모양은 이래 봬도 얼마나 맛있는데. 맛을 보세요? 전에 우리 친척들이랑 같이 와서 한 번 먹어봤는데 그 분들 지금도 이 옹심이 얘기를 한다니까요."

다른 일행들이 맛도 보기 전에 실망하는 눈치를 보이자 이 감자옹심이를 권했던 일행 부인이 다시 한 번 맛을 강조한다.

"어, 이 감자옹심이 정말 맛있는데요? 고소하고 감칠 맛 나고."

먼저 한숟갈 맛을 본 일행이 감탄을 한다.

"옹심이뿐이 아녜요. 이 열무김치 맛, 이거 정말 끝내주는데요."

이번에는 다른 일행이 열무김치 맛을 칭찬하고 나선 것이다. 모두들 맛있다는 찬사와 함께 쩝쩝 정말 맛있게 먹는다. 옹심이가 새알처럼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나 그냥 수제비처럼 생겼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금 먹다 보니 어느새 열무김치가 동이 났다. 누군가 열무김치 좀 더 달라고 청을 했다.

손님을 배웅하는 감자옹심이집 공미정 아주머니
 손님을 배웅하는 감자옹심이집 공미정 아주머니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네~~에"

아주 고운 목소리로 곡조를 붙여 대답한 아주머니 한 사람이 김치를 더 가져왔다. 그런데 김치 주문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두 번 세 번 김치와 깍두기를 주문하며 감자옹심이 항아리도 바닥이 난 것이다. 국물까지 깨끗이 비운 후 주인 아주머니를 불렀다.

이곳에서 20년 넘게 감자옹심이 음식을 만든 아주머니가 바로 조금 전에 재미있게 대답하며 김치를 더 갖다 준 장본인이었다. 주인인 공미정 아주머니에게 옹심이를 어떻게 만드는지 물어보았다.

"네, 이 감자옹심이는요, 강원도 인제와 평창지역에서 생산된 토종감자만 사용합니다. 감자를 갈아 물에 안쳐서 녹말 앙금을 걷어낸 뒤 반죽을 떼어 만든 감자 수제비입니다."

그래서 모양은 일반 다른 수제비와 다름없지만 쫄깃쫄깃 씹히는 맛이 다른 수제비와는 다른 맛을 낸다는 것이었다. 담백하고 감칠 맛 나는 감자옹심이는 숙취 해소에도 좋아 아침 해장 음식으로도 인기라고 한다.

감나무집 감자옹심이집 근처의 주문진시장 풍경
 감나무집 감자옹심이집 근처의 주문진시장 풍경
ⓒ 이승철

관련사진보기


"주문진에서 1인분에 5천 원짜리 감자옹심이로 모처럼 별미를 맛 봤네, 그려."

문밖을 나서며 일행 한 사람이 새삼스럽게 허술한 감나무집을 뒤돌아본다. 일행들이 모두 밖으로 나서자 주인아주머니가 따라 나오며 인사를 한다. 기념으로 사진 한 컷 찍자고 카메라를 내밀자 예쁘게 찍어달라며 수줍게 웃는다.

동해 바닷가의 작은 도시 주문진에서 생각지 않았던 감자옹심이로 맛있게 점심을 먹은 일행들은 근처의 시장에서 복숭아 한 상자를 사 차에 싣고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남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승철, #한계령 , #주문진, #감나무 집, #감자옹심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바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겸손하게 살자.

이 기자의 최신기사100白, BACK, #100에 담긴 의미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