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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1시 삼각지역 앞 횡단보도에 경찰들이 폴리스라인을 설치했다.
 6일 오후 1시 삼각지역 앞 횡단보도에 경찰들이 폴리스라인을 설치했다.
ⓒ 이덕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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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1시에는 서울지하철4·6호선 삼각지역 10번 출구 앞에서 통일선봉대의 '부시 방한 규탄 집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집회 예정시각보다 45분여 일찍 찾은 현장. 삼각지역 출구마다 전경들이 100여명씩 대기 중이었고, 인도 위에도 정복을 입은 수십 명의 경찰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통일선봉대는 나타나지 않았고, 오후 1시가 되어도 상황은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 순간 경찰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폴리스라인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경찰에게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었다. 무슨 행사를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단 주변 상황을 더 둘러보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넜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갑자기 교통순경들이 나타나더니 도로 위를 통제했다. 별안간 정지신호를 받은 한 택시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앞차와 부딪칠 수도 있는 위험한 순간이었다. 그 때부터 신호등의 신호는 더 이상 바뀌지 않았다. 경찰은 호루라기를 불며 차량들을 이동시켰고, 폴리스 라인이 설치된 횡단보도는 시민들이 건널 수 없는 길이 되어버렸다.

"다 우리나라 위해서 하는 일, 기다려라"

그렇게 15분이 흘렀다. 33℃가 넘는 폭염 속에 시민들은 힘들어 했다.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 횡단보도 앞에서 가만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경찰에게 다가가 "지금 왜 통제하는 거냐"고 물었다. 이에 대한 답변이 돌아왔다. "부시 대통령이 탄 차량이 여기로 지나가기 때문"이란다. 시민들은 땡볕 아래 마냥 기다려야 했다. 부시 대통령이 지나갈 때까지.

어린 학생들도 있었고, 나이 든 할머니도 계셨다. 할머니가 "날씨도 너무 더운데 이제 그만 지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하자, 경찰은 "어쩔 수 없다, 이게 다 우리나라를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시민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냐"고 짜증을 냈다.

수십 명의 시민들은 15분을 기다리다 결국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게 됐다. 그렇게 가까스로 횡단보도 건너는 데 성공한 나는 기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미 그 곳은 집회 예정 장소가 아니라 부시 대통령이 지나가는 장소로 그 의미가 변해 있었다.

경찰은 나를 향해 차도에서 멀리 떨어져 달라고 요청했다. 그 이유를 묻자, 무작정 멀리 가란다. 할 수 없이 차도에서 20여m 떨어진 곳에서 부시 대통령의 차량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횡단보도 쪽을 살펴보니 여전히 폴리스라인은 유지되었고, 다음 차례 시민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발을 동동 구르며 마냥 기다려야 했다.

부시 대통령이 탄 차량이 이동한다는 이유로 경찰은 횡단보도 위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15분 동안 길을 건너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부시 대통령이 탄 차량이 이동한다는 이유로 경찰은 횡단보도 위에 폴리스라인을 설치했다. 이로 인해 시민들은 15분 동안 길을 건너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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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도 안돼 사라진 부시 대통령, 40분 통제된 횡단보도

1시 40분 즈음, 부시 대통령이 탄 차가 그 모습을 보였다. 수십 대의 경호 차량과 함께였다. 그 장면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자, 경찰이 저지했다. 왜 사진 촬영을 막느냐고 묻자, "경호 차량 측에서 보면 그 카메라가 총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느냐"며 "한번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탄 차량 행렬은 10초도 채 안 돼 눈앞에서 사라졌다. 결국 사진도 찍지 못했다. 이 그 순간을 위해 40분 동안 폴리스라인이 설치됐고, 애꿎은 시민들은 횡단보도도 마음대로 건너지 못했다.

2시 30분까지 기다렸으나 결국 예정된 집회는 열리지 않았다. 기자의 입장에서 보면 '허탕'을 친 거였지만 그것 때문에 아쉽지는 않았다. 다만 시민들이 그 오랜 시간 불편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사실 때문에 씁쓸할 뿐이었다.

한편 경찰청 경호과의 한 관계자는 "외국 대통령의 경호는 A-D까지 4개의 등급이 있는 데 부시 대통령의 경호는 A등급"이었다"면서 "외빈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어느나라 대통령이 어떤 등급의 경호를 받는지는 공무상 비밀에 속하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횡단보도와 카메라 통제는 현장 상황에 따라 근무자의 판단으로 이뤄질 수 있다"면서 "부시 대통령이 A등급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다른 상황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덕만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부시 대통령, #부시 방한, #폴리스라인, #횡단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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